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전문연구요원 배정이 ‘인공지능(AI)’ 분야에서 14년 만에 부활한다. 이공계 석박사가 군 복무 대신 대기업 부설 연구소 등 첨단 연구 현장에서 3년간 일하는 제도다. 글로벌 AI 패권 전쟁 속에서 이공계 두뇌의 해외 유출을 막고, 대기업의 인프라를 국가 전략기술 육성에 활용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20일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제출받은 ‘2027년도 병역지정업체(연구기관) 선정 추천 명부’에 따르면, 과기정통부는 삼성전자·LG전자·삼성메디슨·HD현대로보틱스 등 4개사를 전문연구요원 지정 업체로 추천했다. 이들 기업 산하 9개 연구소가 배정을 요청한 인원은 총 81명이다. LG전자 ES(에코솔루션)연구소가 21명으로 가장 많은 인원을 신청했다. 이어 HD현대로보틱스 기업부설연구소와 LG전자의 의류과학·물과학·식품과학·서초연구소가 10명씩을 배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대기업 전문연구요원은 1970년대 국가 산업 육성을 위해 도입된 이후, 병역에 따른 연구 경력 단절을 막고 우수 인재를 양성하는 역할을 해 왔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등 1세대 IT 창업자 다수가 이 제도를 거쳤다. 그러나 중소기업의 연구개발(R&D) 인력난 해소와 형평성 등을 이유로 2013년 대기업 신규 배정이 전면 중단된 바 있다.
정부가 14년 만에 빗장을 푼 것은 거대 자본과 컴퓨팅 자원이 필수적인 첨단 AI 연구의 특수성 때문이다. 병무청은 지난 6월 고시를 통해 2027년도 AI 분야 석사급 전문연구요원 240명 중 절반인 120명을 대기업 연구소 몫으로 배정했다.
다만 첫해 신청 인원은 정부 배정 정원의 3분의 2 수준에 그쳤다. 까다로운 선정 요건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병무청 고시에 따르면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율 5% 이상 ▶중소기업이 수행하기 어려운 첨단 AI·AI 융합(AX) 연구 ▶글로벌 수준의 객관적 AI 연구개발 성과 등 세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황 의원에 따르면 신청하고도 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과기정통부 추천 단계에서 탈락한 대기업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대기업 전문연구요원 배정은 2027년부터 2029년까지 3년간 한시적으로 운영된다. 최종 인원은 과기정통부의 추천을 토대로 병무청이 확정한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R&D 인프라를 고려할 때 대기업 배정의 효과는 크다”면서도 “AI·IT 분야의 혁신은 스타트업·벤처기업에서도 활발하게 일어나는 만큼, 이들 혁신 생태계가 인력난을 겪지 않도록 균형 있는 안배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