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서학동사진미술관. 서학동예술마을 골목 끄트머리에 있는 한옥을 김지연(78) 관장이 전시실·카페 등으로 개조해 2013년 문을 열었다. 2021년 11월 이일순(54·사진) 화가가 대표를 맡으면서 기존 '서학사진관'을 현재 이름으로 바꾸고 다시 문을 열었다. 김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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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관장, 지난해 기부 의사 밝혀
지난 13일 오후 5시쯤 전북 전주시 완산구 서학동사진미술관. 다양한 인물들의 일상을 낯선 색깔과 이질적인 이미지로 재구성한 회화 18점과 판화 4점이 전시실 벽을 채우고 있었다. 김수진 작가가 개인전 ‘잠긴 산 떠오르는…’에 출품한 작품들이다. 전북대 미술학과와 교육대학원을 졸업한 김 작가는 작가 노트에 “낯선 충격을 통해 익숙한 삶에 틈을 만들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다”고 적었다.
서학동사진미술관은 김 작가처럼 전북에 뿌리를 둔 예술가들 사이에서 ‘착한 미술관’으로 통한다. 전시 공간이 부족한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대관료(일주일 70만원)로 작품을 선보일 수 있어서다. 관람료도 무료다. 사진작가 김지연(78) 관장이 2013년 서학동예술마을에 문을 열었다. 2006년부터 전북 진안에서 갤러리 겸 공동체 박물관인 ‘계남정미소’를 운영해 온 김 관장이 서학동 골목 끝 오래된 한옥을 사들여 전시실과 카페 등으로 꾸몄다.
전북을 대표하는 소규모 문화·예술 공간이 중대 기로에 섰다. 김 관장이 최근 두 공간을 기증하기로 하면서다. 전북도는 소유권을 넘겨받은 뒤 각각의 정체성을 살리면서 새로운 활용 방안을 찾겠다는 구상이다.
전북 진안군 마령면 갤러리 겸 공동체 박물관 계남정미소. 김지연 관장이 옛 정미소를 사들여 리모델링한 뒤 2006년 문을 열었다. 사진 전북도 공식 블로그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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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공유재산심의회 심의 예정
전북도는 20일 “도립미술관에서 서학동사진미술관과 계남정미소의 기부채납 절차를 밟고 있다”며 “오는 11월 도 공유재산심의회에서 해당 안건을 다룰 예정”이라고 밝혔다. 도립미술관은 당초 9월 심의회 상정을 검토했지만, 도지사와 도립미술관장 교체 등의 영향으로 일정을 미뤘다. 예술가와 지역 주민의 사랑을 받아 온 두 공간에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고, 전북도 품에 안기면 어떤 모습으로 바뀌게 될까.
서학동사진미술관이 자리한 서학동예술마을은 연간 1000만명이 찾는 전주 한옥마을과 전주천을 사이에 둔 예술촌이다. 2010년부터 음악가·도예가·화가 등이 작업실과 안식처를 마련하면서 만들어졌다. 이 가운데 서학동사진미술관은 아기자기한 정원과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골목 여행의 성지’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2019년 말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개점휴업 상태에 빠졌다. 대관 요청이 끊기고 방문객도 급감했다. 이후 2021년 11월 이일순(54) 화가가 대표를 맡으면서 기존 ‘서학사진관’을 현재 이름으로 바꾸고 다시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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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계엄 사태로 경영난
지난 13일 미술관에서 만난 이 대표는 “아주 덥거나 추울 때를 빼곤 판화·사진·그림·다큐 등 개인전·초대전·기획전·그룹전 등 한 해 평균 30회 정도 전시회를 열어 왔다”고 말했다. 이어 “관람객은 골목 안 주택에 있는 갤러리를 신기해하고, 90대 할머니부터 어린아이까지 동네 주민 누구나 올 수 있는 공간”이라고 했다.
경영난은 여전하다. 이 대표는 “2024년 12월 3일 계엄 사태 이후 예약된 전시회가 줄줄이 취소됐고, 지금까지 그 여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 “관장님이 고심 끝에 지난해 말 전북도에 계남정미소와 함께 서학동사진미술관을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안다”고 했다.
두 공간을 매각하는 대신 고유한 정체성과 가치를 유지하는 조건으로 광역자치단체에 넘기기로 했다는 게 이 대표 설명이다. 김 관장의 건강 문제도 운영의 변수로 꼽힌다. 김 관장은 지난 5월 자신의 사진전을 마친 직후 쓰러졌지만, 현재는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회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집 '영산강'에 수록된 김지연 관장 사진. 사진 서학동사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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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만원 이상…공유재산 심의 기준 충족”
도립미술관 측은 두 공간 모두 공유재산심의회 심의 대상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전북도의 공유재산 취득·처분 관련 심의 기준은 3000만원 이상이다.
도립미술관에 따르면 계남정미소는 건물 162㎡(49평), 인근 밭을 포함한 대지 1161㎡(352평) 규모다. 공시지가 기준으로는 약 2000만원(건물 700만원·토지 1200만원)이지만, 부동산 시세는 약 5700만원으로 추정된다. 도립미술관은 이를 근거로 기부채납 기준을 충족하는 것으로 봤다.
서학동사진미술관은 건물 46.28㎡(14평), 전체 대지 102㎡(42평) 규모다. 공시가격은 건물 3300만원, 토지 5300만원으로 파악됐으며, 부동산 시세는 전체 1억5000만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이원택 전북지사가 지난 5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라감영에서 열린 '제65회 전라예술제' 개막식에서 "예술은 사람과 세상을 연결하는 힘"이라며 "예술인들이 마음껏 창작하고 도민이 일상에서 문화를 누릴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하고 있다. 사진 전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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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택 ‘전북 미술 창작소 확충 사업’ 공약과 연계”
기부채납 이후 활용 방안은 두 공간의 성격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서학동사진미술관은 사진·영상 중심의 전시 공간이라는 기존 정체성을 유지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계남정미소는 이원택 전북지사의 공약인 ‘전북 미술 창작소 확충 사업’과 연계해 레지던시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레지던시는 예술가가 창작 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일정 기간 특정 지역이나 기관의 작업 공간을 지원하는 제도다. 현재 도립미술관이 직접 운영하는 레지던시 사업은 없다. 유치석 도립미술관 학예연구팀장은 “계남정미소는 옛 정미소라는 공간의 역사성과 농촌이라는 지역적 특성, 김 관장이 오랫동안 주민과 함께 호흡해 온 작업 등 본래 성격을 잃지 않는 범위에서 도지사 공약과 연계해 레지던시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넘어야 할 산도 적지 않다. 계남정미소는 1941년 지어진 낡은 건물이어서 공공시설로 활용하려면 보수 공사를 통해 안전성을 확보해야 한다. 특히 레지던시 공간으로 전환하려면 리모델링 비용이 애초 재산 가치보다 몇 배가 투입될 가능성도 부담이다.
이와 관련, 지난 14일 취임한 이기전 도립미술관장은 서학동사진미술관의 활용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계남정미소에 대해선 신중론을 폈다. 이 관장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서학동사진미술관은 작가인 내가 봐도 활용 가치가 높은 공간”이라며 “특히 김지연 관장이 전국적 인지도와 브랜드가 있는 작가여서 상징성과 수요 모두 있다고 본다”고 했다. 다만 계남정미소에 대해선 “상징성 하나만 가지고 창작 공간 사업을 하기엔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건물 상태와 접근성, 작가 수요, 투자 대비 활용도 등을 면밀히 따져 신중하게 판단할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