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야호딘역에서 발생한 드론 공격에 열차 탑승객들이 대피하고 있다. 공격은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 등 유럽 고위 인사가 탄 열차가 통과한 직후 이뤄졌다. 폴란드와 국경을 마주한 우크라이나 도시 야호딘은 국경에서 불과 2㎞ 떨어져 있다. [사진 X 캡처]
우크라이나전쟁에서 교착 상태에 빠진 러시아가 유럽의 공항과 기반시설에 대한 파괴 공작은 물론 고위 인사를 노린 듯한 드론 공격 등 하이브리드전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표적과 노림수가 모호한 도발인 탓에 유럽은 수세적 대응만 되풀이하고 있다. 러시아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흔들기’에 속수무책인 모습이다.
1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이날 러시아 드론은 폴란드 국경 인근 우크라이나 야호딘역에 정차한 열차를 공격했다.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 칼 빌트 전 스웨덴 총리, 유럽 안보 관계자들이 탄 열차가 같은 노선을 통과한 직후 폴란드 국경에서 불과 2㎞ 떨어진 지점을 타격한 것이다. 이들 인사는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열린 연례 안보회의에 참석한 후 폴란드행 전세 열차로 이동 중이었다.
김주원 기자
우크라이나 철도공사는 “공격 위협에 따라 실시간으로 운행 일정을 조정하면서 외교 사절단 열차가 예정보다 일찍 출발했다”며 “러시아 드론의 실제 표적이 해당 열차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다른 열차에 탄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야호딘역 주변에서 대피했다. 그는 “민간인에게 공포를 심고, 우크라이나 방문을 고려하는 사람들을 위협하려는 의도”라고 추측했다. 반면 러시아는 유럽에서 군수물자를 운송하는 우크라이나 서부 철도망을 공격한 것이라며, 서방 고위 인사 겨냥 의혹을 부인했다.
유럽연합(EU)·나토 회원국인 폴란드는 군용기를 긴급 출격시키고 비상 안보회의를 열었다. 도날트 투스크 총리는 “정보기관을 통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 통과 지점을 교란시키거나 파괴하려 한다는 정보를 사전에 입수했다”며 “우리 영토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닷새 전인 지난 8일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출국길이 러시아 드론 때문에 막히기도 했다. 젤렌스키가 몰도바 수도 키시너우에서 노르웨이로 향하려던 중 러시아 드론이 몰도바 영공을 침범했다. 몰도바는 나토 회원국은 아니지만 EU 가입을 추진 중이며, 해당 드론은 나토 회원국 루마니아 영공에도 들어갔다.
독일 정부는 라이프치히·할레 공항에서 지난달 4일 발생한 폭발물 탑재 드론 공격 시도를 러시아 소행으로 결론 내렸다. 나토 군수지원의 거점인 이곳에는 우크라이나 대형 수송기들도 배치돼 있었다. 러시아는 개입을 부인했다.
러시아의 최근 공세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유럽 당국이 러시아 소행으로 지목한 파괴 공작 등이 20건에 달했다고 전했다. 전쟁 이후 월간 기준 가장 많은 수준이다.
러시아가 이같은 공격을 지속하는 것은 우크라이나 전선이 교착 상태라서다. 미국 전쟁연구소는 “지난달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확보한 면적은 약 90㎢”라며 “지난해 같은 달의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의 지원을 막고, 나토의 대응 의지를 시험하기 위해 표적과 의도를 명확히 알 수 없고 군사적 위협에 방화 등 비군사 수단을 섞는 하이브리드전을 확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나토는 집단방위를 규정한 북대서양조약 5조를 발동할 수 있다고 하지만, 하이브리드전에 대해선 각국의 셈법이 다를 수 있다. 유럽 각국이 확전을 피하려 해 대응이 어려운 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