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장기 국채 바이백(조기상환) 규모를 3배로 늘렸지만 국채금리는 오히려 뛰었다. 정부가 시장 안정 의지를 강하게 드러낼수록 투자자들이 더 큰 개입을 기대하게 만드는 이른바 ‘베선트 풋(Bessent put)의 역설’이 나타나고 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이 9일(현지시간) 미국 댈러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9일(현지시간) 미 재무부는 10일 실시하는 바이백을 통해 10~20년 만기 국채를 최대 60억 달러 매입한다고 밝혔다. 직전 장기물 바이백 규모(20억 달러)의 3배로, 지난달 예고한 최소 40억 달러보다 확대됐다. 재무부는 거래가 뜸한 구형 국채를 사들여 시장 유동성을 높이는 게 목적이라고 설명해왔다. 하지만 최근 30년물 금리가 2007년 이후 최고 수준까지 치솟은 상황에서 바이백 규모를 잇달아 늘리면서 시장에서는 장기금리 상승을 진정시키려는 조치로 받아들였다.
문제는 시장의 눈높이가 이미 높아졌다는 점이다. 월가에서는 최대 100억 달러에 이를 거란 전망까지 나왔다. 이날 60억 달러라는 숫자가 공개되자 오히려 국채 매도세가 이어졌다. 10년물 금리는 장중 4.85%까지 올라 2023년 11월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30년물 금리도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지던 5.3%를 넘어섰다. 이날 실시된 390억 달러 규모의 10년물 국채 입찰 금리도 4.834%로 2007년 이후 가장 높았다.
스티븐 젱 도이체방크 전략가는 블룸버그에 ”시장이 기대했던 ‘쇼크 앤드 오(shock and awe·충격과 공포)’에는 미치지 못했다”며 “재무부가 이제 계속 먹이를 줘야 하는 괴물을 만들어낸 셈”이라고 말했다.
바이백만으로 금리를 밀어올리는 경제 여건을 바꾸는 데 한계가 있다. 중동 긴장 고조로 브렌트유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면서 물가 상승 우려가 다시 커졌다. 막대한 재정적자로 국채 공급 부담이 큰 데다 견조한 미국 고용시장으로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상 가능성도 커졌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도 바이백이 근본 해법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했다. 그는 8일(현지시간) “시장에 일종의 열병이 번지고 있었다”면서 “내 역할은 시장을 균형으로 되돌리는 것이고, 균형 가격 자체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재무부의 적극적인 개입은 국채 관리 원칙을 둘러싼 논란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블룸버그는 지난달 바이백 확대가 분기별 국채발행계획과 별도로 발표된 점을 들어 “오랫동안 유지해온 ‘규칙적이고 예측 가능한’ 국채 관리 원칙과 대비되는 적극적인 방식”이라고 평가했다. 문제는 시장이 매번 매입 규모에 민감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베선트 장관의 과거 멘토인 스탠리 드러켄밀러 듀케인패밀리오피스 회장은 WSJ 기고에서 “시장이 재무부가 특정 가격을 방어한다고 믿는 순간, 금리가 오를 때마다 정부의 의지를 시험하게 되고 이를 버티려면 개입 규모는 계속 커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금리를 밀어 올리는 근본 원인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아닐 카시야프 시카고대 경제학 교수는 CNBC에 “말이 아니라 행동이 중요하다”며 “이 경우 행동이란 재정정책이나 금리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