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몰 김포공항점에 9일 열린 팝업 행사장. 왼쪽 사진은 '힙부즈' 매장에서 고객이 구경하는 모습. 오른쪽은 기념 사진을 촬영할 수 있게 마련해둔 공간. 강보현 기자
지난 9일 찾은 롯데몰 김포공항점 ‘붓다를 붓다’ 행사장은 평일 낮 시간대임에도 20~30대 고객들로 붐볐다. 행사장엔 불교를 재해석한 팝업스토어들이 모였다. 거북이 부적을 샀다는 김수진(38)씨는 “굿즈 자체도 예쁘고, 피로한 삶에 위로를 주는 문구들도 와 닿았다”고 말했다.
팝업스토어엔 스카프·팔찌·키링·티셔츠·가방 등 불교를 활용한 상품이 전시돼 있었다. 연등 아래에 연꽃 쿠션을 깔아 꾸며 놓은 공간에선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힙부즈’ 손묘경 대표는 “불교는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이든 종교가 없는 사람이든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며 “‘엄마가 교회 권사님인데 염주 팔찌 샀어요’라고 말한 고객도 있었다”고 전했다.
MZ세대를 중심으로 번진 이른바 ‘힙불교’ 현상이 유통가에서 젊은 층을 오프라인 매장으로 끌어들이는 핵심 콘텐트로 자리잡고 있다. 불교의 ‘마음 챙김’ 철학에 유머 코드를 더한 밈(meme)이 소셜미디어(SNS)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면서다.
롯데몰에 열린 불교 팝업스토어에서 판매하는 제품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불교 악세사리, 티셔츠와 가방, 키링, 스티커와 카드 등. 강보현 기자
1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대형쇼핑몰은 잇따라 ‘불교 팝업’을 열고 있다. 더현대서울은 지난 6월 ‘템플 위크’ 행사를 성황리에 마쳤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팝업스토어 전체 구매고객 가운데 2030세대 비중이 70%에 달할 정도로 젊은 층의 호응이 뜨거웠다”고 전했다. 체험형 상품으로 내놓은 ‘선재스님 사찰음식 클래스’는 예약을 오픈한 지 5분 만에 마감됐고, 혜원스님의 차 명상 클래스 역시 예약 당일 전석 마감됐다. 스타필드 수원에서도 지난달 불교 관련 굿즈를 판매하는 ‘이너피스 잡화점’이 열렸다.
바반투·해탈컴퍼니·고냥미 등 불교 패션·잡화를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도 재미와 실용을 겸비한 이색 상품을 내놓고 있다. ‘번뇌 닦이는 클리너’ 문구가 적힌 안경닦이, 눈에 하트가 박힌 부처님 그립톡, ‘탐욕을 멸하는 수건’이 적힌 수건 등이다. 독특한 디자인에 솔드아웃(완판)된 제품이 많다.
불교 굿즈를 판매하는 온라인몰 상품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힙부즈'의 키링와 자석, '바반투'의 티셔츠, '고냥미'의 키링, '해탈컴퍼니'의 생활용품. 각사 홈페이지
불교가 2030 세대에 호응을 얻는 비결은 불교가 주는 여유 덕이다. 성공과 무한 경쟁을 압박하는 대신, ‘적게 바라며, 만족할 줄 안다’ ‘집착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운다’ 등의 철학이 청년들에게 역설적인 해방감을 줬다. ‘뉴진스님’의 디제잉, 연애 프로그램 ‘나는 솔로’를 모티브로 한 ‘나는 절로’ 등 가볍게 소비할 수 있는 콘텐트도 인기에 한몫했다. B급 유머가 더해지며 종교의 문턱을 낮추고 ‘힙하고 트렌디한 놀이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이에 유통업계도 불교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유통업계 입장에선 젊은 소비자를 오프라인 매장으로 끌어들이는 효과가 크다. SNS에 인증 사진을 남기려는 2030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평소 백화점이나 복합쇼핑몰을 잘 찾지 않던 ‘엄지족’을 현장으로 불러내는 유인책이 되고 있다.
체험형 콘텐트에 참여하고, 팝업스토어를 구경하기 위해 들른 2030 소비층이 인근 패션·식음료 매장을 이용하면 자연스럽게 연계 소비도 유도할 수 있다. 한 대형 유통업체 관계자는 “특정 종교 색채가 짙은 행사는 자칫 타 종교인의 반발이나 불매 운동으로 번질 위험이 있지만, 불교는 이런 부담이 적다”며 “종교라기보다는 한국의 전통문화나 힐링 콘텐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지난해 한국갤럽 조사에서 비종교인의 호감도 1위 종교는 불교(15%)로 천주교(11%), 개신교(6%)를 앞섰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종교적 권위를 내려놓고 위로와 유머를 더한 불교의 파격적인 시도가 2030 세대의 소비 심리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