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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룡의 신영웅전] 방선주 박사의 추억

중앙일보

2026.09.16 08:04 2026.09.16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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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1980년대는 한국역사학에서 현대사의 태동기였는데,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이를테면, 방선주(方善柱·1933~2026·사진)라는 전설적인 역사학자의 헌신, 복사 기술의 발달, 엄혹했던 권위주의 시대에 반사적으로 나타난 젊은 학자들의 지적 호기심 등이다. 방선주는 누구인가?

평안도 선천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 방지일(方之日·1911~2014) 목사를 따라 중국 산둥성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103세까지 설교를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1957년에 귀국한 방선주는 숭실대학과 고려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토론토대학에서 중국사로 학위를 받고 하워드 대학에서 봉직했다.

내가 방선주 박사를 만난 것은 1985년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였다. 서가를 펴면 총면적이 서울운동장의 15배이며 30억 쪽이 소장된 문서고에서 한국현대사를 알려면 어디서부터 봐야 할지 막막했다. 그때 한 모퉁이에서 소형 복사기를 놓고 자료를 정리하는 초로의 한국인을 만났다. 체소하고 수척한 모습에서 민족의 풍상을 보는 듯했다. 그를 찾아가 자료 찾는 데 도움을 요청했더니, 힐끗 보더니 “여기저기 찾아보세요” 하고는 더 이상 대꾸가 없었다. 무안하고 부끄러웠다.

일주일이 지나자 방선주 박사는 내게 엉뚱한 곳을 보고 있다며, 한마디 하고서는 돌아서서 갔다. 한 달이 지나 그는 나에게 점심을 먹자고 말했다. 곧 멈출듯한 중고차에 복사지가 가득했다. 사천 요릿집에 마주 앉은 그가 입을 열었다. “한국 학자들은 나빠요. 며칠 와서 한 카트 복사해가더니 박사가 되었더군요. 나는 7년째 10만 페이지를 복사하고서도 아직 한국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잘 모르겠던데.”

그가 지난 9월 8일 세상을 떠났다는 부음을 신문에서 읽으며 만감이 스친다. 한국역사학의 한 시대가 그렇게 흘러간다.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으니 국립묘지에 묻힐 수도 있었을 텐데….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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