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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미니 스커트 입고 땀 뻘뻘…시선마저 조율하는 ‘피아니스타’

중앙일보

2026.09.11 22:00 2026.09.12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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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호의 클래식 수퍼스타즈

피아니스트 유자 왕. 그녀는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바쁜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다. [사진 유자 왕 페이스북]

피아니스트 유자 왕. 그녀는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바쁜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다. [사진 유자 왕 페이스북]


11일 중국계 피아니스트 유자 왕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YUJA’가 영국에서 개봉했다. 현재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바쁜 여성 피아니스트 가운데 한 명인 그의 일상을 좇는 작품이다. 공항과 호텔, 연습실과 공연장이 숨 가쁘게 이어지고,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특유의 벼락같은 연습이 계속된다. 화려한 뉴욕 생활 뒤편으로는 최정상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마친 뒤 홀로 호텔로 돌아가는 솔리스트의 고독도 비친다.

최근 다큐멘터리 ‘YUJA’ 영국서 개봉
유자 왕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 ‘YUJA’가 영국에서 개봉했다. [사진 카고 필름 홈페이지]

유자 왕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 ‘YUJA’가 영국에서 개봉했다. [사진 카고 필름 홈페이지]

예고편에는 흥미로운 장면이 나온다. 인터넷에서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다 연주보다 외모에 관한 이야기가 훨씬 많이 쏟아지는 결과를 보고 당황한다. 몸에 달라붙는 짧은 드레스와 하이힐, 무대에 등장해 깊숙이 몸을 숙였다가 반동으로 단숨에 일어서는 특유의 인사법까지, 유자 왕은 커리어 내내 음악과 신체가 함께 기억되는 무대를 만들어왔다. 관객은 물론 악단원의 관음적 시선까지 유자 왕은 공연의 에너지로 끌어들였다.

그렇게 대체하기 힘든 시각적 아이콘이 됐지만, 음악보다 섹스어필을 먼저 소비하는 세간의 반응 앞에서는 당혹스러워한다. 그를 따라다닌 다큐멘터리는 이전에도 꾸준히 제작됐다. 카메라가 거듭 발견한 것은 화려한 외양 뒤의 지적 호기심과 완벽주의, 음악을 향한 집요함이었다. 어디까지가 실제 유자 왕이고, 어디부터가 스스로 연출한 ‘YUJA’일까.

이번 다큐에 앞서 대중의 관심을 붙잡았던 것은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와 시카고 심포니 음악감독을 겸하는 클라우스 메켈레와의 열애였다. 두 사람은 2021년경 오슬로 필하모닉에서 만나 2022년 베르비에 페스티벌을 거치며 가까워졌다. 이후 소셜미디어에 ‘커플 인증샷’이 올라오면서 공개 연애로 접어들었다. 가족과 함께한 ‘상견례풍’ 사진까지 등장했고, 자신의 공연 일정이 없는데도 메켈레의 내한에 동행해 함께 한 사진이 국내 언론에 잡혔다.

관계는 2024년 초 두 사람이 소셜미디어에서 서로를 언팔하면서 끝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메켈레가 지휘하는 미국 악단과 예정됐던 협연도 잇따라 취소됐다. 이들의 연애와 결별은 공연 못지않은 뉴스가 됐다. 함께 서면 화제가 됐고, 헤어진 뒤에는 다시 마주칠지가 관심사가 됐다. ‘파워 커플’의 등장과 퇴장은 수퍼스타의 사생활까지 클래식 공연을 둘러싼 흥행 서사에 편입시켰다.

유자 왕은 일찍부터 이런 관심 속에서 성장했다. 쏟아지는 호기심을 자신의 개성과 무대 캐릭터로 바꾸는 법도 익혔다. 10대 후반부터 패션 잡지에 등장했고, 미디어는 일찌감치 ‘유자 왕’ 이미지를 키웠다. 그 화제성을 20년 가까운 정상급 커리어로 이어준 힘은 결국 피아노였다. 도이치그라모폰과 장기 계약을 맺었고, 야닉 네제 세갱과 구스타보 두다멜을 비롯한 정상급 지휘자들이 거듭 그를 찾았다.

건반의 출발은 베이징이었다. 1987년 무용수 어머니와 타악기 연주자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베이징 중앙음악학원에서 공부했고, 캐나다 마운트로열을 거쳐 커티스 음악원에서 게리 그래프먼을 사사했다. 전환점은 2007년 찾아왔다.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빠진 보스턴 심포니 공연에 대타로 투입돼 샤를 뒤투아 지휘로 차이콥스키 협주곡 1번을 연주한 것. 이후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마이클 틸슨 토머스처럼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난 거장들의 신뢰까지 얻었다.

젊은 시절 가장 강력한 무기는 뭐니 뭐니 해도 속도였다. 프로코피예프와 라흐마니노프, 리스트에서 그의 손가락은 빠르고 정확했고 리듬은 거침없이 질주했다. ‘디 차이트’는 스물두 살의 그를 ‘날아다니는 손가락’으로 소개하면서 제목에는 “비르투오소로만 남고 싶지 않다”를 달았다. 독일 언론의 관심은 이미 빠른 손 너머를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20대 중반에는 베토벤으로 깊이를 넓혔다. 본능적으로 몸에 들어온 러시아 음악과 달리 독서와 사고, 삶의 시간을 들였다. 그렇게 파고든 ‘함머클라비어’ 소나타는 테크닉을 지성으로 벼려가던 20대 유자 왕을 상징했다.

30대의 극점은 2023년 카네기홀이었다. 네제 세갱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를 상대로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네 곡과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을 하루에 몰아쳤다. 곡마다 드레스를 갈아입으며 네 시간 넘게 땀에 젖어 건반을 두드렸다. 특유의 비르투오시티가 가장 육체적으로 드러난 밤이었다. 마흔을 앞둔 지금은 존 애덤스, 메시앙, 리게티까지 영역을 넓혔다. 2024년 ‘뉴요커’는 글래머와 신체적 연주로 청중을 현대음악까지 데려가는 그를 ‘패셔니스타 모더니즘’으로 포착했다.

유자 왕은 작품을 사람에 비유하길 즐긴다. 처음에는 낯설어도 알아가며 친구가 되고, 후기 브람스처럼 몇 년을 숙성시켜야 가까워지는 음악도 있다고 말한다. 가장 빠른 손을 가진 피아니스트가 자신의 음악을 만드는 데에는 긴 시간을 쓴다. 그렇게 쌓은 숙련을 누군가 알아봐 줄 때 힘을 얻는 모습도 흥미롭다. 무대 위 완벽주의와 스타로서의 인정 욕구는 어쩌면 같은 뿌리에서 자란다.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에 민감한 감각은 국적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비교할 인물은 한 세대 앞서 세계적 스타가 된 랑랑이다. 두 사람 모두 커티스에서 그래프먼을 사사했지만 세계무대에 드러낸 중국성은 사뭇 달랐다. 랑랑이 ‘중국의 세계화’를 상징했다면, 유자 왕은 세계에 자리 잡을수록 개인이 선명해졌다. ‘디 차이트’가 중국인과 미국인 가운데 어디에 가깝냐고 묻자 주저 없이 “미국인!”이라고 답했다. 3년 뒤 얼마나 미국화됐느냐는 질문에는 “꽤 많이”라고 한 뒤, 증거로 “내 옷”을 들었다. 초미니 스커트가 트레이드마크로 굳어진 때였다.

과거 클라우스 메켈레와 열애로 화제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 과거 유자 왕과 연애로 화제를 모았다. [중앙포토]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 과거 유자 왕과 연애로 화제를 모았다. [중앙포토]

그를 읽는 방식도 유럽과 미국, 중화권에서 갈린다. 독일 비평은 중국 배경을 의식하면서도 유럽 피아니즘의 전통 안에서 음악을 엄격하게 평가해왔다. 미국에서는 카네기홀과 현대음악으로 이어지는 자국 클래식 생태계의 정점으로 받아들인다. 중화권은 베이징에서 출발해 세계 정상에 오른 성공에 자부심을 겹쳐 본다. 한 사람을 두고 유럽은 전통을 묻고, 미국은 개인을 보며, 중국은 성취를 읽는다.

한국에서의 첫인상은 또 달랐다. 랑랑과 윤디 리가 처음부터 ‘중국이 부양한 스타’ 색채를 짙게 띠었다면, 초기의 유자 왕은 EMI 시절 사라 장과 장한나가 일본에 소개되던 풍경에 가까웠다. 도이치그라모폰이 밀어 올린 아시아의 젊은 연주자 이미지가 국적보다 먼저 보였다. 유자 왕에게 중국은 고정된 정체성보다 때로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배경으로 지금도 남아 있다.

유자 왕의 스타덤을 보면 클래식 스타를 둘러싼 세대 변화도 읽힌다. 오랫동안 클래식 스타에게는 삶과 예술을 하나의 이미지로 묶는 일관성이 중요했다. 오늘의 글로벌 스타는 여러 자아를 자유롭게 오간다. 소셜미디어 속 개인과 무대 위 음악가, 상업적 브랜드, 이민자와 뉴요커가 필요에 따라 앞뒤를 바꾼다. 서로 다른 얼굴의 공존 자체가 캐릭터가 된 시대, 그 앞줄에 유자 왕이 있다.

이 흐름은 다음 세대에 더 두드러진다. 도이치그라모폰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와 마리아 두에냐스, 중국계 신예 피아니스트 뤼텐야오와 왕지퉁, 소피아 류에게서도 연주와 패션, 국적과 글로벌 시장을 여러 겹의 스타 이미지로 엮어가는 ‘유자 왕’식 센스가 보인다. 특히 권위 있는 콩쿠르 우승이라는 전통적 등용문을 거치지 않고도 세계 시장에서 빠르게 존재감을 키우는 음악가들이 아시아계 여성 연주자 가운데 등장하는 현상은 시사적이다.

연주 실력 만으로 매긴 서열로는 ‘유자 왕’ 현상을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 시장에 따라 이미지를 조율하면서 여러 문화 사이를 오가며, 자신에게 쏠린 관심을 다시 음악으로 연결하는 능력까지가 이제 수퍼스타의 자산이 됐다. 유자 왕은 스타성이 음악을 가리는 게 아니라, 관객을 더 깊고 낯선 음악으로 데려가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선명히 보여준다.

한정호 공연평론가·에투알클래식 대표. 런던 시티대 대학원 문화정책 매니지먼트 석사. 발레리나 박세은, 발레리노 전민철 등의 에이전시와 문화정책 자문을 담당하는 에투알클래식 대표를 맡고 있다. 현재 이화여대 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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