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김초희(36)씨는 지난 6월 쿠팡에서 국내 유명 브랜드 ‘에스트라’의 수딩크림을 5개 구매했다가, 이른바 짝퉁을 배송받았다. 5개월 전 샀던 정품과 비교해 보니 제품 뒷면에는 중국어가 적혀 있었고, 용기 색감과 글씨체도 달랐다. 김씨는 “제품 확인차 웹사이트에 들어가보니, 해당 판매처는 이미 사라졌다”며 “환불은 받았지만, 한국 대형 플랫폼에서 한국 브랜드 짝퉁을 버젓이 팔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쿠팡에서 김씨가 구매한 '에스트라 수딩크림' 가품. 가품은 정품과 비교해 포장지 푸른 색과 상품을 설명하는 글씨체가 다르고, 뒤에 중국어가 쓰여 있다. 김초희씨 제공
위조품을 판매·발송한 뒤 잠적하는 이른바 ‘치고 빠지기’식 위조품 판매였다. 판매 수법은 교묘했다. 제품 1개를 선택할 때에는 ‘에스트라 크림’이 나왔지만, 할인 폭이 큰 묶음 상품을 선택하면 제품 이름이 ‘푸른색 365 크림’으로 바뀌었다.
한류 인기에 편승해 한국 브랜드를 위조·유통하는 ‘K짝퉁’이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 8일 한국지식재산보호원에 따르면 해외 상표 무단 선점 의심 사례는 2023년 4045건에서 지난해 1만20건으로 2.5배로 급증했다. 전 세계 온라인 쇼핑몰에서 차단된 K브랜드 위조품 건수 역시 2023년 16만건에서 지난해 21만건으로 늘었다.
과거 전자기기·패션·의류 중심이던 피해는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인기인 ‘K뷰티’로 옮겨갔다. 최근 싱가포르 보건과학청은 발암 유해물질이 검출된 ‘메디큐브 핑크 콜라겐 캡슐크림’에 회수 조치를 내렸는데, 제조사인 에이피알은 해당 제품을 위조품으로 판단했다. 퓨젠바이오 역시 가품이 급증하자 정품 식별 사진을 직접 공지했다.
차준홍 기자
중국에선 ‘올리브영’의 로고와 간판 색상을 따라한 ‘온리영(ONLYYOUNG)’이 등장했고, 베트남에선 패션 쇼핑몰인 ‘무신사’ ‘29CM’의 이름을 그대로 도용한 가게까지 나왔다. 삼양은 2023년 중국 업체를 상대로 상표권 침해 소송에서 승소했지만, 짝퉁 불닭볶음면은 여전히 발견되고 있다. 중국 쇼핑몰에서 ‘BTS 짝퉁 굿즈’가 판매되자, 소속사 하이브는 판매업자를 상대로 올해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최근 2년 새 K짝퉁이 급증한 배경은 유통의 온라인화와 인공지능(AI) 악용이다. 현장 적발이 쉬운 오프라인과 달리 온라인 위조범들은 정품 상세페이지를 무단 수집한 뒤, 생성형 AI를 활용해 다국어 설명서와 가짜 구매 후기, 추천 영상까지 대량 복제해 유포한다. 이어 SNS와 유튜브 방송으로 소량으로 제품을 판매하며 단속을 피한다. 지식재산처 산하 상표권특별사법경찰대는 8일 이런 수법으로 30억원 규모의 위조 상품을 유통한 베트남 현지 총책을 검거하기도 했다.
김지윤 기자
문제는 전담 법무팀이나 예산이 없는 중소·인디 브랜드다. 한 뷰티업계 관계자는 “맘카페나 SNS에 짝퉁 주의 글이 돌면 소비자가 아예 브랜드 구매 자체를 포기해 버리는데, 대응할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특히 피부에 직접 닿는 화장품의 경우 소비자 안전을 직접 위협할 수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 세계 K브랜드 위조상품 유통 규모는 연간 11조원에 달한다. 이로 인한 국내 기업의 직접적인 매출 피해는 7조원, 일자리 감소는 약 1만4000개로 추산된다.
왼쪽 위와 아래는 각각 짝퉁 불닭볶음면, 중국의 짝퉁 올리브영 매장 '온리영'. 오른쪽은 퓨젠바이오가 세포랩 정품과 가품을 구별하기 위해 만든 사진. SNS캡처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K짝퉁은 성장하는 중소 K브랜드의 신뢰도를 낮추고, 수출 경쟁력을 위협할 수 있다”며 “가품을 유통하는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지식재산처는 7월 ‘위조상품 신고센터’를 개설한 데 이어, 오는 10월부터 해외 현지 단속과 통관 보류를 지원하는 ‘K브랜드 정부인증 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