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제9회 중앙지방협력회의에 참석해 오세훈 서울시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두 사람은 최근 서울 지역 부동산 공급 정책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300만㎡(91만 평) 규모 용산공원이 정치권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지난 14일 김윤덕 국토부 장관이 “용산공원 전체를 (공급 후보지로) 고민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불을 당긴 뒤, 여야가 앞다퉈 용산공원 청년주택 신축 찬반 논쟁에 뛰어든 것이다.
19일 국회 국토교통위 전체회의 최대 쟁점도 용산공원이었다.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은 “닥치고 공급이라더니 이제 용산공원의 역사적 의미도 닥치라는 거냐”고 질타했고,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청년들이 부담 가능한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선 불가피한 논의”라고 반박했다. 김 장관은 “공원 녹지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곳에 한해 제한적으로 청년주택을 공급하겠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소속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날 국회 토론회에서 ”집값을 잡지 못하는 책임을 용산공원으로 덮기로 해서는 안 된다”고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사실 용산공원은 8·13 공급대책엔 적시되지 않은 곳이다. 국토부는 우수입지 신규 공공주택지구를 연내 10만호 발표하겠다면서 ▶서울 강서 염창공원(1000호) ▶경기 남양주 도심(2만1700호) ▶경기 광주 역세권(4500호)만 공개했다. 그 외 7만3000호의 후보지는 관계기관 협의 등을 거쳐 연내 조속히 발표한다고 했다. 이 추가 부지로 용산공원이 거론되자 여야가 거세게 맞붙은 것이다.
정부와 오세훈 서울시장이 용산공원 주택공급 문제를 놓고 연일 엇갈린 입장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19일 서울 용산구 용산공원 일대 모습. 뉴스1
용산공원 청년주택 아이디어의 출발은 2022년 대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대통령은 2022년 1월 ‘전국 311만호 주택 공급 공약’을 발표하면서 용산공원 일부와 주변 반환부지를 활용해 청년기본주택 10만호를 공급하겠다고 했다. 기본주택은 소득·자산과 무관하게 역세권 등 좋은 입지에 저렴한 임대료로 장기 거주할 수 있는 당시 ‘이재명표 기본 시리즈’ 중 하나였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후에도 용산공원은 유력한 주택 공급지로 검토됐다. 하준경 청와대 경제성장수석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대통령실이 용산에 있을 때 사무실에서 용산공원을 매일 봤는데, 굉장히 넓은 땅인데 이용하는 사람들이 너무 없었다”며 “이 위치에 이 정도의 땅이 있는 걸 어떻게 쓰는 게 좋은지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서울시와 용산구가 갖고 있는 각종 인허가권이 걸림돌이었다. 여권 관계자는 “6·3 지방선거에서 서울만 이겼다면 처음부터 공급대책에 용산공원 부지가 포함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결국 공급의 핵심은 서울인데, 서울시장 낙선으로 힘든 구조가 됐다”고 말했다.
이런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용산공원 카드는 이 대통령이 미국·남미 순방 직후 주재한 부동산 점검 회의에서 되살아났다. 이 대통령 자신이 “이제 서울에서 택지 개발을 하려 해도 (땅을) 찾기가 어렵다”(지난달 23일, 부동산 대토론회)고 했을 정도로, 서울에서 개발 가능한 신규 택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세제 정책만 발표된 상황에서, 부동산 공급 정책의 ‘한방’도 필요했다. 용산이 강남 3구에 이어 선호되는 지역이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다만 이 대통령이 지난 7일 2차 부동산 점검회의에서 “서울시와 협의해서 해야지, 독불장군처럼 할 수 있는 방법도 없지 않느냐”고 말하면서 방향은 ‘선(先)협의, 후(後)발표’로 잡았다.
이 때만 해도 청와대 내부에선 “서울시와 잘 협의하면 용산공원 일부 부지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다고 한다. 용산공원이 여의도 면적보다 큰 데다, 부지 중에는 미군 기지 본체를 포함해 옛 방위사업청 부지, 군인아파트 부지 등 녹지가 아닌 곳이 다수 포함됐기 때문이다. 옛 미군 기지의 오염 물질 제거 등 중앙부처가 기여해야 하는 이슈가 있다는 점도 합의 가능성의 근거로 거론됐다. 김윤덕 국토부 장관이 오세훈 서울시장과 20일 만나서 담판을 짓기로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2026년도 을지국무회의에 앞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 오 시장이 용적률 규제 완화와 조합원 지위·양도 제한 완화 등을 언급하자, 이재명 대통령은 “공급을 늘리자는 것이지 집값을 폭등시킬 가능성을 높여서는 안 된다”며 “긍정과 부정의 양면성이 함께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전민규 기자
하지만 지난 18일 국무회의에 배석한 오 시장이 용산공원 청년주택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거듭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를 요구하자, 청와대 내부에선 “서울시가 정치적인 이유로 공급 정책 자체에 훼방을 놓는다”는 의구심이 커졌다. 여권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오 시장에게 ‘왜 서리풀지구는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에서 해제해 줬느냐’고 물었더니, 오 시장이 ‘젊은 층이 선호해서’라고 답했다”며 “같은 청년층 선호 부지인데 윤석열 정부 때는 개발에 찬성하고 지금은 반대하니 억지 아닌가”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여전히 국토부와 서울시와의 협의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지만, 20일 김 장관과 오 시장의 회동이 빈손으로 끝날 경우 본격적인 제도 개선과 여론전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우선 용산공원 개발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용산공원특별법 개정 작업이 추진된다. 하준경 수석은 19일 TV조선에 출연해 “(법이 제정된) 20년 전과 비교해보면 서울 주거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며 “중대한 공익적인 목적이 있을 경우 심의를 통해서 일부를 제척할 수 있다는 등의 (예외) 조항 신설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서울시와 용산구가 갖고 있는 각종 인허가권을 감안하면, 결국엔 여론전을 거쳐야 한다는 게 청와대 안팎의 중론이다. 여권 관계자는 “용산공원 부지 상당수를 공원으로 조성하고 그중 일부 버려진 땅에 청년을 위한 공공주택을 짓겠다는 정부안은 충분히 합리적”이라며 “다만 부동산 정책에 대한 반감이 높은 만큼, 인내심을 갖고 차분히 설명해 국민 여론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