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서울 영등포의 한 대형마트 채소코너. 주부 김수민(42)씨가 양배추 한 통(2992원)과 ‘조각 양배추’(2190원)를 번갈아 보며 고민하고 있었다. 그램(g) 당 가격은 한 통 짜리가 훨씬 싸지만, 어쨌든 최종 가격은 조각 양배추가 싸서다. 결국 조각 양배추를 집어든 김씨는 “쓸 만큼만 사고 800원을 아껴 다른 걸 살 생각”이라고 말했다.
일찌감치 추석 음식을 장만하러 왔다는 신모(52)씨도 개당 2600원인 애호박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신씨는 “애호박 가격이 설 명절때보다 두 배는 오른 것 같다”며 “명절에 늘 호박전을 했는데 올해는 안 해야겠다”며 돌아섰다.
17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추석 연휴 먹거리를 사러 온 소비자가 채소를 고르고 있다. 강보현 기자
정육 코너에선 오모(65)씨가 차례상에 올릴 소고기뭇국과 동그랑땡, 산적용으로 미국산 소고기 240g 짜리 5팩을 카트에 담았다. 한우 등심이 100g당 8488원이니 10만2000원이지만, 미국산 척아이롤(3290원)은 4만원이면 된다. 오씨는 “저희는 명절에 친척들이 다 모여 음식도 많이 준비해야 하는데 한우는 너무 부담스러워 웬만하면 다른 재료도 수입산을 살 생각”이라고 말했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추석 상차림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꺾일 줄 모르고 뛰는 물가에 가격 부담이 커지자 식재료 부담을 줄이려는 다양한 행태가 포착된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1%로, 전달(2.8%)보다 0.3%p 상승했다. 특히 채소류는 전달보다 12.4% 올랐다.
한국물가협회가 조사한 올해 추석 차례상차림 평균 비용(28개 품목, 서울·부산·인천·대구·광주·대전 등 6개 도시 전통시장 기준)은 30만3750원으로, 지난해보다 4%, 2020년(23만9900원)과 비교하면 26% 상승했다.
김영옥 기자
이에 따라 우선 수입산 먹거리를 찾는 수요가 늘었다. 롯데마트에 따르면 지난 한 달(11일 기준)간 한우 등심(1등급) 매출은 23% 늘었지만, 미국산 소고기(척아이롤)는 96%, 호주산 소고기(부채살)는 61% 늘었다.
돼지고기도 국내산 대패삼겹살(5.6%)보다 브라질산 대패삼겹살(76%) 매출 증가율이 높고, 갈치는 국내산(4%)보다 베네수엘라산(20%)이 잘 팔렸다. 추석이면 수요가 급증하는 조기의 경우 영광굴비는 10마리에 2만원이 넘지만, 세네갈산 조기는 1만원 정도면 살 수 있다.
선호하는 고기 부위도 달라지고 있다. 돼지고기의 경우 삼겹살이나 등심 대신 가격이 절반 수준인 앞다리살, 뒷다리살 같은 부속 부위를 찾는 수요가 늘었다. 이마트에 따르면 지난 한 달간 삼겹살 매출이 16.9% 늘어난 사이 앞다리살 매출은 31% 늘었다. 대형마트 기준 삼겹살 가격은 100g당 2680~3180원이지만, 앞·뒷다리살은 1180~1780원이다.
대형마트 축산코너 직원인 성모씨는 “이전까지 앞다리살은 대부분 찌개용이었는데 최근엔 불고기용으로 얇게 썰어달라고 하거나 동그랑땡이나 돈가스를 만든다며 다져달라고 하는 손님이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무게당 가격을 따지지 않고 전체 가격이 조금이라도 낮은 소량 구매 수요도 늘고 있다. 양배추나 수박 같이 부피가 큰 채소·과일은 반 통이나 3분의 1, 4분의 1로 자른 ‘조각 상품’이 잘 팔린다. 이마트에 따르면 ‘친환경 조각 양배추’ 판매량은 지난 한 달간 1777% 늘었다. 망고·복숭아·파인애플 담아 다양한 과일을 조금씩 맛볼 수 있는 간편 컵과일(200g) 판매량도 283% 증가했다.
무게당 단가는 비싸도 전체 가격이 낮은 소량 식재료를 찾는 수요가 늘었다. 사진은 17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 조각 채소 코너. 강보현 기자
전문가들은 단발성 대응이 아닌 중·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수요 급증, 유가 불안, 환율 등 다양한 요인으로 물가는 계속 오를 것으로 보인다"며 "먹거리 있어서는 수급 관리, 유통망 구조 개선 등에 전방위적인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