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 인공지능(AI) 서비스의 총 사용량이 최근 몇 년 새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AFP=연합뉴스
인공지능(AI)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새로운 지식 습득과 사고 능력을 키우는 과정을 방해하는 것에서 한발 나아가, 기존에 갖고 있던 문제 해결 능력이나 비판적 분석 능력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런 능력은 특히 직장에서의 업무 수행에 큰 영향을 미친다. 반복적이고 단순한 업무의 결과물은 더 나아지고 단기적인 효율은 높일 수 있지만, 직업 숙련도와 새로운 문제에 대한 해결 능력이 낮아져 결국 ‘업무 지능의 퇴보’를 불러올 위험이 있다고 지적하는 전문가가 적지 않다.
실제 서울의 한 중견기업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김모(46·남)씨는 “업무를 하고 나면 생성 AI에 채점하게 한 뒤, 95점 이상이 나올 때까지 보고서를 수정한다. 한 번에 95점을 넘길 때면 상사한테 칭찬받은 것처럼 기쁠 때도 있지만, 문득 AI 없이는 어떻게 좋은 보고서를 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고 했다. 다른 중견기업에서 일하는 최모(34·남)씨는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점을 AI가 지적하기 때문에 AI를 쓰지 않을 수 없다”면서도 “습관적으로 AI를 쓰다 보니 동시에 스스로 문제를 찾고 업무를 처리하는 능력은 줄어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 직장인이 사무실 PC 앞에 앉아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중앙포토
AI가 산업 영역에서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시기, 업무 효율성과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질 거란 기대감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 결과들은 업무에 AI를 활용하는 것이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로만 이어지진 않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2023년 하버드 경영대학원은 보스턴 컨설팅그룹(BCG)의 컨설턴트 758명을 대상으로 챗GPT-4를 사용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의 업무 결과물을 비교하는 실험을 했다. 업무는 AI로 잘 해결할 수 있는 과제(신제품 구상 및 개발)와 AI만으로는 해결이 어렵고, 인간 고도의 개입이 필요한 과제(고객 비즈니스 문제 해결) 두 종류로 주어졌다.
결과는 업무의 종류에 따라 정반대로 나왔다. 신제품 구상 업무에서는 AI를 사용한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평균 12.2% 더 많은 과제를 완료했고, 속도도 평균 25.1% 더 빨랐다. 반면 고객 문제 해결 업무에서는 AI를 쓴 집단이 정답을 맞힐 확률이 오히려 19% 낮았다. AI로 업무 생산성을 높이려면, 어떤 영역에 어떻게 사용할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간의 적절한 개입이 필요하다는 게 실험 결과에서 나타났다.
회의하는 직장인 모습 자료사진. 사진 셔터스톡
문제는, AI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인간의 업무 숙련도가 떨어지는 이른바 ‘디스킬링(de-skilling)’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숙련도가 떨어질수록 AI를 통제할 능력도 낮아지게 되고, AI에게 맡길 업무와 맡겨선 안 되는 업무를 판단하는 능력도 퇴화한다. 그리고 이는 다시 AI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미국심리학회(APA)도 AI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비판적 사고력과 직무 전문 역량을 저하한다는 연구 결과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무틀루 쿠쿠로바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교수는 지난 7월 APA에 “사람과 AI 간의 상호작용 대부분은 질문하고 답을 얻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단순 거래형”이라며 “일방향적인 단순 상호작용은 인지 발달보다는 인지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크다”고 짚었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 네거리에서 직장인들이 출근길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심지어 이미 일정 수준의 숙련도를 갖춘 전문가 집단에서도 AI 사용 이후 업무 능력이 떨어지는 현상이 목격되고 있다. 영국의 국제의학학술지 랜싯이 지난해 8월 발간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2000건 이상 대장내시경 경험을 보유한 폴란드 내시경 전문의들에게 AI 용종 탐지 장비를 3개월 동안 쓴 뒤 다시 AI 없이 내시경 검사를 하게 했더니 선종 발견율은 AI 장비를 쓰기 전 28.4%에서 22.4%로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업무 지능의 퇴보를 막으려면, AI를 활용할 때 인지적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이경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습관적으로 AI에 의존하다 보면 갑작스러운 문제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패닉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며 “평소 AI를 활용해 학습이나 업무를 할 때도 자신이 문제 해결의 주체라는 인식을 갖고 능동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을 지녀야 인지적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