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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병원비 급한데 “건보 환급 기다려라”…묶인 실손보험금 2800억

중앙일보

2026.09.20 13:00 2026.09.20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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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휠체어에 탄 환자가 이마를 만지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휠체어에 탄 환자가 이마를 만지고 있다. 연합뉴스

67세 A씨는 2년 전 뇌출혈로 오른쪽 마비 등의 후유증이 남았다. 병원에 입원해 재활 치료를 이어가던 그는 올해 낙상까지 발생하면서 다시 수술과 재활을 진행하게 됐다. 고정적으로 부담해야 할 치료비만 한 달 300만원가량. 하지만 실손보험에 가입한 A씨에게 지급된 보험금은 올 3월이 마지막이었다. 치료비가 건강보험 본인부담 상한액을 넘어 환급금이 들어올 예정이라 지급 의무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별다른 소득이 없는 A씨가 당장 써야 할 치료비는 온전히 딸 부부의 숙제가 됐다. 사위 박모(44)씨는 “올해만 최소 2700만원의 현금이 필요하고, 내년도 상황이 비슷할 텐데 8월 건보 환급만 기다려야 한다”면서 “장모님이 실손보험료만 월 20만원씩 내는데 건보를 이유로 보험금을 안 주는 건 이해되지 않는다. 모아놓은 돈으로 버티고 있지만, 아이도 키워야 하고 넉넉지 않은 형편에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A씨 가족처럼 건강보험 본인부담상한제를 이유로 ‘제2의 건보’로 불리는 실손보험 가입자에 지급되지 않은 보험금이 연간 2800억원을 넘어섰다. 건보 환급금은 뒤늦게 지급되는데 실손보험금이 당장 들어오지 않는 ‘치료비 시차’에 경제적 부담이 큰 중증·장기 환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20일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건보 본인부담상한제 관련 실손보험금 지급보류액은 2022년 1089억원에서 지난해 2842억원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보류 건수도 14만9084건에서 45만9460건이 됐다. 보험사가 건보를 이유로 가입자에게 보험금 지급을 사실상 줄이거나 거부하는 사례가 꾸준히 늘어나는 셈이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건보 본인부담상한제는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1년간 가입자가 낸 본인부담금(비급여·선별급여 등 제외)이 개인별 상한액을 초과하는 경우, 해당 초과금을 건보공단에서 정산한 뒤 다음해 8월께 돌려주는 제도다. 올해 기준 소득 1분위(저소득층)는 90만원, 10분위(고소득층)는 843만원의 상한선이 설정됐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진료로 인해 올해 8월부터 환급되는 상한액 초과금은 3조760억원(226만2605명 대상)에 달한다. 1인당 평균 약 136만원이다.

보험사의 지급보류 결정은 건보 환급금은 실손 보상 대상이 아니라는 2024년 대법원 판결에 근거를 둔다. 실손 가입자가 보험금을 받고, 환급금까지 받으면 ‘이중지급’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상한제가 환자 부담보다 보험사의 지급 책임을 줄여주는 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는 “고액의 치료비를 직접 내야 하는 환자들은 1년 넘게 건보 환급을 기다리는 것부터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라면서 “본인부담상한제가 실손보험금 지급과 엇박자를 내면서 제도의 취지가 점점 퇴색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다만 보험사들도 할 말은 있다. 가입자 사정이 어려울 경우 ‘약정서’를 쓰고 보험금을 그대로 주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일부는 나중에 건보 환급금을 받아도 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환급금을 받은 뒤엔 전화를 피하는 가입자가 적지 않다. 최악의 경우엔 소송전까지 가는 경우도 나온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반복되는 환자·보험사의 갈등과 사회적 비용을 줄일 제도 개편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건보·실손 연계를 강화해 ‘사후정산’을 의무화하자는 것이다. 감사원도 지난해 보험서비스 이용실태 감사 보고서를 통해 “현행법상 건보공단과 민간보험회사 간 정산의 법적 근거가 없어 이중지급이 지속되고 있다”고 짚었다.

이인영 의원은 “건보 본인부담상한제는 과도한 의료비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을 보호하는 최후의 안전망인데, 환급이 이뤄지기도 전에 보험사가 실손보험금 지급을 미루거나 줄이는 건 제도 취지에 맞지 않는다”면서 “보험사가 실손보험금을 제때 지급하고, 건강보험공단은 환자가 보험사로부터 이미 받은 보험금 등을 제외해 상한제 초과금을 지급하도록 법을 조속히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종훈([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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