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 거목 서세옥(1929~2020) 부부는 1970년대 서울 성북동에 한옥을 지었다. 새마을운동으로 전국의 한옥이 헐려 나가고, 여의도 아파트를 ‘서울의 맨해튼’이라며 제일로 치던 때였다. 조선의 마지막 대목장 배희환에게 집을 맡겼는데, 한옥 찾는 이가 없어 마포 산동네에서 집수리를 하며 살고 있었다. 전국의 고재를 모아 집을 짓느라 꼬박 6년이 걸렸다. 그렇게 완성된 창덕궁 연경당 닮은 집에, 서세옥은 무송재(撫松齋)란 이름을 붙였다. ‘소나무를 어루만지는 집’이란 뜻이다.
장남 서도호(64)는 이 과정을 지켜보며 자랐다. 공사 기간 내내 네 식구는 친척 집 단칸방에 얹혀 살았다. 밤이면 부모가 두런두런 돈 걱정 하는 얘기를 들었다. 지난 7일 기자와 만난 그는 “부모님이 한옥을 지으신 건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우리 문화유산이 없어질까봐였다”고 말했다.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 중인 서도호의 ‘러빙/러빙(Rubbing/Loving): 서울 집’(2013-2022). [뉴스1]
서세옥은 ‘무송재’를 따로 그림으로 남기진 않았다. 집은 서도호의 손에서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그는 천을 박음질해 집을 만들었다. 한옥 전체를 탁본해 실물 크기 종이집을 세우기도 했다. 그에게 집은 기억이자 추억, 아버지이자 자기 자신이다. ‘나’이면서 ‘우리’, ‘개인’이면서 ‘공동체’인 존재에 대한 성찰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전시 중인 그의 집 작품을 보며 한옥에 산 적도 없는 국내외 관객들은 자기 집을 떠올린다. 거기서 살 맞대고 살았던 가족을, 이 집 저 집 통과하며 고단한 삶을 끌고 온 자신을 돌아본다.
이달 개관한 서울 서교동 ‘윤형근의 집’도 울림을 준다. 단색화 거장 윤형근(1928~2007)은 장인 김환기(1913~74)가 분양받은 국민주택 자리에 1983년 작업실 겸 집을 지었다. 동생 윤도근 당시 홍대 건축과 교수에게 설계를 맡겼지만, 창호 등 세세한 것들까지 직접 그리며 살폈다. 이후 40년, 세상 뜰 때까지 그림 그리며 살았던 그 집을 외아들 윤성렬이 되살렸다. 작업실 바닥의 물감 얼룩, 아들의 책상 위에 직접 짜준 책장, 사방탁자와 백자까지 그대로다. 반골 기질이었던 윤형근의 삶은 여유롭지만은 않았다. 그의 작품 세계는 최근에야 재조명됐다.
정신없이 변하는 서울에서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남기고 지키는 모습이 귀하고 반갑다. 윤형근은 생전 이렇게 말했다. “사실 그림이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떤 자세로 살아가느냐가 문제지.” 두 예술가의 집을 보면서 삶의 자세를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