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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비핵화 없는 북·미 대화, 최악의 시나리오 될 수 있다

중앙일보

2026.08.20 08:26 2026.08.20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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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이 “매우 강력한 핵무기 57개를 보유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미 대통령이 북핵의 구체적 수치를 직접 언급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연내 정상회담을 예고하며 비핵화 목표에 대해 “그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답한 대목은 미국의 대북정책 방향에 변화 가능성을 내비친다는 점에서 가볍게 넘길 수 없다. 미국이 북한의 핵 능력을 현실로 전제한 채 비핵화가 아닌 ‘핵 동결’이나 ‘군비 통제’에 무게를 둔 새로운 거래를 모색한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President Donald Trump speaks during a meeting with technology leaders in the Roosevelt Room of the White House, Wednesday, Aug. 19, 2026, in Washington. (AP Photo/Jacquelyn Martin)

President Donald Trump speaks during a meeting with technology leaders in the Roosevelt Room of the White House, Wednesday, Aug. 19, 2026, in Washington. (AP Photo/Jacquelyn Martin)

이런 엄중한 상황에 대한 정부의 인식과 대응이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어제 국회에서 북핵 보유량을 “80~120개 정도”로 추정하면서도 핵보유국은 인정할 수 없으며 미국이 비핵화를 포기한 것은 아니라고 평가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도 ‘우선 동결, 장기적 비핵화’를 제시했다. 당장의 핵 능력 증강을 막는 것은 시급하지만 협상 과정에서 현실론과 인정의 경계가 흐려져 북한의 핵 보유가 굳어지고 비핵화가 목표에서 사라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급박한 변화 속에서 정작 우리 정부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로 한·미 연합훈련이 전격 축소되는 과정에서 드러난 동맹 간 소통 부재와 정보 소외는 심각한 과제를 남겼다. 이런 상황에서 주한미군 운용의 변화까지 사전 협의 없이 통보받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은 훈련 축소에 “경의를 표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페이스메이커를 또다시 자처했다. 북·미 대화 촉진에만 매몰돼 안보태세 변화의 엄중한 의미를 가볍게 보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북한은 어제 동해상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 10여 발을 발사한 데 이어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그리도 즐겨 하던 전쟁놀이를 못 하게 된 서울의 가긍한 처지’라는 제목의 담화를 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한국이 훈련을 거두는 것을 조롱하면서, 이 대통령이 훈련 축소에 경의를 표한 것과 자주국방을 강조한 것을 “이중적 언행”이라고 비난했다. 미국의 결정에 한국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고 북한마저 이를 조롱하는 모습은 트럼프 1기 당시 불거졌던 ‘코리아 패싱’ 논란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 성사 자체를 성과로 여길 것이 아니라 그 대화가 우리 안보에 미칠 파장을 냉정하게 따져야 한다. 협상이 핵 동결이나 군비 통제에 무게를 두는 것을 최대한 막고 주한미군과 확장 억제, 한·미 연합방위태세만큼은 결코 거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한국의 이해가 배제되지 않도록 능동적인 대응 전략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북·미 거래의 구경꾼으로 전락해 국가 안보를 저당잡히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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