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이끄는 중도 보수 기독민주당(CDU)이 같은 날 옛 동독 지역과 수도 베를린에서 치른 지방선거에서 각각 강경 우파와 강경 좌파 정당에 참패하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16개월 차를 맞은 메르츠 총리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
독일대안당(AfD) 소속 라이프 에리크 홀름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 총리 후보. AFP=연합뉴스
독일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일(현지시간) 주의회 선거 최종 개표 결과 라이프 에리크 홀름 주총리 후보가 이끄는 강경 우파 독일대안당(AfD)이 38.2%를 득표해 1위를 차지했다. 중도 진보 성향 사회민주당(SPD·35.5%)을 누르고 승리했다. AfD가 주의회 선거에서 1당이 된 것은 지난 6일 작센안할트주 선거에 이어 두 번째다.
AfD는 반(反)유럽연합·친(親)러시아 성향이다. 체류 자격 없는 이민자 추방, 유로존 탈퇴, 러시아와 관계 개선, 우크라이나 지원 중단을 주장한다. 민생고의 원인을 메르츠 정부의 이민 정책, 유럽연합 밀착 등으로 돌리며 기존 우파 유권자 지지를 뺏어가는 모양새다.
메르츠 총리가 속한 중도 보수 성향 CDU는 4.9% 득표하는 데 그쳤다. 의석 확보에 필요한 5% 문턱을 넘지 못해 주의회에서 퇴출당했다. 로이터통신은 “CDU가 주의회 의석을 얻지 못한 건 1949년 이후 처음”이라며 “최악의 선거 결과”라고 평가했다. 이날 비상회의를 소집한 메르츠는 선거 결과를 두고 “재앙”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사퇴에는 선을 그었다. 그는 “개혁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며 “현재 연방 정부가 추진하는 세제·복지 개혁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독일 좌파당 소속 엘리프 에랄프 베를린 시장 후보. AFP=연합뉴스
같은 날 치른 수도 베를린 주의회 선거에선 21일 오전 3시 개표 기준 좌파당이 25.7%를 얻어 1위에 올랐다. CDU(18.8%), AfD(16.3%)가 뒤를 이었다. 베를린은 진보 성향이 강하다. 그렇더라도 SPD보다 강성인 좌파당이 1당에 오른 건 이번 선거가 처음이다. 주거비·생활비 급등에 대한 불만이 좌파당 선호로 이어졌다.
좌파당 베를린 시장 후보로 나선 엘리프 에랄프는 튀르키예 이민자 가정 출신 변호사다. 짧은 앞머리와 문신, 링 귀걸이, 붉은 립스틱이 그의 상징이다. 유세 현장에 주로 청바지와 운동화, 항공 점퍼 차림으로 등장한다. 그는 공공주택 임대료를 1년간 동결하고 이후에도 인상률을 연 최고 1%로 제한하겠다고 공약했다. 부동산기업 소유 주택의 사회화도 약속했다. 무슬림인 조란 맘다니 미국 뉴욕 시장의 급진적인 주거복지 공약과 비슷해 ‘베를린의 맘다니’로 불린다.
지역마다 AfD와 좌파당의 1당 등극이 곧 집권을 뜻하지는 않는다. AfD는 다른 정당이 강경 우파와 연정을 거부하는 ‘방화벽’에 막혀 주정부를 구성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좌파당도 1당에 올랐지만 단독 과반에 미치지 못한 만큼 연립 정부를 꾸려야 집권할 수 있다.
메르츠는 연금·세제·의료 개혁을 둘러싼 불만이 커지고 잇단 소통 실책까지 겹쳐 지지율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두 선거가 대조적인 결과를 냈지만, 공통적으로 기존 집권당에 대한 유권자의 불만을 드러냈다는 점에 주목했다. FT는 “메르츠가 양쪽에서 지지층을 잃었다.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고 진단했다.