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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태의 타임머신] OPEC 창설

중앙일보

2026.09.13 08:06 2026.09.13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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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태 작가·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노정태 작가·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석유는 깊은 땅속에 묻혀 있다. 꺼내 쓰기 위해서는 기술과 자본이 필요하다. 선진국 중 자국 영토 내에 유전을 가진 나라는 미국이 유일했다. 영국·네덜란드, 그 외 서유럽 국가들은 중동 등의 유전을 개발하기 위해 해당 지역의 정치에 깊숙이 관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세기 중반까지 이른바 ‘일곱 자매(seven sisters)’로 불리는 대형 석유 기업들이 중동 산유국의 정치에 개입하며 유가를 결정하고 시장을 좌우했던 이유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구 식민지 국가들이 차례로 독립하면서 민족주의가 전 세계로 확산되어 나갔다. 산유국이 집중된 중동 역시 마찬가지였다. ‘석유는 우리 것인데 외국 기업이 돈을 번다’는 불만이 커져가던 중, 1959년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일제히 유가를 낮추기로 결정한 석유 회사들에 맞서 그해 4월 카이로에서 ‘아랍 석유 회의(Arab Petroleum Congress)’가 개최된 것이다. 그때 모인 국가는 이라크·이란·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베네수엘라. 이들 다섯 국가가 이듬해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결성했다(사진). 1960년 9월 14일의 일이었다.

1960년대 말까지 OPEC의 영향력은 가시화되지 않았다. 문제는 70년대와 함께 시작됐다. 당시까지 확인된 석유 매장량의 80%, 원유 생산량의 40%를 좌우하던 OPEC가 생산량 감축을 발표하자 시장에 불안 심리가 확산됐고, 석유 사재기로 이어져 유가를 폭등시키는 악순환이 벌어지면서, 세계는 물가 상승과 저성장을 동시에 겪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졌다. 석유 수요가 급락하면서 OPEC 회원국에게 손해가 돌아온 것이다.

오늘날 OPEC는 20세기와 같은 위상을 누리고 있지 못하다. 2008년 미국에서 셰일 가스 채굴법을 개발하면서 중동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졌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이란, 하마스 등의 전쟁 과정에서 중동 각국의 외교적 셈법과 이해관계가 나뉘면서 올해 아랍에미리트(UAE)가 OPEC 탈퇴를 선언하기까지 했다. 대한민국 또한 그러한 변화의 리스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경각심을 가지고 중동의 정세를 지켜보며 우리의 국익을 지켜나가야 한다.

노정태 작가·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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