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인천 송도 삼성바이오에피스 본사 옆 부지에서 어린이집 신축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작은 사진은 완공 후 조감도. 최은경 기자
직원 1000여 명인 바이오 회사가 어린이집을 짓는 데 360억원을 쓴다. 추첨 없이 직원 자녀들을 모두 받겠다며 어린이집 정원을 세 배로 늘리는 삼성바이오에피스 얘기다.
19일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따르면 회사는 사내 어린이집을 기존 100명에서 300명 규모로 확대해 내년 3월 개원한다. 지난 12일 찾은 인천 송도 본사 주차장 옆 부지에서는 지하 2층·지상 4층 규모의 어린이집 신축 공사가 한창이었다. 건물에 투입한 360억원은 지난해 영업이익(3759억원)의 약 10%다. 회사 관계자는 “출산하는 직원이 늘면서 어린이집 추첨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생겼는데 탈락자가 없도록 규모를 확 키웠다”고 말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어린이집 키우기’에는 단순한 복지를 넘어 여성 전문인력을 확보하고 경력 단절을 막는다는 인재 전략이 숨어 있다. 이 회사의 여성 임직원 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51%로 절반을 넘어섰다. 핵심 연구개발(R&D) 직군으로 좁히면 57%다. 30세 미만 직원 170명 가운데 여성은 133명으로 78%에 달한다. 회사 관계자는 “젊은 직원들에게는 보육을 비롯한 복지 인프라가 직장을 선택하고 계속 다니는 데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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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이익의 10%, 어린이집에 투자
R&D 인력 비중이 큰 바이오 업계는 여성 인력 층이 상대적으로 두텁다. 지난해 주요 기업의 여성 임직원 비율을 보면 SK바이오팜 50%, 삼성바이오로직스 45%, SK바이오사이언스 43%, 셀트리온 42% 등이다.
기업들의 보육 투자도 잇따르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올해 초 송도로 본사를 옮기면서 정원 49명 규모의 단독 어린이집을 지었다. 판교 시절에는 인근 기업들과 공동 어린이집을 이용했지만 송도 이전을 계기로 자체 보육시설을 마련했다. 조리원을 추가 채용해 유기농 급식을 제공하고, 물품·활동비도 회사가 전액 지원한다.
한미약품은 지난 3월 서울 방이동 신사옥에 두 번째 직장어린이집을 열었다. GC녹십자는 2018년 경기 용인 목암타운에 당시로선 업계 최대 규모의 어린이집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텃밭과 옥상정원, 야외 놀이터 등 활동 공간도 갖췄다. 회사 관계자는 “면접 때 육아 중인 지원자에게 보육 환경을 장점으로 소개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올해 초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서 인천 송도로 이전하며 본사 옆에 정원 49명 규모의 직장어린이집을 새롭게 마련했다. 사진 SK바이오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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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어린이집 도입한 대웅은 문 닫아, 왜
기업들이 보육에 공을 들이는 건 인재를 데려오는 것만큼 오래 잡아 두는 일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신약 개발은 장기간 축적되는 전문성과 경험이 중요한 만큼 숙련된 연구 인력의 이탈은 기업에도 상당한 인적자본 손실”이라며 “보육 지원은 기업의 생산성과 연구개발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해외 바이오 기업은 보육시설의 질에도 신경 쓴다. 빅파마 로슈의 자회사 제넨텍은 아이들의 건강을 고려해 지은 목조 어린이집으로 친환경 건축물 최고 등급을 받았다.
다만 직장어린이집이 모든 기업에 해법은 아니다. 서울 삼성동에 본사를 둔 대웅제약은 2011년 제약업계 최초로 직장어린이집 ‘리틀베어’를 도입했지만 올해 운영을 중단했다. 회사 관계자는 “강남 집값 상승과 부동산 정책 등의 영향으로 젊은 직원들의 주거지가 외곽으로 이동해 자녀 동반 출퇴근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신 재택근무와 출퇴근 시간 조정 등을 통해 보육을 지원하고 있다. 2024년 육아휴직 후 복직률은 96%에 달한다.
김영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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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절반인데, 여전한 ‘유리천장’
높은 직급으로 올라갈수록 여성 비중이 크게 낮아지는 업계의 ‘유리천장’은 여전하다. 이에 따라 여성 인력을 채용하고 유지하는 것을 넘어 이들을 조직의 리더로 키우는 일이 다음 과제로 꼽힌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SK바이오사이언스도 여성 임원 비율은 각각 16.3%, 22.2%에 그쳤다. 전통 제약사로 범위를 넓히면 10%대는 물론 한 자릿수인 곳도 적지 않다.
변화의 조짐은 있다. 지난해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 30대 여성 임원이 발탁됐으며 SK바이오팜은 첫 여성 이사회 의장을 선임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장녀 최윤정 SK바이오팜 부사장과 진양곤 HLB 의장의 차녀 진인혜 베리스모테라퓨틱스 상무 등 오너가 여성들의 경영 참여도 활발해지고 있다. HLB그룹은 여성 임원 비율을 30%까지 확대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