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이 2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불법촬영물 등 유통 사이트 심층분석을 위한 관계부처 합동 불법사이트 통합 대응 방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신영규 방송통신이용자정책국장, 원 장관,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 뉴스1
불법촬영물이 도박·성매매 사이트로 이용자를 끌어들이는 ‘미끼’로 쓰이면서 관련 사이트가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범죄 사업으로 진화 중이란 정부의 분석이 나왔다.
20일 성평등가족부와 경찰청 등에 따르면 정부는 2018년 5월부터 불법촬영물 피해자 영상 삭제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확인한 불법사이트 3만4628개와 최근 5년간 검거된 27건의 수사자료를 토대로 이들의 운영 형태와 수익 구조 등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현재도 접속 가능한 불법 사이트는 6683개였고, 이 가운데 3832개는 별도의 우회 절차 없이 국내에서 접속할 수 있었다. 한국어로 운영되거나 한국 관련 항목을 둔 1316곳에는 한국인 관련 영상 약 215만개가 올라와 있었다. 가장 많은 사이트엔 38만5416개의 영상이 게시됐다. 지난해 삭제 지원한 31만8020건 중 31.5%는 피해자의 신상정보가 함께 유포됐거나 신상정보만 퍼진 사례였다.
불법촬영물 유통 사이트와 도박사이트는 광고와 포인트를 매개로 연결된다. 불법사이트 운영자들은 불법촬영물을 대량 공개해 이용자를 모은 뒤 배너광고를 통해 도박사이트로 유도했다. 연계된 도박사이트에 가입하면 더 많은 영상을 볼 수 있는 포인트를 지급하기도 했다. 도박사이트 운영자는 이용자 유입의 대가로 불법촬영물 유통 사이트에 광고비를 지급했다. 일부 조직은 도박 사이트와 불법촬영물 사이트를 모두 운영했다.
김경진 기자
조사 결과 국내에서 접속할 수 있는 불법사이트 1674곳에는 도박·성매매 등 배너광고 4만686개가 붙어 있었다. 도박 광고가 확인된 933개 사이트엔 1곳당 평균 34.7개의 광고가 달렸다. 배너 1건당 월 광고료(50만~300만원)로 적용해 추정한 이들 사이트 1곳당 연간 광고수익은 2억820만~12억4920만원, 전체는 1943억~1조1655억원이다. 불법사이트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다 붙잡힌 한 피의자는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본업과 병행하며 큰 수익을 벌 수 있는 부업”이라고 진술했다.
무료 사이트는 영상 복제본을 둔 백업 사이트까지 운영하며 이용자를 모았고, 회원제 사이트는 영상 업로드와 댓글 작성, 도박사이트 가입 등에 포인트를 줘 불법촬영물 유포와 도박사이트 가입을 동시에 부추겼다. 특히 기술적인 분석 결과 같은 운영자가 관리한 것으로 보이는 385개 그룹이 확인됐다. 또한 한 운영자가 최대 26개 사이트를 동시에 돌린 것으로 나타났다.
도박판, 불법사이트. 사진 서울경찰청 제공
이들은 당국의 차단도 쉽게 피해 갔다. 불법사이트의 78.8%가 해외 콘텐트전송망(CDN)을 이용했고, 이중 93.3%는 미국 클라우드플레어를 거쳤다. 한 운영자는 도메인 85개를 미리 사둔 뒤 수시로 주소를 바꾸고, 새 주소 안내 페이지 5개를 별도로 운영했다. 국내 접속이 차단된 뒤에도 검거될 때까지 3~7년간 운영된 사이트도 있다.
정부는 이번 분석 결과를 토대로 불법촬영물 유통 사이트를 무력화할 방안을 추진한다. 노현서 범정부 디지털성범죄피해통합지원단 부단장은 “삭제 지원 중심의 대응을 넘어 불법사이트 무력화를 위한 통합 대응 방안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먼저 사이트 개설 자체를 범죄로 처벌하는 한편, 4개 시도경찰청에 특별수사팀을 설치할 계획이다. 수사기관이 사이트에 직접 접속해 단서를 확보하고 원본 데이터를 삭제하는 ‘능동적 방어’, 이른바 합법적 해킹 도입도 검토한다. 광고 게재 금지와 운영 계좌 거래정지 등도 추진한다.
김경진 기자
차단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기술·제도 개선도 이뤄진다. 정부는 주소를 계속 바꾸는 ‘도메인 셔틀링’ 방식을 AI로 분석·예측해 새로운 사이트를 자동 탐지하고, 사이트 간 유사성과 운영자·광고수익 연결망을 분석해 수사와 차단에 활용할 계획이다. 삭제 요구에 반복적으로 불응하는 사이트는 성평등가족부 장관이 통신사업자에게 직접 접속 차단을 요구할 수 있게 하고, 기존 장비로 걸러내기 어려운 새로운 암호화 통신에 대응하는 차단 기술도 개발한다. 합법적인 해킹과 광고 금지, 긴급 차단 요구권 등의 핵심 대책은 법 개정이 필요하다.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은 “피해자의 인격을 말살하는 불법촬영물이 누군가의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되는 일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며 “정부는 불법촬영물 확산의 근원인 불법사이트를 무력화하는 데 모든 정책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