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오른쪽)이 7월 브라질리아 대통령 관저에서 정상회담에 앞서 손을 맞잡고 있다. 연합뉴스
10년 넘게 장기 집권한 ‘좌파’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의 연임 가도에 빨간 불이 켜졌다.
10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여론조사 업체 넥서스가 4~7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우파’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자유당(PL) 후보가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 가상 대결에서 46%를 얻었다. 룰라 대통령(지지율 45%)을 1%포인트 차로 앞섰다. 오차범위(±2%포인트) 내지만 보우소나루가 룰라를 앞선 건 처음이다. 직전 조사에서는 룰라가 46%, 보우소나루가 45%였다.
브라질 대선 1차 투표는 10월 4일 열린다. 과반(50%) 득표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득표율 상위 2명이 붙는 결선 투표를 같은 달 25일 치른다. 룰라는 보우소나루와의 가상대결에서 줄곧 앞서왔다. 하지만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격차가 줄어드는 추세다. 여론조사 업체 콰에스트의 최근 조사에선 룰라와 보우소나루가 각각 지지율 41% 동률을 기록했다.
룰라는 남미를 상징하는 좌파 정치인이다. 소년공을 거쳐 노조 지도자를 지낸 노동계 거물이다. 2003~2010년 연임한 뒤 2018년 부패 혐의로 구속됐다 풀려나는 등 부침을 겪었다. 2023년 3선에 성공했다. 국내에선 빈곤층 지원과 최저임금 인상 등 사회복지 정책을, 해외 무대에선 미국·중국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글로벌 사우스(남반구 중진국 연대)’의 구심점 역할을 하며 영향력을 키웠다. 역시 소년공 출신인 이재명 대통령과도 올해만 2·6·7월 세 차례에 걸쳐 만나며 관계를 유지해 왔다.
반면 보우소나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노골적인 지지를 받는 우파 후보다. 룰라가 정계를 떠난 2019~2022년 브라질을 이끈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장남이다. 감세와 강력한 범죄 대응 등 보수 노선을 강조한다. 아버지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2022년 대선 패배 뒤 쿠데타를 모의한 혐의로 지난해 대법원에서 징역 27년 3개월을 선고 받고 현재 가택연금 상태다. 이후 브라질 대법원은 룰라와 보우소나르 측으로 갈려 내분을 겪고 있다. 트럼프는 최근 “브라질 사법부가 내란 혐의로 기소된 (자이르) 보우소나르를 마녀사냥하고 있다”며 측면 지원했다.
김경진 기자
보우소나르가 대권을 잡는다면 중미·남미를 휩쓰는 ‘블루 타이드(blue tide·우파 집권)’ 벨트가 완성된다. 지난해 연말부터 페루·콜롬비아·볼리비아·코스타리카·칠레 등에서 우파 지도자가 잇따라 승리했다. 지난해 트럼프가 집권한 뒤로 범위를 넓히면 아르헨티나를 비롯해 파라과이·에콰도르·온두라스도 마찬가지다. 좌파 지도자가 명맥을 유지하는 건 브라질·멕시코·우루과이 정도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중남미 대선에서 우파 또는 중도우파 후보가 15곳 중 12곳에서 승리했다”며 “이념적으로 보수로 돌아섰다기보다 범죄와 치안, 경제난에 대한 유권자의 불만이 기존 좌파 정부를 심판하는 투표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브라질은 그저 그런 남미 국가 중 하나가 아니다. 남미 최대 경제·인구 대국인 데다 국제 정치 무대에서 룰라는 단순히 브라질 대통령 이상의 지위였다. 중국·러시아·인도·남아프리카공화국과 뭉쳐 만든 브릭스(BRICs)는 물론이고 주요 20개국(G20), 유엔(UN·국제연합) 등에서 중진국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스피커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룰라가 10월 대선에서 패할 경우 브라질이 미국의 지원을 받는 중남미 보수 블록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짚었다. 브라질 최대 교역국이자 전략 파트너인 중국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