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이윤정의 판앤펀] ‘나혼산’에 우리가 관대했던 이유

중앙일보

2026.09.17 08:08 2026.09.17 13:28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이윤정 문화칼럼니스트

이윤정 문화칼럼니스트

TV를 켜고 만나는 화면 안의 세상 속에서 우리는 한없이 너그러워질 수 있다. 영화 스크린, 연극 무대 위의 세상도 마찬가지다. 단지 손에서 거미줄이 나오는 재주밖에는 신통한 게 없어 보이는 여린 남자가 지구를 열 번도 넘게 구해내거나, 외계인의 존재는 물론 그의 공격으로 말에서 열 번쯤 떨어졌다가도 죽지 않는 영화 ‘호프’ 속 조인성 같은 존재. 픽션 속 세상은 논리적인 비판과 회의를 거두고 바라보지 않고서는 존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약속대련 같은 관찰 예능이지만
최소한의 개연성 기대했기 때문
‘불신의 유예’ 회복될 수 있을까

[사진 MBC 캡처]

[사진 MBC 캡처]

19세기 시인이자 미학자인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가 말해서 유명해진 ‘불신의 유예(suspension of disbelief)’는, 진짜로 믿을 순 없지만 ‘안 믿고 의심하는’ 행위를 미뤄두겠다는 뜻이다. 우리는 네모난 화면 속 그 별난 세계가 그 안에서만 완결성을 가져준다면 어떤 해괴한 논리라도 “믿습니다”를 외칠 충실한 백성이 될 각오가 되어 있는 것이다.

픽션의 예술을 설명하기 위해 시작된 말이지만 불신을 미뤄둬야 하는 영역은 점점 더 늘어난다. TV 드라마나 예능쇼나 할 것 없이 등장하는 상품 간접광고 같은 것은 그 세상의 서사가 주었던 신나는 몰입을 깨버린다. 진지하던 주인공이 느닷없이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말을 하거나 안마의자에 자꾸 드러누울 때, 축구를 하기 위해 모인 여성들이 라커룸에서 화장품에 대한 토론을 한참 할 때 그렇다.

참 뜬금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너그러울 수 있다. 그게 없으면 그 세계가 재정적으로 존재하기 힘들다는 배경을 알기 때문이다. 유예되는 불신의 목록 중에 그것은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하고 작품의 세계 속으로 한 발 끼어들었다. 그 대가로 세상을 둘러싼 성벽엔 균열이 생기고, 백성은 충성심의 한 발을 빼면서도 다시 몰입할 준비가 된 시청자로 스스로를 단련해왔다. 스크린 밖에서는 스캔들이 많은 배우라 할지라도, 그 세계 안에서 착한 남편 캐릭터의 진실성만 온전히 전달된다면 우리는 기꺼이 믿어버린다. 그 세계의 완결성을 믿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 이번 전현무 사태도 그 정도 유난이라 여길 수 있다. 진지한 다큐멘터리도 아닌 쇼에서, 여행 일부를 미리 준비한게 뭐 그리 대수냐고. 그런데 화면 속 세상의 백성들의 너그러움은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조건 위에서만 작동한다. 콜리지는 불신을 유예하기 위한 최소 조건으로 ‘진리의 외양(semblance of truth)’ 즉 최소한의 진실, 혹은 개연성을 들었다. ‘나 혼자 산다’에서 카자흐스탄 알마티로 즉흥여행을 떠나겠다던 전현무의 행동이 즉흥이 아니었음이 들통났을 때, 처음엔 부인했다가 그마저 거짓으로 드러난 제작진의 거듭된 사과 뒤에도, 이 프로그램이 가꿔온 세상의 완결성은 지켜질 수 있을까.

MBC ‘나 혼자 산다’가 지금껏 최고 인기 예능으로 군림해온 이유는, 시청자와 맺은 약속이 ‘관찰’이라는 단어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나혼산’의 ‘진리의 외양’은 스스로가 내세운 ‘관찰’이란 용어다. 픽션 예술은 감상하거나 관람하지만 관찰은 ‘실제’를 들여다본다는 뜻이다.

나 혼자 놀고, 나 혼자 돌아다녀도 그것이 화면 안의 모습일 뿐 화면 밖에서 수십 개의 카메라와 스태프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혹은 다소 과한 PPL이야 눈감아줄 성숙한 시청자가 됐다 해도, 적어도 그 안의 삶이 최소한의 진실을 담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나혼산’ 왕국의 백성들은 충성을 다해왔다. 몇 해 전 기안84 왕따 논란이 뜨거웠던 것도, 시청자가 그 세계 속 진실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 믿음도 없다면 관찰 예능은 그저 잘 짜인 드라마와 다를 바 없어진다.

전현무는 ‘나혼산’이 아니더라도 이미 자신의 캐릭터만으로도 시청자와의 오랜 교감을 주고받으며 쌓아온 자신만의 세계가 있다. 인터넷에서 ‘사과문의 정석’ 교본으로 꼽히는 샘플들을 많이 발표해온 그는 이번엔 어쩐지 자신의 사과문을 발표하지 않는다. 대신 문제가 됐던 즉흥여행 캐릭터가 만든 세계를 더 확장시킨다 ‘전현무계획’, ‘현무로드’로.

불신을 유예하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던 전현무 왕국의 백성들은 이제 그가 ‘무작정’, ‘발품’, ‘직접 뛰어드는’ 같은 표현을 써도 그에 대한 믿음을 유예할 것이다. 아니, 이미 유예가 아니라 믿음의 틀이 폐기되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이윤정 문화칼럼니스트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