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서울 상암 빅피시 출판사에서 이경희 대표를 만났다. 창업 후 줄곧 주 7일 근무를 했고, 올 들어서야 주 6일만 일한다는 그는 "왜"라는 질문마다 "안 할 이유가 없으니까"라고 답했다. 김종호 기자
" 당혹스러움. "
지난 8일 오후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점 종로 게이트 쪽에 위치한 베스트셀러 매대 앞에 한참 서 있었다. 종합 1위 자리에 놓인 한국소설 한 권이 난생처음 보는 낯선 책이었기 때문이다. 휴대전화로 검색한 알라딘이나 예스24 순위에서도 역시 1, 2위였다. 언제부터인가 베스트셀러 순위는 종종 "대체 무슨 책이길래?"라는 의문을 자아내는 미스터리일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처럼 아예 해석 불가 느낌은 처음이었다. 유명작가의 신작도 아니고, 인기 아이돌이나 유명 인플루언서의 추천이나 영화화·드라마화와도 무관했을뿐더러 하다못해 그 많은 일간지 서평에 단신 한 줄 실리지 않은 완벽한 무명 책이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수십 년 책을 다뤄온 출판 담당과 문학 담당 기자에게 물어보니 "그게 무슨 책인데?"라는 역질문이 돌아왔다.
3주만에 2억 모아 1만부
소설도 작가 아닌 기획 중심
해외 맞춤 출간 억대 선인세
"대중의 선택·인정이 더 중요"
지난 14일 교보문고 광화문점 베스트셀러 매대에 출간 3주차 『 한국사 이상현상 연구원 』이 2위에 있다. 대대적 마케팅을 벌이는 조정래 작가나 히가시노 게이고 신작보다 높은 순위다. 안혜리 기자
혼란스러움이 가시기도 전에, 무려 170만 부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 『언어의 온도』를 쓴 이기주 작가의 2024년 후속작 1600여 부 사재기 뉴스에 이어 한국 최대 단행본 출판사인 문학동네 창업자 강태형(69) 회장이 IP(지적 재산권) 산업으로의 지형 변화를 직면하고 문학동네를 매각한다는 소식까지 터져 나왔다.
대한민국 출판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서울국제도서전엔 15만~16만 명이 몰리고, 편의점 오픈런을 부른 민음사 빵은 열흘 만에 35만 개가 팔리는 텍스트 힙 시대에 정작 출판계는 초판 1000부도 다 팔기 어렵다는 극심한 불황을 겪는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답을 찾으려 장르물로는 이례적으로 2주 연속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1위(3주차 2위)에 오른『한국사 이상현상 연구원』(이하『이상현상』)을 만든 빅피시(문학 브랜드는 다이브) 이경희(44) 대표를 서울 상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빅피시는 위즈덤하우스 출신 중견 편집자 5명(현재는 3명)이 지난 2021년 공동 창업한 곳으로, 직원 10명이 한해 30여 권의 다작을 하며 기성 출판계와 다른 여러 시도를 하고 있었다. 그 결과 중 하나가 2001년생 무명작가의 첫 작품으로 만들어낸 교보 종합 1위였다. 2시간 넘게 얘기를 듣고 보니, 스타로 키울 이미지를 먼저 정해두고 캐스팅한 후 팬덤과 해외시장을 공략하는 기획력과 데이터 기반 마케팅으로 수익을 내는 K팝 기획사와 유사했다. 일본에서 흘러온 '나폴리탄 괴담' 장르(※상황을 알려주지 않고 단서나 보고서를 줘 독자 스스로 채워가는 형식)인『이상현상』을 매개로 2026년 현재 한국 출판계 얘기를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안혜리 논설위원
Q : -출간과 동시에 종합 1위로 진입했다. 어떻게 가능했나.
A : 교보문고와 독점 북 펀딩을 진행했다. 장르물에 강한 알라딘도 고려했지만 교보는 오프라인 서점까지 있으니 일단 베스트셀러 순위에 들기만 하면 더 많이 팔 수 있을 거라 봤다. 적중했다. 그저 감이 아니라, 최인서(25) 작가가 2023년 10월부터 2024년 9월까지 1020 위주 창작 플랫폼 포스타입에서 연재하며 다진 팬덤이 존재했고 무엇보다 재미가 있었다. 7월 말부터 3주 동안 정가 2만2000원(할인가 1만9800원)짜리 책에 작가의 미공개 '외전', 신문, 요원증을 굿즈로 함께 담은 패키지를 2만300원에 팔았다. 300~500권만 나가도 성공 축에 드는 요즘 출판 펀딩시장을 고려해 일단 1000부를 목표로 잡고 잘 하면 5000부 정도 팔겠다 기대했는데, 총 1억9568만9900원을 모았다. 예약판매 1만 부에 해당한다. 그렇게 1위를 했다.
『 한국사 이상현상 연구원 』은 표지 디자인은 물론 손글씨가 더해진 보고서 형식의 본문 등 독특한 디자인으로 독자들의 소장욕구를 자극했다. 덕질하듯 책을 사는 20대 독자를 노린 거다. 안혜리 기자
A : -실용서를 많이 냈던데 소설로 1위를 했다.
창업 직전 1년 동안 샘앤파커스에서 임프린트(※인프라는 공유하고 편집권은 독립적으로 행사하는 하위 브랜드)를 1년 했다. 그때『달러구트 꿈 백화점』원고를 검토했다. 위즈덤하우스 시절 소설은 해본 적 없고 당장 매출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다른 임프린트(팩토리라인)에 넘어갔다. 100만 부 소설(※2020년대 들어 첫 100만 부 소설)을 놓친 거다. 이때부터 소설에 관심이 생겼다. 마침 한국문학 수출이 동남아를 넘어 영미권까지 잘 되기 시작했다. 신인 작가를 발굴해서 '기획 소설'을 만들기로 했다.『이상현상』은 우리가 낸 다섯 번째 소설이다.
Q : -기획 소설이 뭔가.
A : 작가가 먼저 쓴 원고를 받는 게 아니다. 대신 해외시장에선 이런 주제·소재가 잘 팔리니까 그런 요소를 넣은 소설을 써달라고 출판사가 작가에게 제안한다. 작가 인지도는 중요하지 않다.『시간이 멈춰선 화과자점, 화월당입니다』(이온화) 같은 책이다. 처음부터 '해외시장에서 많이 팔 테니 이런이런 요소를 넣어 써달라'고 주문했다. 팔려고 작정한 상품 기획이다. 수출 최전선에 있는 해외출판 에이전시에 팔릴만한 포인트를 묻고 또 물어 검은 고양이 같은 요소를 넣었다. 표지에도 작게 고양이를 그렸다. 2024년 12월에 나왔는데 마침 한강 작가 노벨상 효과도 있어 독일·미국에 수출로만 억대 선인세(※상당한 액수인데 이 대표는 미공개를 원했다)를 받았다.『달러구트』(2020) 이후 인기를 누린『불편한 편의점』(2021)이나『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2022) 같은 힐링 소설 계열로는 끝물이나 마찬가지였는데도 성과가 좋았다. 한국에선 5000부 조금 덜 팔렸다. 이러니 수출을 안 할 이유가 없다.
"달러구트 작가 누군지 아세요?" 이경희 대표가 물었다. 100만 부 넘게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인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작가 인지도보다 출판 기획이 앞서는 요즘 출판시장을 드러내는 한 장면이었다. 사진은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프로모션 중인『 달러구트 꿈 백화점 0』. 안혜리 기자
Q : -문학은 무조건 해외시장을 노리는 건가.
A : 그보다, 국내에서 못 팔 거 같으면 해외에서 팔 수 있는 걸 해보자는 접근이다. 새 시장을 찾는 거다. 우린 문학 출판사가 아니라서 국내 큰 작가를 섭외할 수 없다. 작가 섭외력 없이 경쟁할 수 있는 방법이 뭔지 조사했다. 팔리는 책이 뭔지 서점을 들여다보고, 해외시장에서 통하는 책들의 공통점이 뭔지 기사 보며 공부하고, 또 에이전시에 계속 물었다. 분기에 한 번꼴로 우리보다 앞선 일본 출판을 배우고 온다. 이런 과정에서 에세이에서도 가능성을 봤다. 진입장벽이 낮아 너도나도 뛰어들지만 사실 국내만 보면 에세이는 쉽지 않다. 유명인 저자를 내세우지 않으면 아무리 주제나 글이 좋아도 안 팔린다. 그런데 지난해 세계 최대 도서전 프랑크푸르트 북 페어에 맞춰 출간한『눈물 대신 라면』은 무명작가(원도)인데도 영국 3대 출판사 펭귄랜덤하우스 임프린트 이버리(Ebury)에 꽤 괜찮은 가격에 팔렸다. 이 책 역시 '요즘 서구에서 음식 등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으니 이런 내용으로 써달라'고 한 기획 에세이다. 올해 프랑크푸르트에는 김장을 소재로 한 모녀의 돌봄 이야기를 낸다. 한국적 소재의 보편적 이야기가 통하겠다 싶었다. 해외에서도 돌봄은 딸 몫이라 도터 트랙(daughter track)이라는 용어까지 있더라. 국내선 안 팔릴 텐데 해외에선 분명 팔린다. 해외 성과를 만든 후 국내 출간할 생각이다.
Q : -챗 GPT 출시 이후 언론·출판의 종말을 걱정하는 AI 시대다. 어떻게 대비하나.
A : 특별한 건 없다. 운 좋게 1등 했지만, 책 안 팔리는 걸 체감한다. 베스트셀러 진입 부수가 점점 줄고 있다. 100만 부는 아예 없고 10만 부도 정말 안 나온다. 그런데 재밌으면 여전히 팔린다. 그러다 문득 '나 혼자만 재밌는 걸 만드는 건 아닌지' 반성했다. 조직생활을 되돌아보면 윗분들이 기대하지 않고 싫어했던 새로운 걸 할 때 늘 잘 됐다. 나도 독립 후 내 경험에 발목이 많이 잡혔다. 역사를 좋아해 관련 책을 꽤 내면서 무조건 전공자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제일 잘 된 게 당시 구독자 40만(현재 59만) 비전공 유튜버(쏨작가·임소미)가 쓴 책(『요즘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세계사』)이다. 10대부터 해왔지만 요즘 부쩍 커뮤니티를 더 많이 들락거린다. 댓글 많이 달리는 게시물을 보면서 사람들이 뭐에 관심 있는지 살핀다.『이상현상』은 그렇게 발견했다. 여기저기서 계속 이 얘기를 퍼 나르기에 따라가다 포스타입에 다다랐다. 마침 장르 문학판이 커지고 수출도 잘 되는 추세다. 영상화 판권 문의가 벌써 세 군데서 왔다. 만약 웬만한 대형 출판사에 몸담고 있었다면 윗분 허락을 못 받아 아예 출간을 못 했을 거다. 낯선 데다 편집 기간은 두 배, 제작 비용은 서너 배나 들었으니 말이다.
지난 2023년 자가출판(POD)으로 처음 나온 당시 고교생 시인 차정은의 『 토마토 컵라면 』 (리커버판)이 2026년 9월 현재 나태주 · 윤동주 시인과 함께 베스트셀러 순위에 있다. 안혜리 기자
Q : -주 독자층이 누군가.
A : 지금 출판계 주 고객층은 40대 여성인데,『이상현상』은 팔린 4만 부 가운데 20대 여성 비중이 압도적이다. 디시갤(DC인사이드 갤러리 게시판)같은 커뮤니티나 X(구 트위터) 보면서 20대 독자에 대해 배우고 있다. 이 친구들은 책도 덕질하듯이 좋아한다. 소장 가치가 있어야 한다. 디자인에 평소 세 배 이상 비용을 들인 이유다. 앞서 차정은 시인의『여름 피치 스파클링』으로 20대 독자와 만난 적이 있다. 고교 시절인 2023년 자비 출판한『토마토 컵라면』이 또래한테 엄청 팔리는 걸 보고 수능 끝낸 시인한테 손을 내밀었다. 기성 문학 편집자라면 시인으로 치지도 않았을 거다. 하지만 내 기대대로 2만 부나 팔았다. (※정통 문학 출판사인 자음과모음도 최근 차 시인의『에어컨 사라다』를 냈다) 편견이 없어 가능했던 일이다.
Q : -신진작가·유튜버·자비출판…. 어떻게 그런 선택을 했나.
A : 안 할 이유가 없으니까 뭐든 그냥 해본다. 베스트셀러를 만들고 싶으니까. 내가 비명문대 출신에다 교정 알바로 출판을 시작한 비주류라 더 그런 거 같다. 출판업계 주류는 '나'와 출판계가 인정하는 '양서' 베스트셀러를 원한다. 난 대중의 인정이 더 중요하다. 출판계나 언론계는 아마 이런 책은 도통 이해가 안 돼 책이라고 생각 안 할지 모르겠다. 난 이해하려고 안 한다. 사람이 몰려 있는 현상, 시장만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