조희대 대법원장이 1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조 대법원장은 전날 노태악 전 대법관과 다음 달 퇴임하는 이흥구 대법관 후임으로 손봉기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와 김성수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임명해 달라고 이재명 대통령에게 서면으로 제청했다. [연합뉴스]
조희대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 2명을 이재명 대통령에게 서면 제청한 것은 대통령과의 면담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한찬식 청와대 민정수석과 합의한 결과라고 노경필 법원행정처장은 19일 설명했다. 사전 물밑 협의를 바탕으로 대법원장이 대통령을 찾아가 대법관 후보를 대면 제청해 온 그간의 관례를 깨고 서면 제청을 택한 것은 일방적 통보가 아닌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취지다.
노 처장은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서면 제청하자는 아이디어는 누가 낸 건가’라는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의 질의에 “원래 (절차가) 서면 제청”이라며 “(제청 전 대법원장과 대통령이) 만나서 말씀을 나누고 그다음 절차는 서면으로 인사혁신처에 보내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정확히 말씀드리면 만남의 기회가 없었다”면서 “(만남을) 요구했는데 안 됐다”고 했다. 그는 “(서면 제청은) 청와대 민정수석 측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라며 “누가 먼저 제안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또 서영교 법사위원장이 ‘서면 제청을 누가 제안했냐’고 재차 묻자 노 처장은 “두 분이 만나서 합의할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마지막 남은 방법밖에 없었다”며 “민정수석과 협의해서 서면 제청하는 방법을 합의했다”고 밝혔다. ‘손봉기 부장판사를 서면으로 내겠다고 협의해서 냈다는 이야기냐’는 질문에는 “마지막 날 통보했다. 이렇게(손 부장판사로)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말씀을 드렸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이 대통령이 면담을 거부하며 대법관 후보 제청 절차가 지연되자 차선책으로 민정수석과의 합의를 바탕으로 손봉기(60·사법연수원 22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서면 제청했다는 게 노 처장의 설명이다. 중앙일보는 한찬식 민정수석 등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닿지 않았다.
노 처장은 대법관 임명 제청은 대법원장의 고유 권한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특히 “대법원장 제청권은 보장돼야 한다”며 “대통령과 협의해야 된다면, 나아가서 국회와도 협의해야만 (국회의) 동의권을 침해하지 않는 셈이 돼서 그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이 하라는 분을 무조건 제청해야 된다면 헌법에 (대법원장) 제청권을 규정할 이유가 없다”며 “헌법에 따라 대법원장은 대법관 후보를 제청할 권리가 있고 거기에 따라 대통령과 국회는 각각 임명권과 동의권을 행사하면 된다”고도 말했다. 이어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은 어느 것이 상위 개념이냐’고 박균택 민주당 의원이 묻자 “동등하다고 생각한다”며 “임명권자는 임명을 거부할 수 있다”고 했다.
법조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대법원과 청와대는 이흥구 대법관의 후임인 김성수(58·연수원 24기)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임명 제청하는 데 대해서는 합의에 이르렀다. 하지만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을 둘러싸고는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노 처장은 “마지막 순간까지 협의했다”며 “협의는 했지만 합의는 못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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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원하는 사람 제청하면, 대법원장 제청권 왜 있나”
노경필 법원행정처장이 19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전날 조희대 대법원장이 대법관 임명 제청을 서면으로 한 것과 관련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그럼에도 조희대 대법원장이 임명 제청을 단행한 건 탄핵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는 대법관 공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돌파구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17일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 주자들은 일제히 대법원장 탄핵론을 꺼내들었다. 김민석 대표는 지난달 30일 “대법관 후임 제청을 즉각 하지 않고 헌정 수호 차원의 탄핵을 피할 수 있겠나”라고 했다. 송영길 후보와 정청래 후보도 가세했다.
조 대법원장이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4명의 후보 중 손봉기 부장판사를 선택한 것은 제청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된 후보들을 순차적으로 소거한 결과로 풀이된다. 앞서 청와대에선 이 대통령이 임명하는 첫 대법관을 여성으로 하자는 점을 강조하며 대법관 후보로 김민기(55·연수원 26기) 서울고법 고법판사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대법원은 박순영(60·연수원 25기) 서울고법 고법판사를 역제안했다고 한다.
그사이 다른 변수도 생겼다. 윤성식 (58·연수원 24기) 고법부장은 지난 2월 내란전담재판부 재판장을 맡으면서 임명이 어렵게 됐다. 2021년 3월부터 중앙선관위원을 겸하고 있는 박순영 고법판사는 지난 6·3 지방선거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게 됐다. 조 대법원장이 김민기 고법판사를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은 배경에는 김 고법판사의 남편이 오영준 헌법재판관인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월 국회에서 재판소원법이 통과돼 김 고법판사가 대법관이 될 경우 남편이 아내의 판결을 뒤집을 수 있는 모양새에다가 이해충돌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교착 상태가 계속되자 법원행정처는 원점으로 돌아가 후보를 재추천받는 방안까지 고려했다. 노 처장은 이날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노 전 대법관 후임으로 추천된 후보 중 한 명에게 전화해 사퇴하라고 요구한 적이 있나’라는 김기표 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추천된 4명에 대해 새로 추천하는 절차를 거치는 것은 어떻겠냐는 아이디어가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일부 후보들이 반대 의사를 밝히면서 불발됐다고 전했다.
두 후보자가 실제로 대법관에 임명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이 대통령이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송부해야 인사청문 과정이 시작된다. 대통령이 언제까지 임명동의안을 송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문 규정은 없다. 국회는 청문회를 거쳐 심사경과보고서 채택 여부를 결정한다. 경과보고서가 채택되더라도 과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임명동의안 의결을 반대하면 본회의 통과는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