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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세종집무실 설계·공기 단축은 위험한 발상

중앙일보

2026.08.20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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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현 중앙대 건축학부 교수

윤승현 중앙대 건축학부 교수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6월 국정 성과 2차 보고회에서 세종집무실에 대해 “대한민국을 대내외적으로 상징하고 긴 세월 남아야 하는 건축물일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책임이 너무 커서 (건축 디자인) 컨셉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을 못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필자는 이 대통령이 이미 핵심 컨셉의 단초를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임기 내 세종집무실 시대’ 선언
국격·자긍심 세울 건축물 되려면
건축가에게 협력·논쟁 기회 줘야

지난 2월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지방이전 공공기관의 구내식당을 없애 인근 식당을 이용하게 한다면 지역 상권을 살릴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 발언을 건축적·도시적 언어로 바꿔보면 명확한 기준이 나온다. ‘모든 공공기관은 도시의 조직과 긴밀히 결속돼야 하며, 걸어서 10분 거리 안에서 도시 공공공간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관계망을 형성해야 한다’는 메시지 아닐까. 말하자면 이 대통령은 ‘시민 삶과의 결속’이라는 상징의 출발점을 제시한 셈이다. 다만 이 철학이 정부의 설계 공모 과정에서 구체적 기준으로 명확히 전달되지 못했을 뿐이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 이 정부는 ‘일하는 정부’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실천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일했으면 좋겠다는 공간적 기대를 드러내 그에 걸맞은 시설의 규모·조직·특성을 건축적 방식으로 소화할 수 있는 기준으로 작동하게 했다면 더 좋았겠다.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 위상에 걸맞은 대통령 집무실의 정체성을 담는 출발점이 됐을 것이다.

영국 총리 집무실인 ‘다우닝가 10번지’는 원래 300여 년 전에 타운하우스 용도로 지어진 건물이라 보통 사람들의 집과 닮았다. 이런 점에서 오히려 ‘총리는 국가의 지배자가 아닌 국민을 위한 봉사자’라는 영국 민주주의의 강력한 상징이 됐다.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은 건립 초기에 시민들이 격렬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세월이라는 녹을 입으며 프랑스 국민의 자부심이자 세계적 상징 건축물로 거듭났다.

상징성은 건축가의 창의력과 경륜이 아닌 그 대상을 바라보는 시민의 공감과 사회적 합의, 그리고 시대의 상(像)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렇기에 건축물의 상징성은 누가 규정해 실현해내는 작업이 아니라 사회의 가치가 담겨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의미체계다. 앞으로 과정이 더 중요한 이유다.

이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임기 내에 대통령 세종집무실 시대를 열고 임기 마지막 국무회의도 세종집무실에서 개최한다는 자세로 총력을 다하라”고 주문했다. 임기 내에 완성을 염원하며 사업을 강하게 추진하는 대통령에 지시에 발맞춰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은 조기 완공을 다짐했다.

그러나 도시적·건축적 관점에서는 위험한 선택이다. 대통령의 언급처럼 국격과 자긍심을 심어줄 ‘영원히 남을 건축물’을 완성하려면 정해진 시한에 맞추는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한 가치가 있다. 행복청장이 보고한 ‘설계 및 공사 기간 단축’은 위험하다.

대통령 세종집무실 설계 공모 당선작이 지난 7월 발표됐다. 하지만 공모 결과는 사업의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는 시작일 뿐이다. 이를 실현하려면 수많은 숙의와 조정, 기술 검토와 증빙이라는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기간을 압축한다는 것은 건축물이 비로소 깊이를 갖게 되는 ‘숙성의 기회’를 포기하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공사 기간도 마찬가지다. 마음만 먹는다면 2년이 아닌 1년 만에도 건물을 올릴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 집무시설은 단순한 창고가 아니다. 국격을 논하고, 국가 정체성을 드러내며, 시민의 자부심으로 남아야 할 장소다. 장인의 손길로 정성을 다해도 아쉬움이 남을 건축물이어야 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 미래를 향한 첫걸음을 내디디면서 가야 할 모든 경로를 완벽히 알고 출발하는 경우는 없다. 역사적 건축물들도 화려함 뒤에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시련의 과정이 숨겨져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명언은 건축에서 간과할 수 없는 진리다.

암흑에서 출발해 사회 구성원들의 협력과 논쟁을 담아내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교훈 삼아 서서히 길을 찾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올바른 건축의 과정이다. 건축가에게 기회를 열어주고, 장인의 혼으로 건립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윤승현 중앙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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