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예일대 로버트 트리핀 교수는 미 의회 청문회에서 달러 중심 국제금융 체제의 붕괴 가능성을 증언했다. 기축통화국 미국이 대외수지 적자를 지속하면 달러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듬해 대선에서 승리한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침체에 빠진 국내 경기 살리기와 달러 가치 방어라는 상충적인 목표를 짊어졌다. 그가 의회에 제시한 해법은 장단기 금리를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었다. 단기금리를 유지해 자본 유출을 막고, 장기금리는 낮춰 경기를 부양한다는 구상이었다. 이에 호응해 연방준비제도는 단기채권을 매도하고 장기채권을 사들였다. 효과가 나타났다. 취임 당시 1.53% 포인트였던 장단기 금리차가 0.11% 포인트로 좁혀졌다. 시장은 이를 ‘오퍼레이션 트위스트(Operation Twist, 비틀기 작전)’라 불렀다. 고개를 쳐들었던 수익률곡선이 평평해진 모습을 당시 유행하던 춤에 빗댄 것이다.
케네디는 경기부양을 위해 전면 감세를 단행하고 공공사업을 확대했다. 복지와 우주산업에 대한 투자도 늘렸다. 취임 이듬해 경제성장률은 6%를 넘었다. 물가 안정 속에 견조한 경제성장이 1960년대 내내 이어졌다.
문제는 대외 부문이었다. 국내외 금리차는 달러의 해외 유출을 부추겼다. 케네디는 자본 유출을 막으려 외국 주식·채권 매입에 최고 15%의 세금을 부과했다. 투자자들은 규제를 피해 런던 금융시장으로 몰려갔고 그만큼 뉴욕의 금융 경쟁력은 낮아졌다.
국제수지 적자와 베트남전으로 달러의 과잉공급과 금 유출이 지속됐다. 결국 1971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브레턴우즈 시스템의 종료를 선언해야 했다. 달러화는 시스템이 인정한 공식적 기축통화 지위를 내놓았다.
케네디의 ‘비틀기’ 시도는 안정 성장이라는 대내적 목표와, 무역수지 균형과 달러 가치 수호라는 대외적 목표는 동시 달성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교훈을 일깨운다. 최근 미 정부는 감세와 관세, 투자 유치와 시장 개입으로 대내외 경제 목표를 모두 이루려 한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자신이 채권시장의 하우스(House, 절대 지지 않는 도박판 주최측)라며 자신을 믿고 미 국채를 매수하라고 독려한다. 재무부는 장기국채를 시장에서 직접 매입하는 ‘재무부 트위스트(Treasury Twist)’에 나섰다. 금리 상승을 막아 경제성장을 방어하고, 달러 국채의 지위를 지키려는 시도다.
한편, 최근 인도 뉴델리의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정상들은 탈달러화의 필요성에 다시 공감했다. 미국의 내수 성적표는 괜찮지만, 달러의 대외 신뢰도는 전례 없는 위협에 빠졌다. 대내외 문제를 모두 해결할 만병통치약은 없다. 대가 없는 신뢰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