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국가부채 전광판에 사상 처음 40조 달러를 넘어선 미국의 국가부채가 표시돼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치솟는 장기 국채금리를 잡기 위해 국채 매입 확대에 나섰다. 하지만 국가부채가 사상 처음 40조 달러를 넘어선 상황에서 장기채 대신 단기채 의존도를 높이는 방식이라 근본적인 해법이 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현지시간) 미 재무부는 다음 달 9일부터 10~30년물 국채의 바이백(buyback·이미 발행한 국채를 시장에서 다시 사들이는 것) 규모를 회당 20억 달러에서 40억 달러로 최소 두 배 이상 늘리겠다고 밝혔다. 30년물 국채금리가 전날 장중 연 5.34%에 육박하며 2007년 이후 최고 수준까지 치솟자 시장 안정에 나선 것이다. 발표 뒤 30년물 금리는 5.2% 안팎으로 하락했다.
시장은 사실상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의 ‘장기금리 방어 전략’으로 해석했다. 정례 국채발행 계획을 내놓은 지 불과 2주 만에 바이백 확대를 발표했는데, 장기 금리 급등을 방관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시장에 줬다는 분석이다. 로버트 팁 PGIM 수석투자전략가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재무부가 장기 채권의 매도세를 우려하고 있다는 중요한 신호”라고 짚었다. 원유승 SK증권 연구원도 “발표 후 장기 금리가 하락한 것은 실제 매입액보다 정부의 금리 안정 의지에 대한 정책 시그널에 시장이 반응한 영향이 컸다”고 분석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 로이터=연합뉴스
문제는 미국 재정 상황 악화의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의 국가부채는 18일 사상 처음 40조 달러를 넘어 40조470억 달러(약 5경5800조원)를 기록했다. 최근 1년간 약 3조 달러 늘어 코로나19 시기를 제외하면 가장 빠른 증가 속도다. 시장이 더 주목하는 대중 보유 부채(민간·외국인 등 외부에 진 빚)는 32조2660억 달러(약 4경5000조원)로 미국 국내총생산(GDP)과 비슷한 규모다. 마크 골드와인 책임연방예산위원회(CRFB) 선임정책국장은 FT에 “거대한 ‘엔진 점검’ 경고등이 번쩍이는 것과 같다”며 “상당히 통제 불능이라는 신호로, 문제는 규모뿐 아니라 이 수준에 도달한 속도”라고 지적했다.
고금리는 이미 부채 부담을 키우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026회계연도 들어 현재까지 미 정부의 이자비용은 1조1700억 달러(약 1632조원)로 전년 동기보다 15% 증가했다. 부채와 금리가 서로를 밀어 올리는 이른바 ‘둠 루프(doom loop·악순환)’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에드 야데니 야데니리서치 대표는 “막대한 부채에 이자비용까지 더해지며 부채가 스스로 불어난다”며 “부채 우려로 금리가 오르면 이자비용이 더 늘어나는 악순환에 빠진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바이백의 한계도 뚜렷하다. 댄 고틀랜더 씨티 글로벌 달러 스와프 트레이딩 총괄은 “장기채를 바이백하더라도 여전히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며 “단기채나 5~10년물을 더 발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원 연구원도 “바이백은 연방준비제도(Fed)의 양적완화(QE)와 달리 민간이 떠안는 국채 물량을 의미 있게 줄이지 못한다”고 짚었다.
당장은 장기채 공급을 줄여 장기 금리를 누를 수 있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다. 단기채가 늘면 만기가 짧아진 만큼 정부가 더 자주 빚을 갈아타야 한다. 향후 금리가 오르거나 고금리가 장기화하면 더 높은 금리가 정부 이자비용에 빠르게 반영되는 구조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국채시장 변동성 우려에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며 “미국은 매우 강한 나라로, 나라가 강하면 금리는 내려가게 되어 있다”고 일축했다.
트럼프 기대와 달리 Fed의 금리 경로도 안심할 수 없다. 이날 공개된 7월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서는 “몇몇(several) 위원이 금리 인상을 선호”했고, “다수(many)는 인플레이션이 더 끈질기게 높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는 문구가 담겼다. 블룸버그는 의사록에서 사용하는 ‘다수’란 표현이 전체 정책위원(19명) 가운데 거의 절반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금리 인상에 대한 폭넓은 지지가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결국 시장에서는 보다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임스 매킨토시 WSJ 칼럼니스트는 “장기 금리는 방만한 재정과 인공지능(AI)의 전례 없는 자본지출 붐, 지정학적 압력이 뒤섞인 ‘유독한 조합’ 속에서 상승하고 있다”며 “베선트는 주변부만 건드리고 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스티브 잉글랜더 스탠다드차타드 G10 외환리서치 글로벌 총괄도 “중·장기 투자자가 장기채를 사기 위해 정말 보고 싶은 것은 재정적자 전망의 개선”이라고 강조했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바이백은 임시방편일 뿐”이라며 “구조적인 지출 축소나 증세 없이 장기 금리 상승을 잡기는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