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대 높던 선진국 기업들이 ‘패스트 팔로어(추격자)’를 자처하며 중국을 배우러 달려가고 있다. 연구실에서 개발된 기술이 곧바로 공장으로 옮겨져 양산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차이나 스피드’의 실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다.
14일(현지시간) 로이터에 따르면 중국 공장들은 휴머노이드 로봇, 인공지능(AI) 모델, 대규모 전기차 생산시설을 앞세워 ‘기업 관광객’ 손님을 끌어모으고 있다. 중국 첨단 기술 현장을 본 버트랜드 첸 글로벌 해운비즈니스 네트워크(GSBN) 최고경영자(CEO)는 “공장에 가보지 않고는 중국이 이뤄낸 혁신의 실체를 알 수 없다”고 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이런 ‘산업관광’ 사업이 연평균 18% 성장해 2029년 3000억 위안(약 6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봤다.
실제 오랜 세월 ‘가성비’ 이미지가 강했던 ‘메이드 인 차이나’는 세계 산업의 중심에 우뚝 섰다. 미국 싱크탱크인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에 따르면 중국은 전 세계 첨단산업 생산의 24.9%를 차지하며 최대 생산국으로 떠올랐다. ITIF 보고서는 “중국의 여러 핵심 산업이 서로서로 공급망을 받쳐주고 있어, 외부 충격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전방위적 확장 뒤에는 치밀한 ‘중국식 원팀 생태계’가 있다. 중국 국가지식재산권국(CNIPA)이 지난 3월 자국내 2700여 개 대학·연구기관이 보유한 특허 134만9000건을 전수조사하고, 사업화 가능성이 있는 발명특허 약 68만 건을 선별해 46만 개 기업과 연결했다고 발표한 게 대표적이다. 서랍 속에서 잠자던 연구실 특허를 국가가 발 벗고 나서 산업 현장에 수혈한 셈이다. 이렇다 보니 기업 간 결속력도 상상을 초월한다. 국내 반도체 업계 한 임원은 “중국은 경쟁관계인 업체의 인재들이 한 데 모여 해외 우수 장비를 뜯어보더라”며 “한국이었다면 담합으로 몰릴 일인데, 이를 무기로 삼고 있었다”고 전했다.
차준홍 기자
여기에 매년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분야에서 박사 학위 인재 약 5만 명이 쏟아지고, 대학 연구개발(R&D)부터 산업 현장까지 한 몸처럼 움직인다. 일례로 로이터에 따르면 중국은 40여 개 전담 연구소와 11개 대학을 연계한 희토류 R&D 시스템을 구축, 탄탄한 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글로벌 희토류 공급망의 주도권을 완전히 틀어쥐었다. 기업과 손잡고 운영하는 연구소가 100개가 넘는 선전 남방과기대는 설립 14년 만에 네이처인덱스 조사에서 31위를 기록하며 서울대(58위)를 앞질렀다.
투자 규모 자체도 압도적이다. 일본 과학기술·학술정책연구소(NISTEP)의 ‘2026 과학기술지표’에 따르면 중국의 R&D 투자 총액은 864조원으로 세계 1위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국은 아예 기업 연구소를 대학 안에 들여놓고 장기 공동 연구를 시킨다”며 “한국 대학들도 연구 인프라뿐만 아니라 주거·의료·경력 지원까지 아우르는 ‘종합 연구 패키지’로 인재를 붙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차준홍 기자
중국의 거대한 내수시장은 기술력을 실전에서 곧바로 검증하는 전천후 테스트베드가 된다. 전병서 중국경제연구소장은 “가격 경쟁력이 중요한 시장은 중국의 생산 생태계를 활용하되, 원천 기술은 대체할 수 없도록 초격차를 유지하는 ‘투트랙’ 전략이 시급하다”며 “막연히 (중국을) 무서워하며 벽을 칠 게 아니라, 우리가 지킬 선과 활용할 판을 구분하는 진짜 실리가 필요한 때”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