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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중지약 도입해도, 의사가 처방 안해줄 수도” 왜

중앙일보

2026.09.16 13:00 2026.09.16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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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이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신중지 약물 도입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이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신중지 약물 도입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정부가 어렵사리 여성 건강권을 위한 임신중지약 도입에 나섰지만, ‘급한 불’ 너머의 더 큰 산은 여전하다. 국회·정부의 방치 속에 7년 넘게 이어진 입법 공백 얘기다. 이를 풀지 못하면 인공임신중절(낙태)을 둘러싼 의학적·윤리적 논란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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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째 입법 공백…5년 전 낙태 추정 3만 건

입법 공백은 2019년 시작됐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형법상 낙태죄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국회에 2020년 말까지 대체입법을 주문했다. 이듬해 정부는 임신 14주 이하에 낙태를 전면 허용하는 내용의 형법·모자보건법을 입법예고했다. 하지만 낙태 허용 주수 등을 정한 후속입법은 이뤄지지 않았고, 2021년부터 낙태죄의 효력 자체가 사라졌다. 2024년 임신 36주차 태아의 낙태 영상을 올린 여성을 계기로 법 개정 움직임이 꿈틀댔지만, 금세 사그라들었다.

입법을 맡아야 할 국회는 잠잠하다. 앞서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들이 모두 폐기됐다. 22대 국회에도 임신중지 관련 법안 6건이 발의돼 있다. 국회 관계자는 “종교계를 중심으로 반대 목소리가 크고 사회적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사안이라 법안 논의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뜨거운 감자’ 같은 주제라 법무부·보건복지부 등 관계 부처도 적극적이지 않은 편이다. 그러는 사이 의료 현장에선 ‘기준 없는’ 낙태 수술이 이어지고 있다. 2022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2021년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 해 낙태 추정 건수는 3만2063건이었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국가아동권리보장원에 접수된 위기 임신 상담 중 낙태 관련 주제는 최근 3년간(2024년 1월~올해 8월) 1457건에 달했다. 보장원 관계자는 “원치 않는 임신으로 임신중지를 고민하는 상담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는 16일 브리핑에서 재차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사회적 논의가 성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빠르게 결론을 내기 쉽지 않을 거란 전망이 우세하다. 국회 내 목소리도 엇갈린다. 윤용근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마약을 하는 국민들이 있는데 단속을 해야지 그렇다고 마약을 합법화시키느냐”며 임신중지약을 마약에 빗대며 도입을 반대했다. 반면 남인순 의원은 “이제 국회도 책임을 다하고 모자보건법 개정 등 후속 입법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자칫 약만 남고, 안전한 낙태를 위한 법적 근거는 갖추지 못한 ‘불안한 동거’가 장기화할 거란 우려도 나온다.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전 낙태 논의 과정에서도 법 개정을 밀어붙이기 쉽지 않았다. 약 도입만 이뤄지고 법령 정비가 이어지지 않으면 여러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입법 공백 속에서 행정 지침만으로 임신중지 의약품 문제를 풀 수 없다.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을 통해 임신중지 관련 규율을 명확히 해야 한다”며 국회에 입법을 촉구했다. 이재관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고대구로병원 산부인과 교수)은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선 의사가 처방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임신중지약의 안착에 필요한 과제는 더 있다. 초기 2년간은 의사가 직접 처방·조제하지만, 그 후에 약국 조제로 확대하기 위해선 약사 처벌 위험을 해소해야 한다. 곽순헌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법무부 유권 해석에 따르면 약사의 형법상 처벌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보호자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기 어려운 미성년자의 진료 절차도 정비해야 한다. 정부는 임신중지약 처방 과정에서 보호자 동의를 받도록 할지 등을 신중히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한 여성단체 회원이 2018년 8월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 촉구 집회'에 참가하고 있다. 뉴스1

한 여성단체 회원이 2018년 8월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 촉구 집회'에 참가하고 있다. 뉴스1

또한 의료계가 요구하는 진료 선택권을 어디까지 인정할지도 쟁점이다. 대한산부인과학회 등 산부인과 3개 단체는 이날 성명을 내고 “개인 신념에 따라 임신중지 약물 처방에 참여하지 않을 의사의 진료 선택권을 존중해달라”고 밝혔다. 김현숙 복지부 인구아동정책관은 “정부는 의료인의 진료 선택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임신중지약은 접근성이 중요한데, 청소년이나 이주·장애 여성은 의료기관 처방 과정에서 적정 시기를 놓칠 수 있다”며 “임신은 시간이 중요한 만큼 정부가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우선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채혜선([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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