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15일 제주 서귀포시 색달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49회 대한상의 제주포럼 개회식에서 조정식 국회의장과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 “앞으로 과연 자사주를 사겠는가.” "
2025년 8월 대한상공회의소 제주 하계포럼 기자간담회.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의 회장은 당시 여당이 기업의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상법 개정안을 추진한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프리덤(자율성)을 줄이면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할 유인은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는 게 그의 논리였다. 외부 헤지펀드의 공격으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고 유동성 관리를 위해 기업이 자사주를 소각 않고 보유할 필요가 있다는 재계의 주장을, 최 회장이 대리한 것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26년 8월 19일, 최태원 회장이 미등기 회장직을 맡고 있는 SK하이닉스는 국내 상장사 역사상 최대 규모인 40조원의 자사주를 앞으로 3개월간 취득해 전량 소각하겠다고
발표했다. 2027년까지 누적 잉여현금흐름(FCF)의 주주환원 비율도 기존 ‘50% 이내’에서 ‘50% 이상’으로 상향했다. 사실상 상단을 없앴다. 얼핏 최 회장의 1년 전 발언과는 상반된 행보로 보이기도 한다.
물론 상황이 변했다. 1년새 코스피가 폭등했고 그 중심에 SK하이닉스가 있었으며, 주주환원 요구를 무시할 수 없게 된 상황이다. 그럼에도 파격적인 자사주 소각 규모는 앞으로 국내 여러 상장 대기업들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SK하이닉스가 쏘아올린 자사주 소각의 전후 속사정을 자세히 뜯어보자.
왜 할 수밖에 없었나
SK하이닉스의 결단을 끌어낸 8할은 실적과 따로 노는 주가에 대한 경영진의 압박감이다. 메모리 초호황으로 SK하이닉스는 올해도 매 분기 역대 최고 실적을 잇달아 갈아치우고 있다. 상반기 영업이익만 해도 삼성전자는 146조원을, SK하이닉스가 98조원을 기록했다. 1년 전보다 13배, 6배. 그야말로 폭발적인 성장이다.
하지만 올 상반기 내내 치솟던 주가는 지난 6월 말부터 하락 국면에 접어 들면서 주주 불만이 거세졌다. 미국 등 전세계 반도체 주가가 동반 하락한 흐름이더라도, 유독 SK하이닉스의 낙폭이 더 큰 것도 회사에게는 부담스러운 지점이다. 올해 고점 대비 낙폭(SK하이닉스 주주환원 발표 전인 19일 종가 기준)을 비교하면 미국 메모리 기업 마이크론이 -25%인 데 비해 삼성전자는 -33.9%, SK하이닉스는 -48.6%다. 연초 대비 주가 수익률은 삼성전자 92.6%, SK하이닉스 126.1%,로 같은 기간 마이크론 수익률(198.3%)에도 한참 못 미친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주주들의 눈은 결국 회사의 주주 환원 계획에 쏠릴 수 밖에 없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실적을 개선하라는 질책이 필요 없을 만큼 최고 실적을 내고 있고, 향후 메모리 수요 등 미래 기대치는 이미 상반기 주가 상승기에 다 반영이 된 터라 주주들이 요구할 수 있는건 ‘주주환원을 늘려라’ 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잘 버는데 주주환원을 안 하는 것 자체가 주가엔 악재로 읽힌다. 신승진 삼성증권 투자정보팀장은 주주환원에 대해 “반도체 업체들이 바라보는 향후 메모리 사이클에 대한 인식을 가늠하는 척도”라며 “소극적 주주환원은 향후 다운사이클(불황)에 대비한 선제적인 현금 확보를 의미하고, 적극적 주주환원은 이익 변동성 축소로 인한 주가 재평가로 시장에 받아 들여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