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현지시간) 한·미 외교장관 회담에서 호르무즈해협 파병이 의제로 올랐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파병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설명했고, 미국은 우리 입장에 대해 이해를 표시하고 앞으로 긴밀하게 협의하자는 반응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다만 미 국무부는 회담 결과자료에서 호르무즈해협의 항행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양국 간 협력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또 한국에서 활동하는 미국 기업에 대한 공정한 사업 환경 보장과 대미 투자 약속의 신속한 이행 등을 요구하는 등 ‘청구서’ 성격으로 볼 수 있는 내용을 주로 담았다.
조현 외교부 장관(왼쪽)과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18일(현지시간) 워싱턴 DC의 미국 국무부 청사에서 열린 양자 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위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미 측의 파병 요구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오늘 장관 회담에서 그런 말은 없었다”며 이처럼 답했다. 당국자는 “미 측은 호르무즈해협에서 미국이 항행의 자유라는 기본 원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관련해 함께 협력하자고 했다. 오늘 장관회담에서는 그런 원칙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지 유감을 표명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무부는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호르무즈해협에서 항행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협력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reiterated)”고 토미 피곳 대변인 명의의 보도자료에서 밝혔다. 이란전 상황과 관련해 미국은 반복적으로 한국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는 뜻으로 해석 가능한 대목이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18일 기자회견에서 “전쟁의 관여 또는 개입하는 파병은 없다”고 밝혔다. 정부는 파병의 목표 설정과 파견 자산의 종류 및 규모 등을 두고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발표가 미뤄지고 있는 한국의 대미 투자 역시 이날 회담에서 의제로 올랐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이날 오후 미 워싱턴DC 주미대사관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하고 “현재 양국의 대미전략투자사업과 관련해 협의가 좋은 결실 맺도록 노력해나가자고 했고 이 과정에서 루비오 장관도 역할을 해줄 것을 당부했다”며 “루비오 장관은 협의가 잘 마무리되게 국무부 차원에서도 노력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또 “아울러 한·미 정상회담 공동설명자료(JFS)를 포함한 양 정상간 주요 합의 사항을 충실하게 이행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소통해나가기로 했다”고 부연했다.
이와 관련, 양측은 JFS 이행에서 각기 다른 합의에 방점을 찍는 듯한 기류도 엿보였다.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도입과 원자력 권한 강화 등 안보 분야 합의에 대해 고위 당국자는 “무역이나 통상 투자 등이 진전을 좀 더디게 만든 것은 사실이다. 대미투자 협상이 마지막 단계에 와서, 이런 게 선결되고 나면 안보 협상도 좀 더 가속화될 것으로 믿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회담에서 미국이 지연 작전을 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국무부는 루비오 장관이 “JFS에 담긴 투자 약속을 신속히 이행(swift execution)해야 한다고 역설했다(stressed)”고 밝혔다. 안보 분야 합의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국무부는 또 양 장관이 “반도체를 포함한 주요 전략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협력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미 측은 한국과의 대미 투자 사업 선정 협상 과정에서 반도체 분야 투자를 우선적으로 요구했다고 하는데, 이와 무관치 않을 수 있다.
국무부는 또 루비오 장관이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미국 기업들에 공정하고 투명하며 공평한 사업 환경을 보장해야 할 필요성이 매우 크다(critical need)”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그간 미 정부와 의회가 쿠팡 사태, 개정 정보통신망보호법 시행 등에 대해 한국 정부가 미국 기업을 차별적으로 대우한다고 노골적인 불만을 토로해 온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다만 회담에서 쿠팡 등 구체적인 사안이 언급된 것은 아니며, 조 장관은 한국이 미국 기업을 특정해 타깃으로 삼는 일은 없다는 정부의 기존 입장을 설명했다고 한다.
국무부는 공급망 문제도 거론했다. 루비오 장관이 “핵심 산업의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면서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공급망 의존도를 낮추고, 동맹·우방과 함께 미국 중심의 공급망을 구축해 중국의 영향력을 축소하려는 구상과 일맥상통하는 것일 수 있다.
이날 국무부의 보도자료에서 개최 사실을 알린 첫 문장을 제외한 내용은 총 일곱 문장이었으며, 이 중 네 문장의 주어는 ‘양 장관’이 아닌 ‘루비오 장관’이었다. 루비오 장관을 주어로 하는 문장의 서술어는 모두 ‘강조했다’(reiterated, underscored, emphasized, stressed)였다. 미 측이 그만큼 자국의 입장을 한국에 강하게 전달하려 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한편 이날 회담에서는 한반도 비핵화도 논의됐다. 외교부는 보도자료에서 “양 장관은 현재 한반도 정세에 대한 평가를 공유하고, 대화와 외교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안정을 달성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 경주해 나가기로 했다”며 “조 장관은 우리 정부가 한반도 평화의 당사자이자 페이스메이커로서 북·미 대화 재개를 적극 지원해 나가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국무부는 “양 장관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했다. 양국의 발표에서 한국은 ‘한반도 비핵화’, 미국은 ‘북한 비핵화’라는 용어를 쓴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날 수 있다는 뜻을 지속적으로 밝히는 것과 관련, 고위 당국자는 “조 장관은 북·미 대화가 앞으로 잘 진행돼 한반도 평화를 위해 큰 기여를 바란다는 정부 입장을 설명했고, 루비오 장관은 진행이 되면 긴밀하게 공유하겠다고 했다. 다만 아직은 진전된 건 없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