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생성형 AI를 받아들였다. 비영리 부문도 예외가 아니다. 아름다운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 비영리 종사자의 92.7%가 이미 업무에 생성형 AI를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생성형 AI를 조직 차원에서 도입한 곳은 26.8%에 그쳤다. 종사자 10명 중 9명은 준비돼 있지만, 조직 4곳 중 3곳은 그렇지 않은 셈이다.
이처럼 비영리 부문의 ‘AI 격차’가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아시아 각국 공익활동 환경을 분석한 보고서 ‘DGI(Doing Good Index) 2026’에 따르면, 아시아 17개 경제권에서 AI를 정기적으로 사용하는 사회문제 해결 조직은 8곳 중 1곳에 불과하다. 조직 차원의 도입률은 어디에서나 낮으며, 이 기준으로 보면 한국은 오히려 앞서 있다. 그러나 개인의 AI 활용률 92.7%라는 수치만큼은 다른 어느 경제권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개인과 조직 사이의 격차가 이토록 크고 뚜렷한 곳도 한국뿐이다.
비용 문제만은 아니다. 개인은 무료이거나 거의 비용이 들지 않는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할 수 있다. 개인 역량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한국의 비영리 종사자들은 대부분 스스로 AI 활용법을 익혔다. 아직 형성되지 않은 것은 조직 차원의 역량이다. 무엇을 개발하고 무엇을 구매해야 하는지, 누구의 데이터를 활용할 것인지, 도입을 주도한 사람이 떠난 뒤에는 누가 관리할 것인지 판단할 역량이 부족하다. 문제는 AI 모델 자체가 아니다.
2025년 12월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디지털 자선과 AI 역량 강화 교류회’에서 중국자선연맹과 바이트댄스·알리바바·텐센트 관계자들이 ‘AI 자선 툴킷’을 공개하고 있다. [사진 중국자선연맹]
아시아 필란트로피 소사이어티 센터(Centre for Asian Philanthropy and Society·CAPS)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AI for Good’ 사업 220개를 조사하고, 10개 경제권의 42개 기관을 인터뷰했다. 조사 과정에서 한 가지 이미지가 반복해서 떠올랐다. 소셜섹터는 도로를 건설하지 않은 채 자동차만 계속 사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자동차는 눈에 잘 띄고, 지원하기 쉽다. 성과를 보여주기도 좋은 도구다. 도로는 자동차 한 대가 아니라 수많은 차량이 다닐 수 있도록 하는 인프라다. 이 도로는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기술을 사용하고 상황에 맞게 바꿀 수 있는 사람, 활용 가능한 데이터와 거버넌스를 포함한 시스템, 초기 지원금이 소진된 뒤에도 도구가 계속 운영될 수 있게 하는 지속성 등이다. 그런데 자원은 자동차에만 몰리고 이 세 가지 기반에는 충분히 투입되지 않는다. 1년 뒤에 선도적인 AI 모델이 달라질 수 있지만, 그 모델이 달리는 도로는 달라지지 않는다.
도로가 끊기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인도의 비영리단체 ‘로켓러닝’은 어린 자녀를 둔 부모에게 양육 방법을 안내하는 AI 기반 왓츠앱 서비스를 개발했다. 서비스는 눈에 띄는 효과를 냈고 이용자도 늘었다. 그러나 성장은 로켓러닝이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가 됐다. 이용자가 한 명 늘어날 때마다 메시지 발송료와 AI 모델 사용료가 추가됐고, 로켓러닝은 대규모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감당할 만큼 충분한 자금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우리는 이를 ‘성공의 페널티(success penalty)’라고 부른다. AI 모델에 크게 의존하는 서비스는 이용자가 늘수록 비용도 증가한다. 성과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성공했기 때문에 사업이 중단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연구에서 큰 비용을 치른 실패 사례는 성능이 나쁜 도구가 아니었다. 도로가 끊겨 더 이상 달리지 못하게 된 좋은 도구들이었다.
그렇다면 도로는 왜 좀처럼 건설되지 않을까. 시장이 도로에 자금을 공급하기 어려운 구조로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도로가 만들어내는 편익은 비용을 부담한 주체가 독점하지 못하고 소셜섹터 전체로 분산된다. 투자에 따른 성과도 지출이 이뤄진 뒤 수년이 지나야 나타난다. 어느 한 주체도 충분한 가치를 가져갈 수 없기 때문에 모두가 다른 누군가가 먼저 나서기를 기다린다.
도로 건설이 순수한 이타적 행위만은 아니다. 일부 기업은 이미 이 점을 이해하고 각자 도로의 한 부분을 맡고 있다. 중국에서는 텐센트·알리바바·바이트댄스가 기업 주도형 ‘AI for Good’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다. 상업적으로 경쟁하는 이들 기업은 중국자선연맹을 통해 공동 ‘AI 자선 툴킷’을 운영하고 있다. 규모가 작은 기관들이 처음부터 모든 것을 개발하지 않고 활용할 수 있도록 공통 도구와 서식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도로를 구성하는 시스템에 해당한다. 경쟁 기업들이 이를 공동으로 구축하도록 설득하는 일이 가장 어려운 과제다.
일본은 사람이라는 기반을 맡았다. NTT데이터는 2023년부터 일본NPO센터와 함께 ‘NP테크 이니셔티브’를 운영하고 있다. 이후 델과 인텔 등도 참여했다. 약 500개 비영리단체가 지난 3년간 이 프로그램을 통해 AI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배웠다. 프로그램을 이끄는 가네다 고이치는 이를 전통적인 방식의 필란트로피와 구별해 ‘디지털 필란트로피’라고 부른다. 비영리단체도 일반 기업의 사업팀과 같은 기술 도입 문제를 겪지만, 활용할 수 있는 자원에는 더 큰 제약이 따른다. 현장에서 축적된 데이터는 기업의 제품을 개선하는 데 다시 활용된다. 도로 건설을 도운 주체에게 그 가치의 일부가 돌아가는 것이다.
두 사례를 함께 보면 역할 분담의 구조가 드러난다. 일본의 프로그램은 이를 운영한 기업에 가치를 돌려준다. 반면 중국의 툴킷이 만들어내는 가치는 특정 기업에 귀속되지 않는다. 경쟁 기업들을 한자리에 모아 공동 구축을 끌어내야 했던 이유다. 완전한 도로를 건설하려면 기업의 이해관계와 장기적이고 공익적인 자금이 모두 필요하다. 시장의 힘만으로는 도로가 완성된 적이 없다.
이제 질문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 한국만큼 유리한 조건을 갖춘 나라는 많지 않다. 한국에는 역내에서 가장 빠르게 AI를 받아들이는 사용자와 풍부한 기술 인재가 있다. SK·네이버·카카오 등 자체 거대언어모델 개발 기업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의 기술기업들이 아무런 기반 없이 출발하는 것도 아니다. 카카오 임팩트재단은 이미 엔지니어와 사회혁신가를 연결하고, 비영리 AI 프로젝트에 클라우드 자원을 지원하고 있다. 네이버 해피빈은 지난 20년 동안 기부자와 비영리단체를 연결하는 기반을 구축해 왔다. 이는 사람과 시스템을 잇는 도로의 초기 구간에 해당한다.
아직 비어 있는 자리는 세 번째 기반인 지속성을 담당할 지원기관이다. 사업이 시작된 뒤 수년 동안 비용을 부담해 성과를 낸 도구가 성과를 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국에는 자국의 AI 모델 개발 기업이 있고, 기업과 비영리단체를 연결해 온 20년의 기반도 있다. 이 자리를 맡는 데 필요한 요소를 이미 갖춘 셈이다.
자카르타에서 뭄바이에 이르는 아시아 각지의 지원기관들도 같은 선택을 마주하고 있다. CAPS가 보고서 ‘도로 없는 자동차(Cars Without Roads)’를 펴낸 이유도 이들의 선택을 돕기 위해서다. 그러나 완전하게 건설된 도로가 어떤 모습인지 누군가는 아시아 지역에 보여줘야 한다. 비영리 종사자 10명 중 9명이 이미 운전대를 잡은 한국은 그 역할을 맡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다. 이는 자선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지금 건설하는 도로가 앞으로 10년간 AI가 달릴 기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