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주 인터그래비티 대표가 7일 오후 대전 대덕테크노밸리에 위치한 인터그래비티 본사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촬영하고 있다.김성태 객원기자
K우주가 진화하고 있다. 인공위성에서 시작해 발사체에 도전하더니 이제는 우주궤도를 오르내리며 임무를 하는 궤도수송선(OTV·Orbital Transfer Vehicle)을 만드는 스타트업까지 생겨났다. 미국 민간기업 스페이스X가 재사용발사체로 세계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항공우주국(NASA)이 달 유인기지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시대이긴 하지만, 10여년 전 러시아의 1단 액체로켓을 들여와 전남 고흥에서 첫 한국형발사체(KSLV-1) 나로호를 쏘아 올리던 당시를 생각하면, 큰 변화다. 우주쓰레기 청소선 얘기를 담은 국산 SF영화 '승리호'(2021)가 이젠 이 땅에서도 현실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인터그래비티(Intergravity)’.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가 별 사이의 얘기라면, 인터그래비티는 중력이 작용하는 천체 간의 '무엇'이다. 스타트업 인터그래비티는 달과 지구의 중력이 미치는 그 사이에서 비즈니스를 하겠다는 기업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소형발사체를 연구개발하던 이기주(52) 박사가 동료들과 함께 연구원을 뛰쳐나와 2024년 4월 북대전 테크노밸리에서 창업한 회사다. 이젠 스타트업 대표가 된 이기주 박사의 경력은 만만치 않다.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학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메릴랜드대에서 항공우주 구조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후연구원을 거쳐 버지니아주 올드도미니언대에서 교수로 일하다 2011년 귀국했다. 이후 항공우주연구원에 입사, 누리호 개발에 참여했고, '미래발사체연구단'으로 옮겨, 소형발사체용 선행기술 개발을 이끌면서 메탄엔진 3D프린팅 기술 등을 개발했다. 국가 R&D인 '소형발사체 개발역량 지원사업'의 책임자도 맡았다. 지난 7일 대전 테크노밸리가 있는 유성구 탑립동 지능로봇산업화센터 4층의 인터그래비티 본사를 찾아 이 대표를 만났다.
박경민 기자
위성마다 목적 궤도가 다른 시장
Q : 궤도수송선이 뭔가.
A : 우주발사체가 특정 궤도에 올려놓은 위성이나 화물을 목표 궤도까지 옮겨주는 우주선이다. 발사체는 위성을 정해진 궤도까지만 데려다주는데, 궤도수송선은 거기서부터 최종 궤도까지 위성을 옮기고, 필요하면 궤도 위에서 추가로 운용까지 담당한다.
궤도수송선은 특정 궤도에 도착한 '우주화물'을 최종 목적지까지 배달하는 '라스트 마일(Last Mile) 택배망' 역할을 한다. 스페이스X는 한 번에 수십 수백개의 위성을 저렴한 비용으로 특정 궤도까지 올려놓지만, 위성마다 목적하는 궤도가 달라, 자체 추진엔진과 연료를 추가로 써야 한다. 궤도수송선은 이런 역할을 대신해 줄 수 있다.
Q : 왜 지금 궤도수송선인가, 국내에선 아직 발사체 개발도 진행형인데 이르지 않나.
A : 국내에는 이미 여러 회사가 소형발사체에 도전하고 있어, 우리까지 같은 길을 반복할 이유는 없다고 판단했다. 오히려 발사체가 늘어날수록 그다음 단계인 궤도상 위성 이동·운용 수요는 커질 수밖에 없어서,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했다. 스타십과 같은 초대형 완전 재사용 발사체의 등장으로 발사 비용이 낮아지고 궤도상에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으로 보는 것도 같은 판단의 배경이다.
국내에도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우주발사체 회사가 다수 있다. 스타트업 중에는 이노스페이스가 고체와 액체를 같이 쓰는 하이브리드형으로,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는 액체 메탄엔진으로, 우나스텔라가 전기모터펌프 사이클 엔진 방식으로 소형 우주발사체를 개발하고 있다. 대기업 중엔 누리호 기술을 이전받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35t 액체 메탄엔진을 개발 중인 현대로템 등이 있다.
박경민 기자
Q : 안정된 연구원을 나와 창업을 했다.
A : NASA가 소형 달탐사선을 소형발사체로 보내는 것을 보고, 소형발사체 수송 임무의 확장을 위해 궤도 수송선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출연연에서는 정해진 과제 범위 안에서만 움직일 수밖에 없는데, 궤도수송과 제조·회수를 하나로 연결하는 그림은 창업을 통해서만 실현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Q : 창업하자마자 연구원을 퇴사했다. 겸·휴직도 가능하지 않나.
A : 겸직은 불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 휴직 후 창업하는 방법도 가능하긴 하지만, 궤도 수송선은 여러 명이 함께 창업해야 하는 시스템 사업이라 퇴사를 선택했다. 창업에 전념하기 위해서는 퇴사가 더 맞는 방향이라고 판단했다.
Q : 인터그래비티만의 기술력은 뭔가
A : 자체 개발한 아산화질소·에탄 친환경 이원추진제 추진시스템이 핵심기술이다. 이 추진시스템을 기반으로 궤도수송과 제조·회수까지 하나로 연결하는 구조를 설계하고 있다는 점이 차별점이다.
이기주 인터그래비티 대표가 7일 오후 대전 대덕테크노밸리에 위치한 인터그래비티 본사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촬영하고 있다.김성태 객원기자
해외의 궤도수송 분야 기업들
Q : 경쟁기업이 있을 텐데, 어떻게 활동하고 있나.
A : 해외에서는 임펄스스페이스(미국)·디오빗(이탈리아) 등이 궤도수송 분야에서 앞서 있다. 이들의 사업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정부기관의 임무 계약을 초기 매출이자 기술 검증 기회로 함께 활용하는 것이다. 임펄스스페이스는 미 우주군 임무 계약을 다수 수주했다. 둘째는 실증 마일스톤을 근거로 대형 후속 투자를 유치해 초기 자금 공백을 메우는 방식이다. 임펄스스페이스는 시리즈C에서 3억 달러를, 디오빗은1억5000만 유로를 조달했다. 특히 디오빗은 소형위성 배치처럼 상대적으로 검증된 사업에서 먼저 매출을 만들고, 이를 발판으로 궤도상 서비스 영역을 넓혀온 점이 참고할 만하다. 우리도 2026년 누리호 기반 실증과 정부 R&D를 통한 기술·자금 확보, 2027년 상용 발사를 통한 초기 매출 창출이라는 같은 흐름을 따르고 있다.
Q : 우주산업 특성상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쉽지 않을 것 같다.
A : 맞다. 그래서 처음부터 대량 생산이나 대규모 매출을 노리기보다, 손익분기점에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전략을 갖고 있다. 먼저 50㎏급 소형 궤도수송선(iGRVT-50)으로 실증을 마치고, 동일한 추진시스템을 기반으로 탑재량을 스케일업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계획이다. 동시에 500㎏급 중형 상용 궤도수송선(iGRVT-500)의 서비스를 다각화해, 2030년경에는 손익분기점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Q : 우주산업 투자 유치가 쉽지 않을 텐데.
A : 현재 프리A까지 104억원을 모았다. 기술 개발에서 끝나지 않고, 실제 발사·실증 일정과 고객 확보 계획을 구체적인 마일스톤으로 제시하며 설득하고 있다. 추진시스템을 자체 개발해 검증까지 마쳤다는 점도 투자자들이 신뢰하는 부분이다. 미국처럼 화성 이주, 우주 데이터센터 같은 큰 비전을 내세워 자본을 끌어모으는 방식이 성과로 뒷받침되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국내에서는 우선 유의미한 매출을 올리고, 국가과제를 수주한 뒤 유명 기업과의 국제협력이 투자 유치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
Q : 한국에서 민간이 주도하는 ‘뉴 스페이스’(New Space) 생태계가 가능할까.
A : 가능하다고 본다. 다만 발사체 산업 하나만으로는 부족하고, 궤도 서비스와 우주제조 같은 후속 산업까지 함께 커져야 진짜 생태계가 된다. 특히 대한민국은 제조기술 강국이라는 기반을 가지고 있어, 이를 후속 산업으로 확장할 잠재력은 충분하다고 본다. 최근 우주항공청 출범 이후 이런 후속 산업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점도 긍정적이다.
Q : 국내 투자 생태계에 대해 할 말이 있다면.
A : 우주 분야는 회수 기간이 길고 초기 자본이 많이 들어가는 산업인데, 국내 투자자들은 우주 산업의 이런 특성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장기적으로 봐줄 수 있는 딥테크 전문 투자자층이 더 두터워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산업이 커질 것이라는 방향은 분명하지만, 어떤 기업이 정답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이기주 인터그래비티 대표가 7일 오후 대전 대덕테크노밸리에 위치한 인터그래비티 본사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촬영하고 있다.김성태 객원기자
지구 저궤도에서 운영하는 회사
Q : 향후 목표와 비전은.
A : 5년 뒤에는 궤도수송과 회수, 우주제조를 하나로 연결한 서비스를 지구 저궤도에서 실제로 운영하는 회사로 자리 잡고 싶다. 그 과정에서 한국이 발사 경쟁을 넘어 궤도에서 가치를 만들어내는 나라로 인식되는 데 기여하는 것이 우리 목표다. 10년 뒤에는 활동 영역을 달까지 넓혀 항법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회사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다.
예측은 현실과 다르다. 과학기술도 그렇지만, 이를 기반한 시장은 더욱 그렇다. '우주는 강대국들만의 얘기'라고 생각하던 10여년 전, 대학에서도 항공우주공학과에서 특히 우주 분야는 인기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 달라졌다. 우주가 수재들의 도전 대상이 되고 있다. 더더욱 놀라운 건, 우주 불모지 같던 시절에 우주의 꿈을 품고 도전한 이들이 이 땅에도 있었다는 거다.
이강수 컴퍼니케이파트너스 투자부문 대표
이강수 컴퍼니케이파트너스 투자부문 대표
"인터그래비티 창업팀은 발사체 및 위성 연구자와 산업 실무진이 모인 국내 최고 수준의 팀이다. 궤도수송선과 회수선은 기술 진입장벽이 높아 국내외 상업 서비스가 많이 없는 분야인데, 뉴스페이스 시대 수송을 포함한 궤도 내 서비스가 급증할 것으로 보여 시장을 선점할 가능성이 있다."
이상철 항공우주연구원장
이상철 항공우주연구원
“이기주 대표는 항우연 재직 시 소형 메탄엔진을 연구하며 발사체 선행 기술을 이끈 실무형 연구자였다. 창업 후 발사체 기술을 우주공간에서의 궤도수송·제조·회수로 확장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그의 행보는 출연연의 연구성과가 실험실을 넘어 산업적 가치로 이어지는 사례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