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홍 청와대 홍보소통수석비서관이 지난달 10일 춘추관에서 신임 임기근 국무조정실장 임명과 관련된 브리핑을 마치고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대법관 후보자 서면 임명 제청’ 전에 사전 협의가 있었는지를 두고 청와대와 대법원이 진실 공방을 벌이고 있다. “청와대와 합의된 것”이라는 노경필 법원행정처장의 발언에 21일 청와대가 “사실이 전혀 아니다”라고 정면 반박하면서다.
성기홍 청와대 홍보소통수석은 이날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대법관 제청에 관해서 일반적인 사항에 대해서 논의한 사실은 있지만, 서면 제청 여부 등 구체적인 제청 방식에 대해선 전혀 협의 자체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성 수석은 ‘청와대의 면담 거부’ 주장에 대해서도 “대법원 측에서는 ‘협의가 되면 만날 수 있느냐’는 문의가 있었고, 여기에 대해 ‘협의가 되면 그때 논의하자’는 일반적인 답변을 한 것에 불과한데, 그 부분을 그런 식으로 (노 처장이)) 말했다”며 “조금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노 처장은 지난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청와대가 이재명 대통령과 조희대 대법원장의 면담 기회를 주지 않아 민정수석실과 협의해 대법관 후임자를 서면으로 제청하게 됐다고 밝혔다. 법사위 회의 당일엔 침묵하던 청와대가 이틀 만에 구체적인 사실 관계 반박에 나선 것이다.
성 수석은 “1987년에 헌법이 개정되고 난 이후에 많은 대법관이 제청되는 과정이 있었는데, 이번 사례는 기존에 구축돼 왔던 관행·관례를 벗어난 패턴”이라며 “매우 엄중한 사안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헌정사 초유의 상황이라고 인식하고 있고, 특히 협의를 건너뛰고 대통령의 임명권을 존중하지 않는 일방통보 절차였다”며 “청와대는 관례라든지 법률적인 사안들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판단을 내릴 생각”이라고 말했다.
노경필 법원행정처장이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조희대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 과정과 관련한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여권 관계자는 “마치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청와대가 거부해서 어쩔 수 없이 서면 통보한 것으로 노 처장이 이야기했는데, 이는 청와대의 인식과 전혀 다르다”고 했다. 사법부에서 지난 7개월 동안 손 부장판사를 임명하겠다는 의향 자체를 내비치지 않다가 기습적으로 통보했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청와대가 공개적으로 직접 반박에 나서면서 더불어민주당의 압박 수위도 높아졌다. 민주당 최고위원들은 21일 “더 이상 사법부의 권위를 훼손하지 말고 스스로 책임지고 물러나라”(서미화), “탄핵 사유는 이미 충분하다”(이성윤)며 조 대법원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김민석 대표는 “훌륭하신 대법원·사법부 전체 판사께서 지혜를 집단 지성으로 모아서 국민과 국회와 대통령이 걱정하지 않도록 해주셨으면 좋겠다”며 사법부의 결단을 요구했다. 한민수 최고위원은 “판사회의를 소집해 조희대를 판사들에 의해 끌어내리라”고 했다.
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당 법사위원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조희대는 윤석열과 한몸이자 윤석열의 최후의 보루”라며 “국민 앞에 석고대죄 후 즉시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법사위 전체회의에선 야당 위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조 대법원장을 31일 현안질의 증인으로 채택했다. 서영교 법사위원장은 “장기간 공석 후 시행한 대법관 후보 제청 과정, 내란 사건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회부, 법원행정처장이 대법관 후보자들에게 전화를 해 대법관 후보를 무효화하려고 했던 사안 등과 관련한 현안질의”라고 설명했다.
21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법사위원들이 조희대 대법원장과 노경필 법원행정처장에 대한 증인 출석 요구의 건 처리에 반대하며 퇴장해 자리가 비어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은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법관 협의체를 통해 사법부가 의사 결정을 하도록 만드는 ‘조희대 힘 빼기’ 법안도 검토 중이다. 판사 출신으로 법사위 간사인 김승원 민주당 의원은 “법원행정처가 대법원장의 기동대 역할을 해왔다”며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법원사무처로 (변경)해서 집행의 일만 할 수 있도록 바꿔야 한다”고 했다.
여권의 총공세에 야권은 “사법농단 죽창가를 즉각 멈추라”(박충권 국민의힘 수석대변인)고 반발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전국 방방곡곡에 ‘대법원장 물러나라’는 현수막을 붙이는 여당은 ‘유례’가 있는 것인가”라고 반문하면서 “헌법을 어긴 걸로 따지면 이 대통령 탄핵 사유는 이미 차고 넘친다”고 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역시 “(청와대가) 이 사람은 안 돼, 저래서 안 돼, 이렇게 보는 것”이라면서 “결국 이 대통령이 형사 재판 재판관을 고르는 모양새인데, 적어도 삼권분립은 지켜져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