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2월 17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상공에 전용기가 이륙한 모습. AP=연합뉴스
인공지능(AI) 기업의 급성장으로 등장한 신흥 부자들의 럭셔리 자산 소비 패턴이 주목받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오픈AI·앤트로픽 등 AI 기업의 급성장으로 탄생한 새로운 부자들이 돈을 쓰기 시작했다”며 “이들이 과시적 고가 자산(trophy assets) 시장을 재편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AI로 부를 축적한 신흥 부자들이 가장 먼저 눈을 돌리는 곳은 주택이다. FT는 “가장 먼저 구입하는 고가 자산은 언제나 집”이라며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다”고 전했다. 부동산 중개업체 컴퍼스에 따르면 지난 6월 샌프란시스코 단독주택 중간 가격은 210만 달러(약 30억원)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약 25% 상승했다. 스위스 투자은행 UBS에 따르면 올해 4월까지 12개월 동안 전 세계 억만장자 수는 전년 대비 13% 증가한 3302명으로 늘었다. 이 가운데 1000명 이상이 미국에 거주한다. 샌프란시스코 인근에는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AI 혁신 기업 생태계가 자리 잡고 있다.
2024년 2월 21일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 스카이라인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집을 마련한 AI 신흥 부자들은 전용기 등 고가 자산으로 소비를 확대하고 있다. 다만 이들의 취향은 기존 럭셔리 소비층과 다소 다르다. FT는 “이들은 일반적인 고급 여행에서 연상되는 샴페인과 극진한 서비스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며 “대신 실용적이고 사생활이 보장되면서 건강한 생활방식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을 원한다”고 분석했다. 럭셔리 여행 컨설턴트 폴 찰스는 FT에 “안목 있는 고객이라는 기존의 개념은 이제 상당히 낡았다”며 “기업들은 AI로 부를 축적한 새로운 세대의 고객에 맞춰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적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AI 기업으로 부를 쌓은 고객이 늘면서 미국 프리미엄 항공 서비스 기업 플렉스젯(Flexjet)의 평균 고객 연령은 약 10년 낮아졌다. 전세기 업체 플라이빅터(FlyVictor)의 공동 최고경영자(CEO) 토비 에드워즈는 FT에 “신규 고객 가운데는 25세에 불과한 매우 젊은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FT는 이들을 ‘디지털 네이티브 고객’으로 지칭하며 “비트코인이나 다른 암호화폐로 결제하기를 원할 뿐만 아니라 중개업자를 거치지 않고 업체의 애플리케이션(앱)이나 왓츠앱을 통해 직접 예약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분석했다.
기내 서비스의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전용기 플랫폼 엔터젯(EnterJet) 창업자인 찰스 로빈슨은 FT에 “과거 개인항공의 럭셔리 기준이었던 깔끔한 리넨 테이블보 위에서 샴페인을 마시는 모습은 AI 신흥 부자 고객들에게서 찾아보기 어렵다”며 “대신 이들은 피지(Fiji)나 아쿠아 파나(Acqua Panna) 같은 프리미엄 생수를 요구하고 건강을 고려한 기내식을 찾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사회적 과시를 위해서가 아니라 효율성과 사생활 보호를 위해 전용기를 이용한다”고 분석했다. 기존 부유층이 고가 자산을 부와 지위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활용했다면 AI 신흥 부자들에게 럭셔리는 시간과 효율성, 프라이버시를 확보하기 위한 도구에 가깝다는 의미다.
2024년 8월 9일 인도 뉴델리에서 진행된 람보르기니 우루스 SE 출시 행사 당시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자동차 시장에서도 AI 신흥 부자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FT는 “AI 신흥 부자들은 희소성을 중시한다”며 “최신 자동차 모델을 확보하기 위해 차량을 6개월 만에 새로 교체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부유층을 대상으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EMJ 익스클루시브(EMJ Exclusive)의 창업자 에드 소머 보가드는 FT에 “AI 신흥 부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독점성”이라며 “우리 고객들은 어디를 가더라도 다른 사람이 자신과 같은 차를 타고 있는 상황을 절대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람보르기니가 AI 신흥 부자들의 수요를 성공적으로 공략한 대표적인 브랜드로 꼽힌다. FT에 따르면 람보르기니는 대표 모델인 우루스에 150가지가 넘는 색상 옵션을 제공해 고객이 차량을 세밀하게 개인화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자동차 제조사가 제공하는 기본 맞춤 설정 외에도 공기역학 패키지와 탄소섬유 키트 등을 추가해 차량 외관을 차별화할 수 있다. FT는 “이 같은 개인화는 소셜미디어(SNS)에 공유하기에도 적합하다”고 평가했다.
지난 4월 9일 모나코 앞바다에서 영국 럭셔리 자동차 제조사 애스턴 마틴의 대주주인 캐나다 사업가 로렌스 스트롤이 소유한 요트가 떠있는 모습. AFP=연합뉴스
요트 시장에서도 AI 신흥 부자들의 취향이 반영되고 있다. 이들은 대형 호화 요트보다는 빠른 속도와 장거리 운항 능력을 갖춘 탐험형 선박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짙은 틴팅 등 사생활 보호를 위한 설비에도 기존 고객보다 높은 가치를 두며 요트에 피트니스 장비를 설치해달라는 요구도 늘고 있다.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요트 판매점을 운영하는 제프 브라운은 FT에 “고객들은 음식이나 술 대신 스쿠버다이빙 장비 같은 보다 고급스러운 ‘장난감(toys)’을 요구하고 있다”며 “이들은 운동에 관심이 있고 밖에 나가 활동한다. 갑판에서 칵테일 마이타이를 홀짝이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