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말라리아는 연간 500만 명 이상 감염되고 100만 명이 사망에 이르는 병이었다. 간염 또한 100만 명에게 발생하며 1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 뒤를 잇는 유행성출혈열은 매년 50만 명 이상 발병해 5만~6만 명이 죽었다. 유행성출혈열이 말라리아·간염과 함께 세계 3대 전염병으로 불리던 이유다. 6·25 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을 괴롭혔던 질병이기도 하다.
고려대 의대 이호왕(사진·2022년 작고) 교수팀의 집요한 연구 끝에 1970년대부터 유행성출혈열 연구에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1975년 휴전선 인근 한탄강에서 등줄쥐 2000~3000여 마리를 잡아 연구한 끝에 11마리의 폐에서 바이러스를 채취했고, 반 년간의 확인 실험을 거쳐 1976년 유행성출혈열의 병원체를 확인했다. 연구팀은 이를 ‘한탄바이러스(Hantaan virus)’로 명명했고, 국제적으로는 이 바이러스 무리를 한타바이러스(Hantavirus)라고 부르게 됐다.
유행성출혈열 연구는 결코 평탄치 않았다. 연구진이 출혈열에 감염되기도 하고, 한탄강에서 야간에 등줄쥐를 잡다가 군부대의 위협 사격을 받고 체포되는 등 ‘목숨을 걸고 연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백신을 만드는 과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바이러스를 발견한 지 12년 만인 1988년 11월 백신이 개발되자 이호왕 교수는 스스로 백신의 첫 접종자가 됐다. 백신을 공동 개발하던 ㈜녹십자 사장과 연구진 등이 그 뒤를 따랐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이후 임상시험 희망자가 몰려들었고, 2년도 지나지 않아 임상시험이 완료되었다. 1990년 9월 21일 녹십자는 이 결과를 바탕으로 유행성출혈열 백신인 한타박스를 출시했다. 명실상부한 국산 백신 1호를 갖게 된 것이다. 우리는 유행성출혈열의 공포를 잊은 지 오래다. 병에 걸릴 각오로 연구하며 자신의 몸으로 임상시험까지 감행한 이호왕 연구팀의 헌신 덕분이다. 의학의 발전과 공공보건의 확립은 이토록 어려운 일이다.
논란을 일으킨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자진 사퇴를 했다. 이호왕 교수를 떠올리면, 코로나19 치료제 임상시험을 위해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로비를 했다는 의혹은 철저하게 재규명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