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구로병원 새 암병원 건립 2029년 말 완공 목표로 첫 삽 떠 검사·진료·치료 공간 한곳에 집약 중환자실 25병상·수술실 7개 늘려
고려대 구로병원이 새 암병원 건립에 착수하며 중증·필수의료와 정밀 암 치료 역량 강화에 나섰다. 사진은 새 암병원이 들어설 구로병원의 조감도.
암 치료에는 하나의 정답이 없다. 같은 암이라도 병기와 유전적 특성, 치료 반응에 따라 수술·항암·방사선 치료의 순서와 조합이 달라진다. 결국 치료 성패는 환자 한 사람의 암을 얼마나 정밀하게 분석하고 맞춤 전략을 세우느냐에 달려 있다. 환자마다 최적의 해법을 찾는 ‘개인 맞춤형 정밀 암 치료’가 중요해진 배경이다. 고려대 구로병원은 새 암병원 건립을 계기로 암 진료 체계의 대대적인 전환을 예고했다.
고려대 구로병원은 2029년 말 완공을 목표로 새 암병원의 첫 삽을 떴다. 연면적 약 3만458㎡(9214평), 지하 9층·지상 6층 규모다. 이번 새 암병원 건립은 1983년 의료 취약지역에서 출발해 중증·필수의료를 중심으로 몸집을 키워온 구로병원의 다음 도약을 이끌 핵심 사업이다.
구로병원은 2019년부터 중증 질환 치료 중심으로 병원 구조를 재편하는 중장기 마스터플랜을 추진해 왔다. 1단계로 2022년 9월 미래관을 완공해 10개 진료과를 이전·확장했다. 심혈관센터를 기존의 두 배 규모로 키우고, 췌장담도센터와 정밀유전체임상의학센터도 신설했다. 새 암병원 건립은 마스터플랜의 2단계다. 민병욱 고려대 구로병원장은 “새 암병원은 암 치료와 중증·필수의료 역량을 강화하는 동시에 구로병원의 새로운 진료 체계를 완성하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진단부터 수술까지 환자 동선 최적화 새 암병원은 단순히 진료 공간을 넓히는 데 머물지 않는다. 중증·응급 환자를 위한 핵심 인프라와 암종별 특성화센터를 한데 묶어 진료 체계를 환자 중심으로 재편하는 작업이다. 암을 진단받은 순간부터 치료와 이후 관리까지 환자의 치료 여정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는 것이 목표다. 중환자실 25병상과 수술실 7개를 추가하고 권역응급의료센터도 현재보다 약 두 배로 확장한다. 암 치료뿐 아니라 고위험·응급 환자의 최종 치료를 맡는 상급종합병원의 역할까지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환자가 가장 먼저 체감할 변화는 ‘진료 동선’이다. 암 치료 과정에서는 환자가 여러 진료과와 검사실을 오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제한된 공간에 시설이 분산돼 있어 환자의 이동 부담이 적지 않다. 이런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새 암병원에서는 검사·진료·치료 시설을 한곳에 집중 배치한다. 환자가 병원 구조에 맞춰 움직이는 대신 필요한 의료진과 검사·치료가 환자를 중심으로 연결되는 구조다. 특히 유방암센터와 갑상선암센터, 소화기내시경센터, 호흡기센터, 항암치료실 등 암종별 특성화센터를 확대해 환자의 편의성을 높일 계획이다.
그만큼 치료 속도도 빨라진다. 구로병원은 검사부터 진단, 수술·항암·방사선 치료까지 원스톱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진료 동선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해 왔다. 새 암병원이 완공되고 수술실과 검사 인프라가 늘어나면 진단부터 치료까지 이어지는 시간을 지금보다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 민 병원장은 “현재와 비교하면 환자의 병원 내 진료 동선이 최소 60%가량 개선될 것으로 본다”며 “관련 인프라가 확충되면 암 환자의 70~80%는 2주 안에 진단과 치료 결정, 수술까지 연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 암병원이 지향하는 중심축은 ‘환자 맞춤형 정밀 암 치료’다. 같은 암종이라도 치료에 대한 반응은 환자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환자의 암종과 병기뿐 아니라 유전적 특성, 면역 상태, 검사 결과 등을 종합해 치료 전략을 세워야 한다. 민 병원장은 “의학이 발전할수록 똑같은 암은 하나도 없다고 봐야 한다”며 “어떤 환자에게는 수술이 효과적이지만 다른 환자에게는 불필요한 수술이 될 수 있다. 유전체 분석을 포함한 여러 정보를 바탕으로 그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를 찾는 것이 정밀치료”라고 말했다.
다학제·유전체 기반 맞춤 치료 고도화 이를 가능하게 하는 토대가 다학제 시스템이다. 구로병원은 2009년 개념조차 생소했던 다학제 진료를 국내 최초로 도입한 곳이다. 다학제 진료는 여러 진료과 의료진이 모여 환자에게 맞는 최적의 치료법을 논의·결정하는 시스템이다. 현재 구로병원은 유방암·폐암·대장암·식도암·두경부암·췌담도암·간암·위암 등 암종별로 전문 다학제 진료팀을 운영 중이다. 내과·외과·영상의학과·방사선종양학과 등 여러 분야 의료진이 환자의 상태를 함께 살펴 치료의 순서와 방법을 정한다. 새 암병원에서는 전용 다학제 진료 공간과 특성화센터를 중심으로 협진을 더욱 촘촘하게 연계할 방침이다.
그동안 축적한 치료 성적도 새 암병원의 기반이 된다. 구로병원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적정성 평가 결과 대장암·위암·유방암·폐암 분야에서 5년 이상 연속 1등급을 받았다. 민 병원장은 “연구중심병원으로서 활발한 임상시험을 통해 새 항암제와 진단·치료 기술을 검증한 뒤 실제 환자 치료에 이를 적극적으로 적용해 왔다”며 “새 암병원에서는 연구 성과가 실제 치료로 더욱 빠르게 이어지는 선순환 체계를 갖출 계획”이라고 말했다. 암 종류별 치료 성과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아웃컴스북’도 조만간 발간할 예정이다. 실제 환자의 치료 결과를 해마다 추적하고 개선하겠다는 취지다.
암 치료의 목표는 완치를 넘어 환자의 삶의 질까지 관리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암환자에게 ‘5년 생존’은 중요한 이정표지만, 완치 판정을 받았다고 고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구로병원은 올해부터 암 생존자를 위한 ‘암 평생 관리 프로그램’ 운영을 시작했다. 치료 후 5년, 일부 암종은 10년이 지난 환자를 기존 진료과와 연계해 장기적으로 관리하는 서비스다. 식생활은 물론 향후 필요한 검진의 종류와 시기 등을 구체적으로 안내한다. 암 진단과 치료에서 완치 후 건강 관리, 가족의 예방·검진까지 하나로 잇는 ‘완결형 암 관리 체계’인 셈이다.
민 병원장은 “최고의 병원은 단순히 규모가 가장 크거나 고가 장비가 많은 곳이 아니라 환자가 실제로 최고의 병원이라고 느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며 “새 암병원을 중심으로 중증·필수의료와 정밀 암 치료 역량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치료 과정뿐 아니라 이후 삶까지 환자의 입장에서 의료를 책임지는 병원으로 계속 변화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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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필수의료는 꼭 지켜야 할 철학 … 환자가 체감하는 최고의 병원 만들 것”
인터뷰민병욱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장
민병욱 고려대 구로병원장.
민병욱(사진) 고려대 구로병원장은 새 암병원의 방향을 설명하면서 거듭 ‘환자 중심’과 ‘중증·필수의료’를 강조했다. 새 건물과 첨단 장비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환자를 치료할 사람과 병원이 지켜야 할 철학이라는 설명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Q : 새 암병원 건립이 갖는 의미는.
A : “구로병원은 현재 공간이 협소해 기존 시설 안에서는 더 이상 충분한 확장이 어렵다. 새 암병원은 중장기 마스터플랜의 핵심인 2단계 사업이다. 의·정 사태 등으로 착공이 당초보다 약 2년 늦어지면서 재정 부담도 커졌다. 하지만 계획된 확장이 멈추면 병원의 성장 동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새 암병원은 구로병원이 다음 단계로 도약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기반이다.”
Q : 환자 입장에선 어떤 점이 개선되나.
A : “병원 안에서 이동하는 불편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의료진에게 병원은 익숙한 공간이지만, 환자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다. 병원이 환자의 입장에서 움직여야 한다. 새 암병원은 진료와 검사, 치료 기능을 한곳에 모으고 관련 진료과가 함께 움직이도록 설계했다.”
Q : 구로병원만의 경쟁력을 꼽는다면.
A : "오랜 기간 쌓아온 다학제 진료 경험과 이를 뒷받침하는 치료 역량이다. 구로병원은 유전체 분석과 정밀의료, 고난도 수술, 연구 역량을 결합해 환자에게 적합한 치료를 찾아내고 있다. 특히 고난도 단일공 로봇수술 분야에서도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새 암병원이 완공되면 이런 강점을 더욱 체계화해 개인 맞춤형 정밀 암 치료를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Q : 중증·필수의료 강화에 요구되는 과제는.
A : “훌륭한 인재 확보가 절실하다. 중증·필수의료는 흔히 말해 돈이 안 되고 힘든 분야다. 그렇다고 이를 포기하면 병원은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 구로병원에는 중환자실 전담 전문의와 외상 전문 의료진처럼 병원의 안전을 지키는 인력이 많다. 수익만으로는 가치를 평가하기 어려운 역할이다. 좋은 건물과 첨단 장비도 중요하지만, 결국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다. 우리와 같은 철학을 공유하면서 세계적인 수준의 병원을 함께 만들어갈 인재가 필요하다. 그런 인력을 확보하고 제대로 대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가장 큰 과제다.”
Q : 궁극적으로 어떤 병원을 만들고 싶나.
A : “환자가 느끼는 최고의 병원을 만들고 싶다. 규모가 크거나 비싼 장비가 많은 병원을 뜻하는 게 아니다. 환자가 진료를 받으면서 ‘이 병원이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살아 있다는 것은 변화하는 것’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구로병원은 1983년 개원 이후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새 암병원이 완공된 뒤에도 변화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중증·필수의료를 지키면서 환자가 필요로 하는 방향으로 계속 변화하는 병원을 만들어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