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뇌혈관 질환과 감염병 이상 기온에 응급실 방문·입원 증가 체온 조절 과부하로 혈관 부담 커져 만성질환자·고령자는 더욱 주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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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변화가 현대인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 폭염과 한파를 오가는 극단적인 이상 기후는 체온 조절 시스템을 무너뜨리며 심뇌혈관 질환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여기에 기온 상승과 아열대화된 환경은 모기·진드기 등 매개체 감염병의 지형도마저 바꾸고 있다. 기후 변화는 이제 단순한 환경 문제를 넘어 일상을 뒤흔드는 보건 위기로 다가왔다. 기후 변화가 인체에 미치는 질병 부담을 짚어보고, 일상에서 실천 가능한 대처 방안을 다뤄본다.
고혈압을 앓던 60대 남성 최모씨에게 올여름은 악몽과도 같았다. 폭염이 연일 이어지던 날 야외 작업을 하던 최씨는 극심한 피로감과 어지럼증을 느꼈다. 그저 ‘더위를 먹었겠거니’ 싶어 음료를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그러나 불과 몇 시간 뒤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과 식은땀이 몰려왔고 결국 응급실에 실려 갔다. 검사 결과, 급성 심근경색이었다. 탈수로 혈액이 끈적해지면서 관상동맥에 혈전(피떡)이 생겨 혈관을 막은 것이다. 최씨는 긴급 스텐트 삽입술을 받고서야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탈수·혈압 변화, 혈전·부정맥 위험 높여 우리 몸은 외부 온도가 급격히 변해도 자율신경계를 통해 체온과 혈압, 맥박을 일정하게 유지한다. 그러나 폭염과 한파라는 극단적인 이상 기후에서는 이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릴 수 있다.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순환기내과 강민경 교수는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는 혈관 내피 기능이 떨어져 있거나 이미 동맥경화가 진행된 경우가 많다”며 “기온 이상으로 인한 급격한 혈압 변화나 탈수, 교감신경 스트레스에 혈관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서 체온을 유지하려는 보상 작용 자체가 심장과 혈관에 치명적인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폭염에 노출되면 인체는 열을 방출하기 위해 피부 표면의 혈관을 확장하고 땀 배출을 늘린다. 이 과정에서 혈압이 떨어지면 이를 보상하기 위해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이때 심한 탈수가 동반될 경우 혈액이 농축되면서 점도가 높아지고 전해질 불균형이 초래된다. 결국 혈관 내 혈전 형성을 촉진하고 부정맥 발생 위험이 커진다.
여름철 폭염이 심해지는 만큼, 이제 국내에서도 겨울철 이상 한파가 낯설지 않다. 급격한 기온 하강 상황에서 신체는 체온 손실을 막기 위해 말초혈관을 강하게 수축시킨다. 이로 인해 혈압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심장의 산소 요구량과 부담이 늘어난다. 또한 교감신경계가 활성화하면서 혈관 내부의 죽상경화반(혈관 벽 찌꺼기)이 파열되거나 혈전이 생겨 급성 심근경색, 뇌졸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상 기온 현상이 심뇌혈관 건강을 위협한다는 사실은 데이터로도 입증된다. 질병관리청이 국가응급진료정보망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한 결과, 2014~2019년 폭염으로 인한 전국 초과 응급실 방문자 수는 연평균 1176.9명이었다. 초과 응급실 방문자 수는 오직 기온 상승의 영향 때문에 추가로 응급실을 찾은 것으로 추산되는 환자 규모를 뜻한다. 온열 질환(연평균 654.5명) 외에도 심장 질환(278.1명), 급성 신장 질환(244.4명)이 주요 원인이었다.
폭염에 따른 초과 입원 환자 수도 2010~2019년 기준 연평균 1076.9명으로, 이 중 심장 질환(693.8명)이 온열 질환 입원자 수(262.6명)를 2.6배 이상 앞질렀다. 기후 위기가 순환기계 질환자들의 생존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기후 변화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
한파 역시 치명적이긴 마찬가지다. 10년(2010~2019년)간 국가데이터처 사망원인통계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중등도 추위(영하 5~12도) 노출에 따른 초과 사망자는 남성 1326.9명, 여성 1085.6명으로 가장 많았다. 경한 추위(0~영하 5도)에서도 남성 1074.6명, 여성 742.3명의 초과 사망자가 발생했다.
급격한 기온 변화로 인한 응급 상황을 예방하려면 질환의 위험 신호를 사전에 파악해 두는 게 중요하다. ^갑작스러운 가슴 통증이나 압박감 ^식은땀을 동반한 호흡곤란 ^지속되는 가슴 두근거림과 어지럼증 ^한쪽 얼굴이나 팔다리의 마비 또는 근력 저하 ^어눌해진 발음 ^실신이나 의식 저하가 나타나면 지체 없이 119에 연락해 응급실로 가야 한다.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심뇌혈관병원 최영(순환기내과) 교수는 “탈수와 자율신경계 변화가 심해지는 시기에는 증상을 가볍게 넘기지 말고, 반복되는 두근거림이나 실신, 흉통, 호흡곤란이 있다면 신속하게 전문 진료를 받아 정확한 원인을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성질환자는 더욱 각별한 건강 관리가 필요하다. 이상 기후 상황에서 환자들이 흔히 범하는 실수는 임의로 약 복용을 중단하는 것이다. 폭염에 땀을 많이 흘린 상태에서 이뇨제나 혈압약을 먹으면 저혈압과 어지럼증이 심해질 수 있다. 이로 인해 “혈압이 낮아졌다”거나 “더워서 기운이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 약을 안 먹거나 복용량을 줄이는 사례가 많다. 하지만 전문가와 상의 없이 임의로 약물 복용을 중단할 경우 혈압의 급격한 반등이나 혈전 형성 위험성이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 강민경 교수는 “평소와 다른 증상이 있거나 혈압이 현저히 떨어졌다면 반드시 의료진과 상의해 약제를 조정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주치의와 미리 상담해 수분·약물 조절 이상 기후가 일상이 된 지금, 건강 피해를 줄이려면 사전 대비는 필수다. 가장 기본이 되는 수칙은 평소 혈압과 맥박을 규칙적으로 측정하는 것이다. 특히 심부전 환자라면 매일 같은 시간에 체중도 측정해 체내 수분 변화 추이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행동 패턴도 바꿔야 한다. 폭염 땐 하루 중 가장 뜨거운 시간대(낮 12시~오후 5시)의 야외 활동을 피하는 것이 원칙이다. 한파 특보가 내려졌을 땐 이른 아침 야외 운동이나 새벽 종교 활동은 낮 시간대로 미루거나 실내 활동으로 대체하는 것이 안전하다.
무엇보다 계절이 바뀌어 폭염이나 한파가 본격화하기 전, 담당 주치의를 미리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 자신의 기저 질환에 맞춘 수분 섭취 가이드라인을 확인하고, 저혈압이나 탈수 증상이 나타났을 때의 약물 조절 방안을 사전에 논의해 둬야 이상 기후 상황에서도 건강을 지킬 수 있다.
지구 온난화로 한반도의 감염병 지형도가 바뀌고 있다. 기온 상승으로 감염병 매개체의 활동 시기가 앞당겨지는가 하면, 폭우와 고온이 결합한 환경이 조성되면서 수인성 감염병의 위협도 커졌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모기의 활동 시작 시점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평균 기온이 1.4도 오르면서 일본뇌염 주의보·경보 발령 시기가 크게 앞당겨졌다. 한 예로 2016년 4월 3일에 발령됐던 일본뇌염 주의보는 올해 3월 20일에 내려지며 2주가량 빨라졌다.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 조사에서도 올해 말라리아 매개 모기는 평년 대비 2주, 뎅기열 등 해외 유입 감염병 매개 모기는 1주일가량 일찍 채집됐다. 봄철 이상 고온으로 4월부터 낮 기온이 30도 가까이 오르면서 모기가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최적 기온(27도 안팎)이 일찍 형성된 탓이다.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남엘리엘 교수는 “봄 기온이 높아지면 모기 유충이 성충으로 자라는 속도가 빨라져 활동이 일찍 시작된다”며 “기온 상승은 모기 체내 바이러스나 원충 등 병원체의 증식·전파 속도까지 높여 감염병의 파급력을 키우는 주요 요인으로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가을철 기온이 높게 유지되면 모기 활동 종료 시점도 그만큼 늦춰진다.
외래 감염병 매개체의 국내 유입도 현실이 됐다. 과거에는 기온이 낮아 정착하기 힘들었던 열대·아열대성 모기가 한반도 최남단에서 관측되는 추세다. 지난해 제주도에서는 주로 열대지방에 서식하며 뇌염·뇌수막염을 유발하는 웨스트나일열 매개체인 ‘열대집모기’가 발견됐다. 질병관리청은 현재의 기후 변화 속도가 이어질 경우, 2050년 무렵에는 뎅기열 전파력이 강력한 ‘이집트숲모기’ 역시 남부 지역에 정착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기후 변화는 강수 양상도 바꿔놨다. 연간 강수일수는 줄어든 반면 전체 강수량은 늘어났다. 특히 시간당 50㎜ 이상 쏟아지는 기습적 집중호우가 빈번해졌다. 이처럼 갑작스러운 폭우와 침수는 하수, 쓰레기, 동물 배설물 등이 깨끗한 물과 한데 섞이는 환경을 만든다. 오염된 물이 가정의 급수 시설이나 조리 공간으로 들어올 경우 수인성 감염병 위험이 급격히 커질 수밖에 없다.
침수로 인한 단전이나 상하수도 마비도 문제다. 식수 확보가 어려워지고 음식이 쉽게 변질되는 데다 고온 현상까지 겹쳐 물의 오염을 가속하기 때문이다. 남엘리엘 교수는 “침수된 물은 단순한 위장관 감염에 그치지 않는다”며 “피부 상처가 오염된 물에 노출되면 연조직 감염이 발생할 수 있고, 렙토스피라증 같은 발열성 질환의 발생 위험도 함께 커진다”고 말했다.
기후 변화에 따른 감염병 피해를 줄이려면 개인 차원의 예방 수칙 준수가 기본이다. 야외 활동 시에는 밝은색 긴 옷을 입고 모기 기피제 사용이 권장된다. 집 주변의 화분 받침이나 빗물받이, 배수로에 고인 물은 주기적으로 제거해 모기 번식지를 미리 차단해야 한다. 아울러 해외여행 후 발열, 근육통, 관절통 등의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의료진에게 방문 국가와 일정을 알려야 한다.
침수 피해 지역에서는 식수와 조리용 물로 생수나 끓인 물을 써야 한다. 침수됐거나 정전으로 냉장 상태가 4시간 이상 중단된 식품은 주저 없이 폐기하는 것이 안전하다. 수해 복구 작업을 할 때는 오염된 물이 상처 부위에 닿지 않도록 방수 장갑과 장화를 반드시 착용하고, 작업 전후에는 흐르는 물에 30초 이상 손을 씻는 위생 관리가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