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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가방이 6900원? 나이키·아디다스 잡는 ‘스포츠계 이케아’ [비크닉]

중앙일보

2026.08.2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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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돈 5만원으로 러닝 룩 완성했어요. "

웬만한 러닝 바지 한장 가격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갖춰 입었다는 SNS의 후기.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러닝을 갓 시작한 출연자가 운동복과 장비를 사는 데 100만원 넘게 쓴 것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운동이든 취미든 한번 시작하면 장비부터 제대로 갖추려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가성비 스포츠 웨어가 새로운 선택지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국내 러닝 인구는 1000만명을 넘어섰다. 1조원 대 러닝 용품 시장에서 데카트론은 가성비 좋은 브랜드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사진 데카트론 코리아 SNS

지난해 국내 러닝 인구는 1000만명을 넘어섰다. 1조원 대 러닝 용품 시장에서 데카트론은 가성비 좋은 브랜드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사진 데카트론 코리아 SNS


‘스포츠계의 이케아’로 불리는 글로벌 스포츠용품 브랜드 데카트론(Decathlon)은 요즘 이 흐름을 대표하는 브랜드다. 1976년 프랑스에서 시작한 데카트론은 합리적인 가격과 자체 개발 제품을 앞세워 전 세계 82개국에서 1902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매출 기준으론 나이키·아디다스에 이어 세계 3위의 스포츠용품 기업이다. 지난 14일 찾은 강남 플래그십 매장에는 10L짜리 하이킹 백팩이 6900원, 수영복이 8900원, 러닝화가 3만 4900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눈길을 끈 건 가격만이 아니다. 160평 규모의 매장에 러닝·등산·수영·요가 등 900여 가지의 의류와 제품이 빼곡하게 진열돼 있었다.

지난 7월 개점한 데카트론 강남 플래그십 매장. 수영, 스노쿨링, 등산, 러닝, 홈 피트니스 등 다양한 종목의 제품을 1만원대 아래부터 찾아볼 수 있다. 이소진 기자

지난 7월 개점한 데카트론 강남 플래그십 매장. 수영, 스노쿨링, 등산, 러닝, 홈 피트니스 등 다양한 종목의 제품을 1만원대 아래부터 찾아볼 수 있다. 이소진 기자


“0이 하나 없네”…. 저렴한 가격표의 비밀
데카트론이 낮은 가격을 내세우는 데는 이유가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한국 성인의 운동 빈도는 195개국 191위로 전 세계 하위권에 속한다(2022년 기준).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스포츠용품 시장 규모는 세계 9위(약 36조6850억원·문체부 2024)다. 즐기지는 않는데 용품 시장이 크다는 건, 그만큼 ‘시작’과 ‘지속’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얘기다. 스포츠 및 여가 업계에 따르면 한국인은 운동을 시작할 때 장비부터 완벽하게 갖추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짧은 등산에도 고가의 등산화와 스틱을 챙기고, 장비를 갖춰야 하는 부담 때문에 오히려 시작 자체를 미루기도 한다.

데카트론은 2만 5000여개의 용품을 취급하고 매년 약 2800여 개의 신제품을 내놓는 스포츠용품계의 공룡이다. 강남 플래그십 스토어에서는 900여 가지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 데카트론 코리아

데카트론은 2만 5000여개의 용품을 취급하고 매년 약 2800여 개의 신제품을 내놓는 스포츠용품계의 공룡이다. 강남 플래그십 스토어에서는 900여 가지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 데카트론 코리아


데카트론은 이 지점을 겨냥했다. 나이키·아디다스처럼 브랜드 파워로 경쟁하는 대신, 가격을 먼저 부각하는 방식이다. 부담 없는 가격으로 “일단 해보자”는 마음이 들게 하고, 경험이 쌓이면 자신의 수준과 필요에 맞는 다음 단계 제품을 찾도록 유도한다.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가격표가 눈에 들어오는 진열 방식 역시 소비자가 가장 먼저 가격 경쟁력을 체감하도록 만든 전략이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저렴한 가격표를 보면 자연스레 의문이 생긴다. 어떻게 이 가격으로 제품을 만들 수 있을까. 데카트론은 제품의 기획·디자인·생산·물류·판매까지 전 과정을 회사가 직접 운영하는 ‘엔드 투 엔드(End to End)’ 시스템으로 운영한다. 중간 마진과 하청 단계를 걷어내 6900원짜리 등산용 백팩을 만들어낸다. 여기에는 “누구나 쉽게 스포츠를 접할 수 있어야 한다”는 데카트론의 창업 정신이 밑바탕이 됐다.

1976년 프랑스 북부 도시인 앵글로스에서 창업자 미셸 르클레르크가 7명의 스포츠 애호가와 함께 시작한 데카트론. 처음엔 스포츠용품 편집숍으로 시작했지만, 80년대 부터 제품 제작에 뛰어들며 '엔드 투 엔드' 모델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다. 사진 데카트론

1976년 프랑스 북부 도시인 앵글로스에서 창업자 미셸 르클레르크가 7명의 스포츠 애호가와 함께 시작한 데카트론. 처음엔 스포츠용품 편집숍으로 시작했지만, 80년대 부터 제품 제작에 뛰어들며 '엔드 투 엔드' 모델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다. 사진 데카트론

‘2초 텐트’ ‘스노클링 마스크’…. 히트템 제조기
물론 가격만이 경쟁력은 아니다. 프랑스 전역의 연구·개발 연구소 ‘스포츠 랩’에서는 매년 40여 개의 특허를 출원한다. 저렴한 가격을 앞세우지만, 기술 개발은 놓치지 않는다는 의미다. 대표적인 제품이 ‘2초 텐트’로 알려진 원터치 캠핑 텐트로 2005년 출시 이후 지금까지 1000만 개 이상 팔린 스테디셀러다. 10년간 연구 끝에 개발한 ‘이지 브레스’는 세계 최초로 얼굴 전체를 덮는 마스크 형태의 스노클링 장비로, 출시 직후 애호가들 사이에서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고가 장비의 저렴한 대체품이 아닌 데카트론에 가야만 살 수 있는 아이템들로 차별화했다는 평가다.

폴대를 잡아당겨 피칭하는 형태의 원터치 텐트와 얼굴 전체를 감싸 숨쉬기 편리한 스노쿨링 마스크는 데카트론이 개발한 스테디셀러다. 사진 데카트론

폴대를 잡아당겨 피칭하는 형태의 원터치 텐트와 얼굴 전체를 감싸 숨쉬기 편리한 스노쿨링 마스크는 데카트론이 개발한 스테디셀러다. 사진 데카트론


여기에 종목별로 개발한 자체 브랜드가 데카트론의 전문성을 뒷받침했다. ▶러닝은 킵런(Kiprun) ▶등산·하이킹은 퀘차(Quechua) ▶사이클링은 반 리셀(Van Rysel) ▶축구는 킵스타(Kipsta) ▶테니스·배드민턴은 아트랭고(Artengo) 등 20여 개 브랜드를 직접 운영한다. 각 브랜드는 입문자를 위한 제품부터 전문가가 사용하는 고급 라인까지 아우르도록 설계됐다. 처음 운동을 시작한 사람이 경험을 쌓은 뒤에도 같은 매장에서 다음 단계의 장비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구조다. 사이클링 브랜드 ‘반 리셀’만 해도 60만원대 알루미늄 자전거부터 799만원대 최상급 로드바이크까지 제품군을 갖췄다.

데카트론 산하 사이클링 브랜드 '반 리셀'은 프로 선수들을 위한 전문 브랜드로 포지셔닝한다. 최근에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사이클링 팀인 AG2R 라 몬디알과 협업을 맺었다. 사진 데카트론

데카트론 산하 사이클링 브랜드 '반 리셀'은 프로 선수들을 위한 전문 브랜드로 포지셔닝한다. 최근에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사이클링 팀인 AG2R 라 몬디알과 협업을 맺었다. 사진 데카트론


한 자리에서 자전거 같은 장비부터 운동복·헬멧·장갑·양말은 물론 운동 보충제까지 살 수 있는 ‘카테고리 킬러’형 리테일이라는 것도 데카트론의 강점이다. 지난 14일 데카트론 강남역 매장에서 물건을 고르던 김모(35)씨는 “하이킹에 관심이 있어서 백팩을 보러 왔는데, 헤드 랜턴이나 폴 같은 보조 장비가 다양해 한참을 구경하게 됐다”고 말했다.

완벽함에서 가벼움으로…스포츠 소비 방식이 달라졌다
전 세계에서 28조원대(2025년 기준) 매출을 올리는 브랜드지만, 데카트론에게 한국은 유독 까다로운 시장이었다. 2018년 인천 송도에 첫 매장을 낸 뒤 경기도 하남·고양 등지에 창고형 대형 매장을 잇달아 열었지만, 좀처럼 존재감을 키우지 못했다. 2023년 리테일에서 브랜드 중심으로 포지셔닝을 바꾸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대형 매장 대신 100~300평 규모의 도심형 매장으로 전략을 바꾸고, ‘강남 러닝 센터’처럼 특정 종목에 집중한 전문 매장을 선보였다. 러닝 열풍까지 맞물리면서 지난해 국내 매출은 470억원으로 전년보다 103% 늘었고, 올해는 10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 세계 80여 개국에 진출한 데카트론은 2024년 하반기부터 한국 시장에서 43주 연속 성장률 1위를 기록했다. 글로벌 매출 (약 24조원)의 절반 가까이는 여전히 서유럽에서 나온다.

전 세계 80여 개국에 진출한 데카트론은 2024년 하반기부터 한국 시장에서 43주 연속 성장률 1위를 기록했다. 글로벌 매출 (약 24조원)의 절반 가까이는 여전히 서유럽에서 나온다.


데카트론이 진출 8년 만에 국내서 기회를 맞고 있는 건 스포츠를 소비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코로나19 이후 캠핑·등산·러닝 붐으로 폭발적으로 늘었던 스포츠 수요는 최근 하이킹·트레일 러닝·백패킹 등으로 세분화하는 중이다. 동시에 처음부터 고가의 전문 장비를 갖추기보다, 필요한 기능을 갖춘 합리적인 가격의 제품으로 스포츠를 가볍게 시작하려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 고물가 기조가 이어지면서 최근 다이소를 비롯해 ‘확실한 가성비’를 내세운 브랜드에 소비자가 반응하는 흐름도 맞물렸다.

트레이드밀 대회에 모인 참가자들. 데카트론 코리아는 최근 5년간 매장을 3개에서 12개까지 늘리며 소비자 접점을 넓히고 있다. 사진 데카트론 코리아

트레이드밀 대회에 모인 참가자들. 데카트론 코리아는 최근 5년간 매장을 3개에서 12개까지 늘리며 소비자 접점을 넓히고 있다. 사진 데카트론 코리아


20년 동안 전 세계 데카트론 지점을 거친 줄리앙 모로 데카트론 코리아 최고운영책임자(COO)는 “한국 소비자는 제품에 대한 기술적 이해도가 높고 사용성과 디자인 측면에서도 상당히 높은 수준을 요구한다”면서 “좋은 품질과 가치를 갖추고 여기에 좋은 가격까지 만족시키는 제품을 소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시장”이라고 말했다.

그리스어로 ‘10종 경기(Décathlon)’를 뜻하는 이름처럼, 한 매장에서 10가지 스포츠 종목을 아우르는 편집숍으로 시작한 데카트론은 현재 80여 개 종목을 다루는 세계 최대 스포츠용품 기업 중 하나로 성장했다. 이들이 낮추려는 것은 제품 가격만이 아니다. 비싸고 어렵게 느껴졌던 스포츠의 진입장벽을 낮춰 ‘일단 한번 해보는’ 사람을 늘리는 것. 브랜드가 50년 가까이 이어온 철학이자 생존 방식이다.

b.멘터리
오늘날 브랜드는 개인의 가치관을 담는 중요한 소비 기호죠. 치열하게 ‘자기다움’을 직조하는 브랜드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기획자들을 만납니다. 남다른 브랜드의 흥미로운 디테일을 따라 가며 설레는 여정을 기록합니다.



이소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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