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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수의 뉴스터치] 문과라서

중앙일보

2026.09.17 08:06 2026.09.17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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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수 선임기자

장혜수 선임기자

인문계(문과)의 인문은 『주역』에 나온다. 64괘 중 22번째인 산화비(山火賁)를 풀이한 ‘인문을 살펴 세상을 교화한다(觀乎人文 以化成天下)’는 대목이다. 자연계(이과)의 자연은 노자 『도덕경』이 출처다. ‘사람은 땅을, 땅은 하늘을, 하늘은 도를,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는 대목이다. 19세기 일본 개화사상가들은 서양 학문을 수입하며 동양 고전 속 용어를 차용했다.

이들 학문 명칭이 최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얄팍한 신경전과 알리바이에 동원됐다. 지난 15일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신약 청탁 의혹에 “문과라서 치료제 성능을 모른다”고 답했다. 다음날인 16일 야당 국회의원은 “후보자 문과이시냐. 어제 김승원 후보자가 문과라서 답을 못한다고 했는데”라며 홍지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를 다그쳤다. 김 후보자는 문과(서울대 법대), 홍 후보자는 이과(한양대 공대) 출신이다.

한국의 문·이과 분리는 일제강점기 경성제대 등을 설립할 당시 일본 학제를 도입한 결과다. 이후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국가 재건과 기초산업 인력 양성 필요성이 대두했다. 1954년 제1차 교육과정에서 고교도 문·이과로 분리했다. 1960~70년대 박정희 정부 시절, 문과 출신 행정 관료와 이과 출신 기술자를 양산하기 위해 분리는 더욱 강화됐다.

정부는 1997년 제7차 교육과정에서 고교 문·이과 분리 폐지를 선언했다. 하지만 대입 수능시험의 선택과목제 확대 등으로 교과목 편식 등 부작용이 심화했다. 통합형 교육을 선언한 2015년 교육과정(10차) 이후에도 현장의 분리 현상은 오히려 공고해졌다. 이과생이 문과 합격을 휩쓰는 ‘문과 침공’, 문과생이 수학을 포기하는 ‘수포자’ 현상이 그 후과다.

인문학(문과)은 이유(why)를 묻고 자연과학(이과)은 방법(how)을 찾는다. 인공지능(AI)이 시를 쓰고 코딩을 하는 세상이다. 문·이과를 아우르는 융합형 인간이 필요하다. 정부가 문·이과 통합을 지향하는 이유다. 공직 후보자가 “문과라서”라는 변명으로 무지를 자인하고 검증을 회피했다. 학문의 역사를 모독하고 국가 교육체제의 실패를 드러내는 시대의 희비극이다.





장혜수([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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