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기 국가교육의 방향과 대입 정책을 결정하는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가 지난 5일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대입 수능에서 서·논술형 문항을 도입하고, 수능 전 과목에 절대평가를 적용하는 ‘중장기 대학입시제도 개편안’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하였다. 이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은 “지금은 질문을 하면 AI 프로그램이 사람보다 더 나은 답변을 해주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는 질문을 얼마나 잘 할 수 있는지, 이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화답하며 “현 객관식 수능은 어른들의 채점 편의를 위해 아이들을 망가뜨리는 것”이라고까지 말하였다. 교육에 대한 주요 정책이 없다고 비판받던 이재명 정부가 이처럼 적극적인 교육 개혁 의사를 보인 것은 처음이고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국교위의 서·논술형 수능 도입 제안
방향 바람직하나 국민 설득 필요
대입이 인생 앞날 가르는 현실
채점의 객관성·신뢰성 확보해야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 안은 아직 국교위에서 논의되고 있는 상태의 아이디어일 뿐이다. 국교위는 현재 2028년부터 2037년까지 향후 10년간 적용될 국가교육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 대학입학제도·문해력·사교육 등 11개의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논의하고 있다. 서·논술형 수능 도입은 이중 대학입학제도 특위에서 나온 아이디어로, 앞으로 대국민 숙의·공론화 등을 거쳐서 10월 말쯤 시안이 발표되고 내년 3월 말쯤 확정될 예정이라고 한다. 즉 국가의 정식 정책으로 채택될 때까지는 아직도 많은 단계가 남은 것이다.
하지만 대학입시는 워낙 첨예한 관심의 대상이기 때문에, 바로 논란으로 이어졌다. 청와대 보고 1주일 뒤인 12일에는 국회의 교육위원회에서 의원들이 논·서술형 평가가 사교육을 키울 수도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였고, 이에 대해 차정인 국교위 위원장이 “폭넓게 독서를 하는 정도로 충분하다”라고 대답하였지만 구체적인 대책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교육 단체들도 의견이 첨예하게 갈린다. 예를 들어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같은 단체는 “해방 81년, 이제 생각의 해방으로 오지선다형을 넘어 논·서술형 평가로 나가야 합니다”라는 선언문을 발표하며 환영하였지만, 바로 같은 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강주호 회장은 현장의 어려움을 강조하며 “서술·논술형 평가 도입하면 입시 혼란과 사교육 부른다”는 칼럼을 일간지에 기고한 바 있다.
지금 수능의 5지선다형 객관식 문제가 미래 인재를 키우는데 적합하지 않다는 것에는 거의 모든 교육자들이 동의한다. 컴퓨터가 세상의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는 AI 시대에 기존 지식을 암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남과 다른 생각을 하는 창의적인 발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산업화 시대의 인재를 선별하던 과거의 정답 찾기 객관식 수능은 이제 새 시대를 맞아 수명을 다한 것이다. 하지만 대안에 대해서는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물론 가장 명백한 대안은 수능에 서·논술형 문제를 도입하는 방안일 텐데, 아직까지 실현이 안 되고 있다. 그 이유는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채점의 객관성·공정성·신뢰성 확보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본도 10년 가까이 대입제도 개편을 추진하면서 서·논술형 문제 도입을 준비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채점의 공정성 문제로 포기하였다. 결국 서·논술형 대입제도의 도입 여부는 교육적인 관점보다 현실적으로 국민들이 납득할만큼 공정성과 정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채점이 가능한가에 달려있다.
과연 이번에는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을까. 국교위는 AI를 활용한 채점 등을 제시하고 있지만, 실제로 얼마나 잘 작동할지는 미지수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어느 대학에 입학하느냐가 인생의 앞날을 결정한다는 생각이 크기 때문에 (서남수·배상훈 저, ‘대입제도, 신분제도인가? 교육제도인가?’ 2022,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참조), 학생과 학부모 모두 입시에서의 공정성에 극히 민감하다. 소위 ‘조국 사태’가 큰 파장을 일으킨 이유이기도 하다. 교육 선발이면 현재의 능력은 조금 부족하더라도 학생의 장래 발전 가능성을 감안할 수 있고 또 그런 평가가 바람직하지만, 신분 선발이면 현재의 능력을 엄밀히 평가하는 객관성이 가장 중요해진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서 수능과 내신에 서·논술형 평가와 절대평가를 도입하는 것은 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인 문제이고, ‘공정성’을 중시하는 국민 정서를 만족시켜야 성공할 수 있다. 이 점을 간과한 것이 과거의 비슷한 시도들이 실패했던 이유이고, 실제로 해결하기 쉽지 않은 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시도가 또다시 실패한다면 우리 교육계는 핵심 목표는 이루지 못한 채 상당 기간 큰 혼란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국교위는 철저한 준비와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 이번에는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기를 바란다. 필요하다면 시범기간을 갖고 단계적으로 시행하여 국민의 신뢰를 쌓아가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일만 성공해도 후세에 이 정부는 교육 분야의 중요한 업적을 이루었다고 평가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