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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동시에 금기 깨버렸다…멀어진 북 비핵화, 곧 닥칠 일 [view]

중앙일보

2026.08.2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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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80→120.

20일 노출된 북한 핵무기 추정치다. 그간 북한은 핵역량을 고도화해 왔지만, 국제사회에서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지 못해 구체적인 수량은 기밀이자 금기였다. 하지만 이날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에 북핵 숫자가 공개되면서 북한 핵 보유를 사실상 용인하는 단계에 이른 거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출발은 도널드 트럼프(얼굴) 대통령이었다. 트럼프는 19일(현지시간) 기자들과 만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서한을 주고받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건 말할 수 없지만, 나는 그와 잘 지낸다. 이는 나쁜 일이 아니라 좋은 일”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갑자기 “그는 57개의 매우 강력한 핵무기(nuclear weapons)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뒤이어 “그런 일이 일어나게 둬서는 안 됐었다. 그들은 절대 그렇게 둬선 안 됐다. 내가 대통령이었다면 그렇게 두지 않았겠지만, 그는 핵무기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2018~2019년 북·미 정상회담이 진행되는 국면에서는 북한이 도발적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반복해서 주장해 왔는데, 2020년 대선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아닌 자신이 재선에 성공했다면 북한의 핵 활동을 멈추게 할 수 있었다는 취지로 읽힌다.

뒤이어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가세했다. 안 장관은 20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이 ‘북한이 몇 개 정도 핵을 개발했다고 정부는 자체적으로 평가하느냐’는 질의에 “우리가 보통은 80~120개 정도로 보는데 정확한 수치를 말하는 것은 상당히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 관계자는 안 장관이 언급한 북한 핵무기 수량 ‘80~120개’에 대해 “국내 연구기관이 추정한 수량을 언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다만 안 장관은 북한이 핵을 갖고 있는 것을 인정하느냐는 질문에는 “그것은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또한 “우리는 핵을 개발할 수 없다. 미국의 전술핵(배치)도 우리가 받아들이면 안 된다”며 “미국의 핵우산을 확실히 제공받는 정책으로 우리가 일관되게 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점점 멀어지는 ‘북 비핵화’…동북아 핵무장론 거세진다

국방부는 북한군이 신형 600㎜ 방사포를 전방에 배치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 지난 2월 방사포 증정식 당시 공개한 사진. [노동신문=뉴스1]

국방부는 북한군이 신형 600㎜ 방사포를 전방에 배치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 지난 2월 방사포 증정식 당시 공개한 사진. [노동신문=뉴스1]

한·미가 북한의 핵 개발 현황 관련 정보를 기밀로 관리하는 상황에서 미국 대통령과 한국 국방부 장관이 북한의 핵무기 관련 수치를 구체적으로 거론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더 주목할 대목은 최소 57개라는 핵탄두 수가 갖는 의미다. 핵탄두가 소량일 경우에는 상당수를 정권 생존을 위한 최후 보복용으로 아껴 둬야 하지만, 60기 이상이라면 다층적으로 핵을 쓰는 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 미국 본토를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용 전략핵과 한국·일본 및 괌을 사정권에 둔 단·중거리 미사일용 핵전력, 보복용 예비전력을 동시에 운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미에서 북핵 숫자가 언급된 이날 오후 5시쯤, 북한은 보란 듯 동해안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실제 북한은 최근 몇 년 사이 미사일 다종화와 전술핵탄두 개발 등에 골몰하고 있다. 이날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국회 업무보고에서 북한군이 신형 240㎜·600㎜ 방사포와 자주포, 전술미사일 등을 접경지역에 배치할 가능성이 있어 추적 중이라고 밝혔다. 600㎜ 방사포는 전술핵 탑재가 가능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선제공격으로 일부가 파괴되더라도 살아남은 전력으로 핵 보복을 가하는 ‘제2격 능력’은 이동식 발사대(TEL)와 지하시설, 지휘통제 체계 등까지 완결된 생존성까지 갖춰야 완성된다.

트럼프는 이전에도 북한이 상당한 핵무기를 갖고 있다는 취지로 발언했지만, 숫자를 특정한 적은 없다. 이는 곧 트럼프가 북한의 비핵화는 사실상 달성하기 어려운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일 수 있다.

이는 결국 북한 비핵화 목표가 흐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로 이어진다. 트럼프가 1기 때와 지금 북한의 핵 능력은 완전히 달라졌다는 걸 시인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어서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2018~2019년에는 북한이 핵탄두 10~30개를 만들 수 있는 핵물질을 보유한 것으로 추산했다. 그사이 핵무기 생산 능력이 몇 배가 늘어난 셈인데, 트럼프와 김정은 간 대화가 재개되더라도 이런 핵 능력 증강을 인정한 상태에서 비핵화가 아니라 동결과 감축 등을 목표로 하는 군비통제 협상이 진행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트럼프는 ‘김정은과 다시 관여하는 목적이 여전히 비핵화인가, 이번에 성공할 수 있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그에 대해 얘기하고 싶지 않다. 나는 여전히 김정은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란전쟁으로 여론의 지지를 잃고 있는 트럼프가 국내 정치적 돌파구 마련을 위해 김정은에게 핵 보유 묵인이라는 선물을 준다면 북한의 핵 위협을 고스란히 한국이 떠안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비핵화를 목표로 하지 않는 협상은 북한이 ICBM 등 미 본토에 대한 위협이나 핵무기·핵물질 생산을 제한하는 조치만 취한 뒤 합의에 이르는 ‘스몰 딜’로 귀결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이나 이에 장착할 수 있는 전술핵 등 한국에 직접적 위협을 가하는 북한의 핵 능력이 사실상 건재한 상태에서 미국이 북한을 정상 국가로 인정하는 격이 될 수 있다. 북한은 이미 남한을 핵 타격 대상으로 수차례 규정했는데, 한국으로선 이런 위협에 상시적으로 노출된 채 북한과 공존해야 할 수 있다.

에번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 부차관보는 “트럼프의 연합훈련 축소로 한·미 동맹 약화라는 1차 목표 달성에 접근한 북한은 핵보유국 인정이라는 2차 목표 달성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북한은 보란 듯이 이날 밤 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 명의의 담화에서 한·미 연합훈련 축소와 관련해 “트럼프의 말 한마디에 서울은 제일 즐겨하던 ‘전쟁놀이’판을 거두어야 하는 가긍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고 조롱했다.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서는 “안팎이 다른 이중적 언행을 보이고 있다”고 비꼬았다.

지금도 북한은 실질적으로는 거의 완성 단계의 핵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여전히 불법적으로 은밀하게 핵을 개발하는 것과 미국이 이를 사실상 인정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이는 국제사회가 북핵을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해야 할 ‘상수’로 규정하는 게 될 수 있어서다.

이럴 경우 한국의 대북 방어 체계의 틀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북핵 위협은 여전한데, 미국의 핵 방위 공약은 약해진다면 한국 내에서 핵무장 여론이 강해질 가능성이 크다. 핵은 핵으로만 억제할 수 있다는 논리가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 등 주변 국가 역시 핵무장을 고려하는 동북아 ‘핵 도미노’로 이어지고, 역내 군사적 긴장이 크게 올라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런 동맹의 안보 우려는 무시한 채 일련의 과정을 트럼프가 독단적으로 끌고 가고 있는 점 또한 우려를 사는 대목이다. 리비어 부차관보는 “연합훈련 축소가 한국과 협의 없이 이뤄진 건 김정은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미국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강화시켰고, 상황이 진행될수록 한국은 더 불안정한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유지혜.강태화.심석용([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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