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지난해 취임 일성이다. 그는 SNS에 “취임 이래 0~3시간 수면이 일상화됐다”고 썼다. 최근에는 “오랜만에 5시간이나 잤다”는 글과 함께 주말에 다림질과 바느질을 한 사실도 공개했다. 세탁과 설거지, 청소도 직접 한다고 했다.
다카이치는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다. 일본은 미국보다 먼저 ‘유리천장’을 깼고, 정치 명문가 출신도 아닌 그가 자신의 경력으로 정상에 올랐다는 점에서도 상징성이 크다. 그러나 여성운동가들이 마냥 환영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 여성 한 명이 최고위직에 올랐다고 해서 일반 여성들의 현실까지 저절로 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올해는 일본의 남녀고용기회균등법 시행 40년이다. 여성 차별을 없애기 위한 법이 만들어진 지 40년 만에 첫 여성 총리가 나온 셈이다. 그런데 그가 보여주는 모습은 여전히 ‘일하고, 또 일하는’ 여성이다. 이 모습은 여성의 성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되묻게 한다.
그의 다림질을 둘러싼 논쟁도 흥미롭다. 마스조에 요이치 전 도쿄도지사는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나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등은 집안일을 공개하지 않는다”며 총리는 가사가 아닌 정책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과 집안일을 모두 완벽하게 해내는 ‘수퍼우먼’을 성공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여성의 이중 부담을 덜어주는 흐름과는 거리가 멀다.
지난주 발표된 세계경제포럼(WEF) 2026년 성 격차 보고서에서 일본은 145개국 중 117위였다. G7 가운데 여전히 최하위다.
유리천장을 깬 첫 여성 총리. 그 정상에 오르는 방법이 ‘남성보다 더 일하고, 집안일까지 더 완벽하게 해내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유리천장을 깬 리더가 의도하지 않게 또 하나의 기준을 만드는 역설이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