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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드러나는 ‘반도체 달러’의 위력…원화값 1300원이 보인다

중앙일보

2026.09.09 00:45 2026.09.09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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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일 인천국제공항 대한항공 화물터미널에서 관계자들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를 홍콩으로 향하는 항공기에 탑재하고 있다. (공동취재)

지난 30일 인천국제공항 대한항공 화물터미널에서 관계자들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를 홍콩으로 향하는 항공기에 탑재하고 있다. (공동취재)

차곡차곡 쌓인 ‘반도체 달러’가 원화 가치를 밀어 올리는 힘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올해 1~8월 반도체 수출액은 2812억 달러(약 376조원). 그동안 기업 금고에 머물거나 해외 투자로 빠져나가던 달러가 외환시장으로 흘러들면서 원화값을 끌어올리고 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9일 오후 3시30분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9.50원 내린 1336.10원에 마감했다. 같은 기준으로 환율이 1330원대를 기록한 것은 2024년 10월 4일(1333.7원) 이후 약 1년 11개월 만이다. 지난 4일 1350원 선을 밑돈 뒤 지난해 장중 연저점 1347.1원마저 뚫고 내려 1330원대에 안착했다. 1400원 선을 하향 돌파한 지 불과 2주 만이다. 미국 장기 금리 상승과 국제유가 급등 등 원화 약세 요인에도 하락세는 이어지고 있다.

가장 큰 힘은 역대급 수출과 경상수지 흑자다. 올해 상반기 경상수지 흑자는 1910억1000만 달러로 독일·일본·대만을 제치고 중국에 이어 세계 2위로 올라섰다. 올해 누적 수출액도 9월 초 지난해 연간 7093억 달러를 넘어섰다. 반도체뿐 아니라 컴퓨터·석유제품·무선통신기기·선박 수출도 늘고 있다.

그동안에는 역대급 수출과 경상 흑자가 환율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기업들이 달러를 쌓아둔 데다 국내 투자자의 해외 증권·직접투자가 급증해 들어온 달러 상당 부분이 다시 해외로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차영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원화 가치 급등은 역대급 경상 흑자가 환율에 본격 반영되기 시작한 큰 변화”라고 평가했다. ‘수출 호조→달러 매물 증가→원화 강세’ 경로가 다시 작동한다는 의미다.

원-달러 환율 추이

원-달러 환율 추이


지난 6월 말 메가프로젝트 발표와 7월 SK하이닉스의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상장, 정부의 수출기업 환전 독려 등을 거치며 달러 매도와 환헤지(환 변동 위험 회피)가 늘었다. 한화오션은 기존 약 9%였던 환헤지 비율을 약 70%까지 높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호황이 이어지면 국내 투자와 주주환원 과정에서도 달러 매물이 나올 수 있다. 유진투자증권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배당·자사주 매입·국내 투자를 위해 달러를 원화로 바꾸는 규모가 연간 약 21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최근 3년간 해외 증권·직접투자로 빠져나간 돈은 연간 환산 1300억 달러 수준이다.

실제 해외로 빠져나가는 달러도 줄었다. 7월 경상수지는 420억 달러 흑자였지만 직접투자와 증권투자 유출은 각각 41억 달러와 54억 달러에 그쳤다. 이정훈 대신증권 이코노미스트는 “기업의 환전 수요로 달러가 공급되는 것에 비해 자본 유출 압력은 크게 둔화됐다”며 “올해 상반기처럼 자본 유출 압력이 다시 심해지지 않는 이상 환율 상단은 계속 무거울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외환보유액도 이를 보여준다. 8월 외환보유액은 한 달 새 143억3000만 달러 늘어 월간 사상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다. 금융기관이 한국은행에 맡긴 외화예수금도 71억7000만 달러 늘었다.

최근 1330원대 하락은 수출기업의 달러 매도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지금은 거시경제나 특정 이벤트보다 시장 자체의 동력과 관성으로 내려가는 측면이 강하다”며 “달러 약세에 베팅할 때 원-달러가 최근 가장 수익을 내기 쉬운 거래로 인식되면서 매도가 집중된 것”이라고 말했다.

엔화 강세도 원화값 상승을 거들고 있다. 최근 일주일 엔-달러 환율은 3.87%, 원-달러 환율은 2.16% 각각 하락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원-엔 동조화가 강화된 상황에서 엔-달러 환율이 추가 하락하면 원-달러 환율도 동반 하락할 여지가 크다”고 했다. 한은이 8월 기준금리를 두 차례 연속 올린 점도 원화 강세에 힘을 보탰다.

다음 분수령은 15~16일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다. 미국 물가가 예상보다 높거나 연방준비제도(Fed) 매파적 메시지를 내놓으면 달러가 반등할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1320원 안팎이 다음 시험대다.

다만 속도는 부담이다. 원-달러 환율은 7월 2일 1555.8원 고점에서 두 달여 만에 219.7원(14.1%) 떨어졌다. 환헤지 여력이 부족한 중소 수출기업은 같은 달러 매출을 올려도 원화로 환산한 매출액이 줄어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환율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느냐 못지않게 경제주체들이 예상할 수 있는 속도로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원화 강세가 이어지더라도 앞으로는 보다 점진적이고 예측 가능한 조정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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