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대목을 맞은 극장가에 한국 영화 5편이 진검승부를 펼친다. 16일에 먼저 개봉한 ‘인턴’은 패션 회사 창업에 성공했지만, 사생활은 붕괴 일보 직전인 30대 CEO 선우(한소희)가 60대 실버 인턴 기호(최민식)를 고용하며 삶의 중심을 되찾는 내용. 할리우드 동명 원작은 2015년 한국에서 ‘꼰대가 안 되려면 봐야 하는 영화’로 인기 끌면서 북미 다음가는 세계 2위 매출(약 285억원)을 올렸다. 서울로 무대를 옮긴 한국판은 “(로버트) 드 니로 형님이 했던 역할이라 부담감이 컸다”는 최민식이 본연의 매력을 살려 한층 푸근해진 ‘한국 아저씨 캐릭터’를 보여준다.
직장 상사 선우를 깍듯이 존대하던 기호가 자신감을 잃은 선우에게 “내 딸이라면…”하고 처음 반말로 충고하는 한국식 각색에 마음이 간다면 기분 좋게 극장 문을 나설 만하다. 영화 ‘82년생 김지영’(2019)으로 데뷔해 지난 연말 멜로 ‘만약에 우리’로 흥행과 평가 모두 성공한 김도영 감독이 세대를 아우른 우정에 초점 맞췄다. Z세대 리더 선우가 기호의 연륜과 인간미를 뒷받침하는 역할로 소비된 측면은 아쉬움이 남는다.
유명 실화를 파고든 시대극 ‘암살자(들)’도 눈에 띈다. [사진 하이브미디어코프]
23일엔 시대극 ‘암살자(들)’, 시리즈 전편을 추석에 선보인 ‘타짜: 벨제붑의 노래(이하 타짜4)’가 개봉한다. 16일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실시간 예매순위 선두는 단연 ‘암살자(들)’. 16.6% 예매율로 ‘오디세이’에 이어 2위다. 1974년 8월 15일 발생한 영부인 피격 실화를 소재로 허진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는 당시 육영수 여사를 관통한 탄환이 총격범인 재일 한국인 청년 문세광이 것이 아닐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상상을 보탰다. 신문 사회부 기자들(박해일·이민호)과 형사(유해진) 등 배우들의 호연에 힘입어 진상 추적 과정을 몰입감 있게 그렸다.
역대 추석 흥행 1위 ‘관상’(2013)을 비롯해 ‘밀정’(2016), ‘남한산성’(2017), ‘안시성’(2018) 등 코로나 이전 추석 시즌을 견인해 온 시대극이 오랜만에 복귀했다. 어두운 현대사의 이면을 파헤쳤다는 점에서 같은 제작사(하이브미디어코프)가 만든 천만영화 ‘서울의 봄’(2013), 디즈니+ 드라마 ‘메이드 인 코리아’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타짜’ 최종편. [사진 CJ ENM]
최국희 감독 연출 ‘타짜4’는 앞서 1~3편과 별도의 이야기다. 화투판을 벗어나 원정 포커판에 뛰어들었다. 학창 시절부터 절친한 친구로 성공한 온라인 카지노 회사 동업자인 장태영(변요한)과 박태영(노재원)이 투톱으로 우정과 질투, 배신과 복수의 서사를 끌고 간다. 서로를 가장 잘 아는 두 사람이 포커를 고리로 심리전과 두뇌 싸움을 펼친다. 변요한은 “20년 된 타짜 시리즈의 마지막 문을 제가 닫고 싶었다”며 “질투·열등감 등 학창 시절에 느낄 법한 감정과 훗날 한끗 차이로 틀어질 수 있는 감정에 중점을 두며 연기했다”고 말했다.
거장 이창동의 신작도 찾아온다. [사진 넷플릭스]
최근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이창동 감독의 8년 만의 복귀작 ‘가능한 사랑’, 괴짜 흥행사 이준익 감독이 세로 화면에 도전한 ‘아버지의 집밥’ 등 거장들의 신작도 소규모 개봉으로 만나게 됐다. ‘가능한 사랑’은 이 감독이 10여 년 전 대기업 대량 해고 사태에서 영감 받아 “노동 소멸의 시대 우리에게 가능한 사랑”을 모색한 작품. 설경구·전도연이 해고 노동자 부부를, 조여정·조인성이 그들을 취재하는 다큐멘터리 감독과 제작자 부부를 연기했다. 11월 6일 넷플릭스로 출시되는데, 내년도 미국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부문 출품 자격을 위해 이달 23일부터 약 2주간 극장 개봉한다. 이와 함께 넷플릭스에서 이창동 감독의 데뷔작 ‘초록물고기’(1997)부터 ‘버닝’(2018)까지 연출작 6편 모두 볼 수 있다.
가족 관객을 겨냥한 중장년층 주인공 작품 ‘아버지의 집밥’. [사진 레진스낵]
지난 9일부터 롯데시네마에서 단독 상영 중인 ‘아버지의 집밥’은 이준익 감독이 숏폼 플랫폼인 레진스낵 의뢰로 만든 숏드라마다. 약 5억원 초저예산으로 만든 61부작을 2시간 26분 장편으로 재편집했다. 스크린의 가운데 3분의 1만 사용한 세로 화면이다.
흥행의 승자가 가려질 수밖에 없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오디세이’‘스파이더맨 4’ 등 8월 외화 대작을 피하려다 한국영화들의 출혈 경쟁이 불가피해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