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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발 회칼로 사장 좀 혼내줘”… 500만원에 급조된 살인 조직

중앙일보

2026.08.20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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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한복판 벤처 대표 살인사건 1화 요약
새천년의 밤. 서울 강남구 역삼동 골목.
“너 이리 와.”
돌아볼 틈도 없었다. 이내 차가운 금속이 몸속 깊숙한 곳을 파고들었다. 구석구석에서 겨울의 찬 공기와 대비되는 뜨뜻한 핏줄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가슴, 옆구리 그리고 허벅지. 부위를 가리지 않았다.
벤처회사 대표 김현필은 왜 강남 한복판에서 회칼에 열다섯 번 찔린 채 발견됐을까.
지갑과 신용카드는 그대로였다. 강도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투자금 25억원, 매출은 0원. 게다가 김현필은 특허 기술을 들고 대구에 따로 회사를 세우려 하고 있었다. 그가 나가면 특허가 갈라지고 회사는 무너질 수 있었다. 수사는 점차 회사 안쪽을 향했다.

강남경찰서 김흥남 형사는 영업차장 유태진의 기록을 뒤졌다. 그리고 사건 두 달 전부터 유태진의 귀가 시각이 조금 늦어졌다는 걸 발견했다. 누군가를 만났다는 뜻인데, 통화 기록은 텅 비어 있었다.

▶1편 보러가기
강남 한복판, 회칼 15번 찔렸다…25억 벤처 대표의 죽음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50378


형사는 지도를 폈다. 열 곳의 번지수를 하나씩 짚었다. 종이 위에서 될 일이 아니었다. 발로 확인해야만 했다.

“반장님, 저 오후엔 자리 비우겠습니다. 탐문 좀 다녀오겠습니다.”

첫 번째 공중전화. 논현동 길가, 당시 인기 있던 대형 갈비집 앞. 사진을 찍고 약도를 그렸다. 두 번째는 카페 입구 안쪽. 그 시절 공중전화는 길거리뿐 아니라 식당과 술집 문 안팎에도 있었다. 또 사진을 찍고 약도를 그렸다. 세 번째도 마찬가지였다. 네 번째를 향하면서 김 형사의 걸음이 빨라졌다.

그곳은 김현필이 죽던 날 1차 회식을 한 횟집에서 불과 몇십 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왜 굳이 밖에 나와서. 그것도 이 앞에서?’

다섯 번째는 논현동의 한 카페 앞이었다. 그날 밤 회식의 2차 장소였다. 사무실로 돌아와 지도를 펼쳤다. 점을 찍고, 점과 점을 이었다. 선이 그려졌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서울 내 한 옥외주점 모습. 중앙포토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서울 내 한 옥외주점 모습. 중앙포토

1차 회식 자리였던 ‘J’ 횟집. 2차 ‘N’ 카페. 그리고 그 사이사이. 김현필이 죽기 전 몇 시간 동안 지나간 동선 위에 공중전화 발신지가 포개졌다. 자리마다 놓인 공중전화에서 누군가 유태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지막 발신은 오전 1시가 넘은 시각. 위치는 김현필이 택시에서 내린 곳과 멀지 않았다. 마치 그림자가 김현필을 따라다니며 전화를 건 것 같았다. 김 형사는 그 선을 손가락으로 천천히 훑었다.

‘누군가 김현필을 미행하듯이 따라다녔다. 그리고 그자는 따라다니는 내내 쉬지 않고 유태진과 연락했다.’

그는 여기까지 수사한 뒤 보고서를 썼다. 사진 열 몇 장을 붙이고, 약도를 붙이고, 시각을 적었다. 이것은 유태진이 김현필을 죽였다는 직접 증거가 아니었다. 김 형사도 알았다. 그러나 김현필이 죽기 직전까지 그를 따라다닌 누군가가 실시간으로 유태진과 교신한 것만은 분명했다.

‘직접 죽였거나, 지시했거나. 그것도 아니면, 청부했거나.’

#9. 밀당

3월 13일 오전 6시. 사건 발생 34일째.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단란주점.

밤을 꼴딱 새운 술자리였다. 창밖이 밝아오고 있었다. 그 자리에 유태진이 있었다. 그를 부른 건 형사들이었다.

유태진을 피의자로 세울 직접 증거는 없었다. 있는 건 지도 위의 선들뿐. 종이 한 장으로 판을 뒤집어야 했다. 형사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술이 몇 순배 돌 때까지 회사 얘기, 영업 얘기만 했다. 유태진의 말은 매끄러웠다. 절박한 영업꾼의 말투 그대로였다.

먼저 툭, 선공을 던진 건 형사 쪽이었다.
“우리 툭 까놓고 얘기해 봅시다. 그날 회식 자리에서 왜 계속 통화를 한 거야? 회식이었잖아?”
“영업을….”
“영업?”

형사가 말을 잘랐다.
“대표를 앞에 앉혀놓고 영업 전화를 받아? 그것도 열 번을?”
“거래처가 워낙….”

형사는 대답 대신 종이를 한 장 내려놨다. 약도였다. 우선 갈비집 앞 공중전화.
“이거 봐라. 너한테 전화 건 놈 위치 말이야.”

또 한 장. 횟집 앞.
“회식 1차 앞에서.”

또 한 장. 카페 앞.
“이건 2차 앞에서. 졸졸 따라다니면서 너한테 걸었어.”
“그게 무슨…?”

유태진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형사는 마지막 한 장을 아껴뒀다가 천천히 밀어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 전화. 김현필 죽은 자리에서 너한테 걸려왔어. 오전 1시 넘어서.”

침묵.

“김현필이가 너한테 걸었겠어? 이미 죽었는데. 너 잘 생각해. 이게 네가 직접 죽였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어.”

유태진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담배 연기만 뿜어댔다. 연기는 천장을 뒤덮었다. 형사들도 기다렸다. 재촉하면 자칫 마음이 닫힌다. 침묵이 제일 무거운 질문일 때가 있다. 창밖이 완전히 밝아졌을 때 유태진이 입을 열었다.

(계속)
“그놈 병X 만들어주면 500만원 챙겨준다.”
사건이 터지기 몇시간 전, 논현동의 한 갈비집. 밤늦게까지 소맥을 들이킨 자들. 그들은 김현필을 살해한 범인이었다.

경찰이 붙인 이름은 ‘새천년파’였다. 경찰은 조서에도 새천년파란 명칭을 적었고, 신문에도 그렇게 보도됐다.

섬뜩한 이름과 달리, 뚜껑을 열어보니 그 정체는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조직폭력배라 부르기도 어려운 수준이었다.
이어지는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볼 수 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52114


한찬우([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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