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소송에 휘말린 워싱턴DC 개선문을 드론과 저격수 등을 갖춘 군사시설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앞서 논란이 된 백악관 연회장도 ‘국가안보 시설’이라는 논리로 공사 중단 위기를 넘긴 만큼, 같은 전략을 다시 꺼내 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10월 1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연회장 기부자 만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건립을 추진 중인 ‘독립 개선문(Independence Arch)’ 모형을 들어 보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트럼프는 20일(현지시간) 트루스소셜에 “미군의 강력한 요청과 국가안보 목적에 따라” 높이 250피트(약 76m)의 개선문을 “최상급 군사시설이자 개선문”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곳에 “대규모 드론을 보관하고 신속하게 운용하고, 옥상과 광장에는 저격수를 배치하는 한편 대량의 저격용 탄약도 저장하겠다”고 했다. 미 국방부는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링컨 기념관과 알링턴 국립묘지 사이 알링턴 메모리얼 브리지 인근에 들어설 개선문은 당초 미국 건국 250주년을 기념하는 상징물로 추진됐다. 하지만 참전용사 3명과 건축역사학자가 의회 승인 없이 추진할 수 없는 사업이라며 소송을 제기하면서 제동이 걸린 상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트럼프가 국가안보를 내세워 소송을 돌파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 시사잡지 애틀랜틱은 20일 “기념물을 금빛 포탑으로 바꾼 것은 적어도 일부는 법적 전략”이라며 트럼프가 백악관 연회장 때와 같은 논리로 개선문에 대한 “반대를 막으려는 것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원고 측 니콜라스 샌손 변호사도 AP통신에 “대통령이 뒤늦게 국가안보 명분을 만들어낸다고 근본적인 불법성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며 의회 승인 전에는 사업을 진행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0월 1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연회장 기부자 만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건립을 추진 중인 ‘독립 개선문(Independence Arch)’ 모형 옆에서 발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실제 트럼프는 백악관 동관을 철거하고 짓는 새 연회장에서도 공사를 이어간 전례가 있다. 당초 국빈과 VIP를 위한 행사 공간으로 추진했지만, 역사보존단체가 의회 승인 없는 공사라며 소송을 내자 동관 지하의 대통령 비상시설을 근거로 연회장이 군사시설의 일부라고 주장하면서다. 동관 지하에는 1942년부터 대통령 비상시설이 있었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는 핵 폭발에도 견딜 수 있는 대형 벙커가 완공(워싱턴포스트)됐는데, 트럼프 행정부는 새 연회장과 이 지하시설이 “떼어놓을 수 없이 결합된 요소”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논리는 소송에서도 일정 부분 유리하게 작용했다. 하급심은 지상 연회장 공사를 중단시키면서도 지하 벙커와 군사·의료시설은 국가안보와 직결된다며 공사를 계속하도록 했다. 이후 대법원은 지난달 하급심의 공사 중단 명령에 효력정지를 내려 전체 공사를 재개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대법원이 연회장 자체를 국가안보 시설로 인정한 것은 아니다.
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남쪽 부지에 있는 연회장 공사가 한창이다. AP=연합뉴스
연회장과 달리 개선문에 실제 군사시설이 필요한지를 두고는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백악관에는 이미 필요할 경우 옥상에 저격수를 배치하는 등 여러 겹의 경비 체계가 있다. 개선문까지 상시 군사시설로 만들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특히 개선문 예정지는 일반 차량과 관광객이 오가는 알링턴 국립묘지 입구이자 로널드 레이건 워싱턴공항의 비행 경로와도 가까워, 무기와 탄약을 상시 배치할 경우 오히려 안전 문제가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