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2기 들어 끊임없이 그린란드 병합을 위협해온 가운데 미국과 덴마크, 그린란드가 합의에 이르렀다. 구체적인 합의안은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트럼프는 “영구적인 통제권”을 얻었다며 이를 승리로 자축했고, 덴마크와 그린란드 역시 “주권 훼손은 없다”며 나름의 성공으로 규정하고 있다. 각자 협상을 잘했다고 주장하는 모양새인데, 덴마크와 그린란드의 성과는 트럼프의 병합 위협에서 벗어난 데 있다는 점에서 세 당사자가 말하는 ‘승리’의 내용과 무게는 다르다는 지적이다.
지난 1월 20일(현지시간) 그린란드 누크의 미국 영사관 밖에서 한 시위 참가자가 그린란드 국기를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트럼프는 18일(현지시간) 자신의 SNS 트루스 소셜에 올린 글에서 “이번 합의는 미국에 그린란드의 안보와 그 밖의 모든 필요 사항에 대한 영구적인 통제권을 부여함으로써 미국이 가진 수많은 우려를 모두 완전히 해소한다. 미국이 부담할 비용은 전혀 없다”며 합의 타결 소식을 알렸다. 또 “이제부터 미국의 어떤 적대국도 우리의 명시적인 서면 승인(written approval) 없이는 그린란드에 기지를 두거나 군대를 주둔시키거나 민감한 투자를 할 수 없다”며 “우리는 그린란드의 여러 적절한 지역 가운데 한 곳에 대규모 군사력을 구축하는 절차를 즉시 시작할 것이며, 그 개발과 건설 과정에서 그린란드 주민들과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할 대목은 트럼프가 이를 “영구적이고 최종적인 해결”로 규정하며 “‘무기한 존속(Infinite Life)’ 합의로, 끝이 없다!”고 강조한 것이다. 트럼프는 “미국은 그린란드와 미합중국의 안전을 보장하고 수호하기 위해 그린란드에서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완전한 능력을 영원히(FOREVER)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트럼프가 언급한 ‘완전한 능력’에 대해 미 ABC 방송은 “영구적인 접근권과 기지 사용권, 영공통과권이 포함된다”는 미 국무부 당국자의 발언을 전했다. 이 당국자는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만이 그린란드에 민감한 투자를 할 수 있다. 적대국이 투자심사 없이 그린란드의 민감한 분야에 투자해온 기존 상태를 없애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당국자는 또 합의의 영속성을 강조하면서 “그린란드가 완전한 독립국이 되더라도” 합의가 전면적으로 계속 효력을 갖는다고 밝혔다.
다만 ABC는 중국과 러시아가 현재 그린란드에 유의미한 투자나 군사적 거점을 보유하고 있지 않으며, 과거 민감 분야에 진출하려던 시도도 차단됐다고 전했다.
미 CBS 방송도 당국자를 인용해 “합의는 나토 회원국이 아닌 국가가 군사기지를 설치하는 것을 차단하고, 미국의 적대국이 그린란드에 민감한 투자를 하는 것을 제한한다”고 보도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성명을 통해 이를 “역사적 합의이자 미국의 거대한 승리”라고 규정했다.
사실 미국은 1951년 방위협정에 따라 이미 그린란드에서 광범위한 기지 사용권과 영공통과권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 측 설명대로라면 이번 합의를 통해 미국이 추가로 얻은 건 이런 권리의 영구적 보유를 확인하고, 중국과 러시아 등 적대국의 군사기지 설치와 민감한 투자를 명시적으로 제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 AP 통신 등에 따르면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트럼프의 발표 직후 성명을 통해 이번 합의가 “덴마크 왕국의 주권과 영토 보전, 그린란드인의 자결권을 인정한다”며 “북극과 북대서양 지역에서 우리의 공동 안보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덴마크 외교장관은 페이스북에 올린 성명에서 “(덴마크)왕국의 ‘레드 라인’을 존중하면서도 북극과 북대서양의 안보, 나아가 나토와 유럽의 공동 안보를 강화하는 구속력 있는 협정이 불확실성의 시기를 대체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옌스-프레데리크 닐센 그린란드 총리도 19일 페이스북 게시물을 통해 이번 합의가 “우리 왕국의 주권과 영토 보전, 그리고 그린란드 주민들의 자결권을 인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무테 에게데 그린란드 외무장관도 “우리가 마침내 최종 결과물을 손에 넣게 돼 기쁘다. 이제 때가 됐다”고 했다. 나토에서도 환영의 목소리가 나왔다.
아직 합의문은 공개되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미국이 어떤 권한을 추가로 확보하게 되는 것인지, 주둔 미군 규모는 얼마나 되는지 등은 확실치 않다. 합의문은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리는 유엔 총회에서 서명할 가능성이 크다고 로이터 통신은 보도했다.
현재로선 세 당사자가 모두 자신에게 ‘잘된 합의’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실상을 보면 미국은 ‘얻은 것’에, 그린란드와 덴마크는 ‘잃지 않은 것’에 각각 방점을 찍고 있다. 덴마크 내에서 이번 합의를 승리로 보는 시각도 트럼프의 병합 구상을 막아냈다는 데 중점을 두는 분위기다. 무력 사용까지 언급하며 그린란드 병합을 주장해온 트럼프의 협상 기술이 먹혀든 측면이 있다는 분석도 그래서 나온다. 애초에 기준점을 높여놓고 시작한 협상이었다는 뜻이다.
로이터 역시 “지난 1월 정점에 달했던 트럼프의 그린란드 관련 위협은 나토 내부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외교적 위기를 초래했고, 결국 덴마크와 그린란드가 미국의 압박을 완화하기 위한 협상에 응하도록 만들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