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군사비로 100조원을 넘게 쓴 사우디아라비아가 정규 공군도 없는 예멘 후티 반군에 원유 수출길은 물론 수도까지 위협 받으며 고전하고 있다. 미국산 첨단 전투기를 구매하고 해외 군사자원까지 불러들였지만 적의 공세 움직임을 포착하는 데부터 실패했다. 왕실에 대한 충성을 우선한 군 조직의 비효율성과 외국에 기대온 전력 운용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현지시간) 예멘 수도 사나에서 후티 지지자들이 무기를 들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예멘 군사 개입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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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수도까지 위협한 후티…홍해 원유 수출길도 장악
1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 공습경보가 울렸다. 지난 7월 후티의 공세가 격화한 뒤 리야드에 내려진 첫 경보다. 킹칼리드 국제공항 인근 아람코 연료탱크에선 화재가 발생했고 항공편 결항과 지연이 이어졌다.
야히야 사리 후티 반군 군사대변인은 이날 오후 성명을 내고 탄도미사일, 순항미사일, 드론을 동원해 사우디에 두 차례 군사 작전을 수행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첫 번째 작전은 리야드의 민감시설을, 두 번째 작전은 얀부에 있는 아람코 시설을 겨냥했다”며 “사우디의 예멘 봉쇄가 끝날 때까지 사우디의 군사력을 겨냥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우디 입장에서 최근 후티의 공세는 단순 도발의 수준을 넘은 것으로 보인다. 후티는 지난 10일 예멘 서부의 전략 항구 모카를 점령한 데 이어 11일에는 홍해 입구 바브엘만데브 해협의 예멘령 페림섬까지 장악했다. 모카와 페림섬은 바브엘만데브를 오가는 선박을 감시하고 위협할 수 있는 요충지다. 호르무즈해협이 사실상 막힌 상황에서 사우디가 원유를 내보내는 홍해 항로마저 후티의 위협에 놓인 것이다.
19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의 킹칼리드 국제공항 인근에서 검은 연기와 불길이 치솟고 있다. AFP=연합뉴스
사우디 본토에 대한 공격 범위도 넓어졌다. 후티는 지난 8~9일 남부 아브하, 카미스 무샤이트, 지잔을 향해 탄도미사일과 드론을 쐈다. 지난 15일에는 메카 남쪽 상공에서 후티 드론 1대가 요격됐고, 다음날인 16일 후티는 얀부의 석유시설과 카미스 무샤이트 공군기지를 공격했다고 발표했다. 후티는 같은 날 마리브주 상공에서 사우디 F-15 전투기를 격추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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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백한 정보 실패”…후티 10만명 집결도 놓쳤다
사우디가 후티에 이처럼 끌려다니는 이유로는 실전을 거치며 성장한 후티의 전력과 돈을 쓴 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우디군의 무능이 함께 꼽힌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 추산에 따르면 사우디의 지난해 군사비 지출은 832억 달러(약 116조원)로 세계 8위였다.
후티 역시 전력을 키워왔다. 정규 공군은 없지만 이스라엘까지 도달하는 장거리 미사일과 공격용 드론을 운용하고 있고 홍해를 지나는 선박을 공격할 능력도 갖췄다. 유엔 예멘 제재 전문가패널은 이미 2024년 후티가 제한적인 능력의 지역 무장집단에서 강력한 군사조직으로 성장했다고 평가했다. 이란 혁명수비대(IRGC)와 레바논 헤즈볼라 등이 군사 장비뿐 아니라 전술·기술 훈련을 제공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패널은 또 “후티 반군의 소년병을 포함한 총 전투원 수는 약 35만명으로 추정된다”며 “2022년 22만명보다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사우디의 경우 현역 병력 약 25만명을 보유한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사우디 등 반후티 진영은 이번 공격을 위한 후티의 준비를 과소평가했다. 사우디를 비롯한 반후티 진영은 후티 전투원 10만명이 집결하는 상황조차 포착해내지 못했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닐 퀼리엄 연구원은 로이터에 “신호도, 징후도 알아차리지 못했다”며 “명백한 정보 실패였다”고 짚었다.
16일(현지시간) 예멘 중부 마리브주에서 후티 대원들이 사우디아라비아군 F-15 전투기의 잔해라고 주장하는 물체 주변에 서 있다. AFP=연합뉴스
단일 지휘계통에 속하지 않는 반후티 진영을 사우디가 효과적으로 통제하지 못한 점도 문제로 거론됐다. 로이터는 “반후티 예멘 세력 간 뿌리 깊은 분열이 여전했고, 아랍에미리트(UAE)를 대신해 이들을 지휘하게 된 사우디의 새 지휘체계는 실전 경험도 없었다”고 분석했다. 결과적으로 UAE가 사우디와의 갈등 끝에 지난 1월 예멘에서 철수한 게 후티에겐 호재가 됐다. 사우디는 자국 공군이 화력을 제공하고 예멘 현지 세력이 지상전을 맡는 방식으로 후티와 싸워왔지만 현지 세력이 무너지자 공군력의 우위를 살릴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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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막으려 군대 쪼갰더니…합동작전에 독 됐다
사우디 군사 조직의 비효율성을 비판하는 시각도 있다. 사우디 왕정은 국방부 소속 정규군 외에 국가방위군과 왕실근위대 등을 별도로 두고 군사력이 한 조직에 집중되지 않도록 했다. 일종의 쿠데타 방지 장치다.
군사력 분산은 전투력 발휘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결정 권한이 상부에 집중돼 일선 지휘관의 판단 능력은 떨어졌고 서로 경쟁하는 군 조직들은 정보와 작전 계획을 충분히 공유하지 않았다. 졸탄 바라니 미 텍사스대 오스틴 정치학 교수는 “이런 칸막이가 현대전의 핵심인 합동작전 능력엔 매우 해롭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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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는 샀지만 독자적 전투력 대신 의존만 키워
외국군과 해외 군수지원에 기대 전력 공백을 메우는 구조가 사우디군의 전투력 향상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점 역시 이 같은 난맥상과 무관치 않을 수 있다. 지난 5월 로이터에 따르면 파키스탄은 병력 약 8000명, JF-17 전투기 비행대대, 중국제 HQ-9 방공체계를 사우디에 배치했다.
영국 국방부도 지난 3월 “드론과 순항미사일 등을 요격하는 이동식 방공체계 스카이세이버를 사우디에 배치하기로 했다”며 “레이더와 발사대뿐 아니라 왕립포병 포대와 운용 인력도 함께 보낸다”고 발표했다. 미 행정부도 지난해 12월 5억 달러(약 7000억원) 규모로 추정되는 사우디 육군 항공부대 군수지원 판매안을 의회에 통보했다. 여기엔 사우디가 운용 중인 아파치·블랙호크·치누크 헬기 등의 예비·수리 부품 공급이 담겼다.
김지윤 기자
해외 지원은 당장의 전력 공백을 줄일 수 있지만 운용할 자국 인력, 교육·정비 역량 등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함께 육성되지 않으면 군사력 의존으로 흐르기 쉽다. 바라니 교수도 “미군과 영국군이 사우디 등 아라비아 군주국의 실질적인 방어자이자 핵심 안보 제공자”라며 “미국의 무기, 훈련, 전력 투사 능력에 대한 의존은 지난 30년간 더욱 커졌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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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카서 맺은 집단방위…첫 시험대에 올라
사우디가 공을 들인 동맹 확장의 한계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사우디는 지난달 파키스탄·튀르키예와 한 나라에 대한 공격을 세 나라 모두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는 메카 공동방위협정을 맺었다.
15일(현지시간) 예멘 북부 알자우프에서 군용 차량들이 불타고 있다. 예멘 후티는 자신들이 공격한 차량이라고 주장했다. AFP=연합뉴스
하지만 이번 후티의 사우디 본토 공격은 해당 협정의 실효성을 시험하고 있다. 하칸 피단 튀르키예 외무장관은 19일 “사우디에 일부 군사적 필요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고 파키스탄도 “때가 되면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두 나라 모두 일단 유보적 태도를 취한 것이다. “이 협정에 통합사령부나 구체적인 발동 절차가 없다”는 지난달 미국 싱크탱크 아랍센터 워싱턴DC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