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스승의 날에 서울의 한 여고를 방문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창이 오빠” 연호에 화답하며 “빠순이 부대”라는 말을 했다가 설화에 휩싸였다. 나름 젊은층과 가까워지려 ‘오빠 부대’를 언급하며 꺼낸 말이었지만 ‘빠순이’가 유흥업소 여성을 속되게 부르는 표현이어서 역풍을 맞은 것이다.
비슷한 시기 이회창의 대선 경쟁자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는 ‘노빠’라는 강력한 우군이 등장했다. ‘노무현 오빠 부대’의 줄임말인 노빠는 처음엔 열혈 지지자를 비아냥거리는 표현으로 쓰였으나 점차 강성 팬 스스로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상징어가 됐다. 이후 ‘빠’ 문화는 정치권에 깊숙이 뿌리를 내렸다.
이처럼 정치권에서 ‘오빠’는 양가적 단어다. 올해 6·3 부산 북갑 보궐선거에서도 같은 오빠를 두고 상반된 일이 벌어졌다. 강성 팬덤을 가진 한동훈 무소속 의원은 수많은 팬의 도움으로 승리를 일궜다. 현장을 지켜본 국민의힘 관계자는 “그 어떤 오빠 부대보다 강력했다”고 회고했다. 반면 경쟁자였던 하정우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부위원장은 정청래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원 유세 과정에서 초등학생 아이에게 “오빠라고 해보라”고 한 게 집중 조명되며 큰 타격을 입었다.
오빠가 선거판을 휩쓸더니 이번엔 인사청문회 정국까지 뒤흔들고 있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오랜 친분을 이어오던 ‘신약 청탁’ 브로커 양모씨가 김 후보자를 오빠라고 부른 게 알려지며 로비 의혹이 커지고 있다. 양씨가 과거 유흥업소를 운영한 이력까지 알려지며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도 자극하고 있다.
K팝이 전 세계로 뻗어나가며 ‘oppa’는 한국 대중문화의 우수성을 상징하는 단어가 됐다. 그럼에도 후진적인 우리 정치권은 음습한 룸살롱을 가득 채운 오빠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7월 금융감독원이 가상자산 투자 사기 예방법을 안내하며 ‘멋진 이성이 SNS에서 당신에게 메시지를 보내면 100% 사기’라고 한 게 화제가 됐다. 정치권의 아저씨들도 깨달아야 한다. 누군가 당신에게 오빠라고 하면 일단 의심부터 하자. 그게 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