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 열풍이 대단하다. 열기가 스크린 밖으로 번졌다. 그리스·로마 신화 검색량이 급증했고, 오디오북 서비스에서 오디세이아를 서재에 담는 이용자가 크게 늘었으며, 관련 서적 판매량도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 몇 배로 뛰어올랐다. 3000년 전 고전이 MZ세대 사이에서 역주행 흥행을 일으키는 모습에서, 스토리텔링의 힘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이 열풍에는 법이라는 또 다른 맥락이 있다. 호르무즈해협을 둘러싼 이란전의 장기화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고착화로 공급이 끊기고 거래 상대가 바뀌는 일이 잦아지면서, 오디세이는 뜻밖의 ‘참고서’로 읽힌다. 누가 약속할 권한이 있는가.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가.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가. 언제 관계를 끝낼 것인가. 시인 호메로스가 지금 법률시장이 던지는 질문을 먼저 던졌다.
오디세우스만이 당길 수 있는 활을 쏘아 정당한 주권자임을 증명하도록 한 설정은, 권한 없는 자가 체결한 계약이 무효가 되는 리스크를 막고 정당한 권한을 입증한 자만이 법적 효력을 행사하도록 하는 오늘날의 대표권 및 대리권 검증 체계(signatory authority)를 떠올리게 한다.
배 전체를 삼키는 소용돌이 카리브디스를 피해, 선원 6명의 희생이 확정된 괴물 스킬라 쪽 항로를 선택해 전멸을 피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모든 위험을 제로로 만들 수 없을 때 손해배상의 상한(cap)을 정하고 간접적·결과적 손해에 대한 배상을 배제해 책임 범위를 한정하는 책임제한 조항의 원형이 여기에 있다. 기업을 파산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무한 책임을 차단하고, 위험을 통제 가능한 범위로 묶어두는 발상이다.
“헬리오스의 소를 건드리지 말라”는 명확한 금지에도 굶주린 선원들이 소를 잡아먹었다가 배가 난파되고 전원 목숨을 잃는 장면은, 절대 금지 조항(negative covenant)을 어겼을 때 어떤 대가가 따르는지, 그리고 계약 체결 이후의 이행 관리가 왜 필수적인지를 일깨운다. 낮에 짠 수의를 밤마다 몰래 풀며 구혼자들과의 재혼을 끝없이 미루는 페넬로페의 지연술은, 계약 만료일과 자동갱신 조항, 종료 통지 기한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오늘날의 계약생애주기관리(contract lifecycle management, CLM) 시스템과 닮았다.
서양문학이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자양분을 얻어왔듯, 영미법의 계약 관행도 신화적 스토리텔링과 무관하지 않다. 권한과 책임과 금기와 이별을 묻던 3000년 묵은 질문은 여전히 오늘의 계약서 위에서 답을 기다린다. 인간도 신들도 답하지 못한 질문을, 이야기는 여태 붙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