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주목을 끌었던 ‘한국형 테마섹’ 혹은 ‘한국미래투자공사’라는 국부펀드 신설 구상이 없던 일로 정리되었다. 대신 지난달 발표된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을 통해, 기존 한국투자공사(KIC) 안에 국내 투자를 할 수 있는 ‘전략투자계정’을 신설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이를 위해 설립 목적에 ‘국부 증진’과 ‘전략산업 경쟁력 강화’를 추가하는 KIC법 개정안이 연내 국회를 통과하는 것이 목표다. 2005년 KIC법 제정 이후 첫 구조 개편이다.
방향 전환의 이유는 명확하다. 새 기관을 만들려면 조직 구성, 인력 채용, 시스템 구축에만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반면 KIC는 이미 20년간 쌓아온 해외 투자 네트워크와 운용 전문성을 갖춘 조직이다. 이 인프라를 활용하면 훨씬 빠르게 투자를 시작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만, 기존 외화보유액 운용계정과는 엄격히 분리해 운용할 방침이다.
국내 투자 업계가 이번 개편에 주목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KIC가 해외 국부펀드와 자산운용사의 국내 투자를 이끄는 앵커투자자 역할을 하리라는 기대다. KIC가 결정한 국내 투자라면 해외 초대형 국부펀드들도 한결 수월하게 투자를 검토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국민성장펀드와의 협업투자다. 정책자금끼리 손발을 맞춰 더 큰 규모의 거래를 함께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유망 기업에 대한 이른바 ‘이어달리기 투자자’ 역할이다. 기존 정책펀드들은 상대적으로 짧은 5~10년 만기 때문에 유망 기업의 자금줄이 끊길 수 있었는데, 10~20년 만기의 전략투자계정이 등판함으로써 그 공백을 줄일 수 있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업계가 기대하는 것은 KIC의 트랙 레코드(실적)다. KIC는 지난해 말 기준 약 2320억 달러(약 350조원)를 굴리는 세계적 국부펀드로, 지난해 수익률이 13.91%에 달했고 설립 이후 누적 운용수익은 1224억 달러에 이른다. 이런 투자자의 등장 자체가 상징성이 클 수밖에 없다. 연기금·공제회 등이 주도했던 국내 대형 투자자 풀이 한층 넓고 깊어질 전망이다.
물론 이런 접근방식이 해외 일반적인 사례와는 다소 다른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어 대만은 국가발전기금이 출자한 별도 투자회사 타이와니아캐피털을 통해 반도체와 AI 스타트업을 직접 지원한다. 그에 비하면 한 조직 안에서 두 기능이 독립적으로 작동할 토대부터 마련하겠다는 이번 결정은 다소 실험적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그 결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내년 약 5000억원 수준을 시작으로 투자 금액을 점차 늘려가겠다는 계획은 그런 맥락에서 충분히 이해되는 결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